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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3 - 애장판, 완결
유시진 지음 / 시공사(만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시진님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심리를 그려내는 데 있어 탁월한 면이 있다. 때로는 판타지물이거나 때로는 일상적인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작품의 겉모습은 늘 변신해왔지만,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 심리를 섬세하게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늘 캐릭터 하나하나, 스토리 하나하나가 더 가슴에 와닿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인 『온』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판타지 소설작가인 제경과 일러스트레이터 사현, 그리고 액자구성 식으로 온이라는 세계의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사현에게 끌리는 제경의 심리 그리고 온 세계의 주인공들의 감정같은 게 조밀하게 표현이 되면서 어느덧 촘촘하게 얽혀있는 감정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게 된다.

맨 처음 『온』을 봤을 때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으면서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나중에 자려고 자리에 누웠을 때, 다른 무슨 일을 할 때도, 이상하리만치 자꾸만 머릿속에 남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제경과 사현의 감정, 그들의 관계, 처음에는 공감되지 않던 그들의 기분조차 자꾸 생각하고 또 곱씹어 보게 되면서 어느새 그들 속에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결국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그들 하나하나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타인의 행복을 시샘하는 나단도, 누군가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젤도, 자신의 행복이 어느 순간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사미르도 모두 다 우리 누군가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후로도 『온』은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사현의 동화에 등장하는 흰 뼈처럼 말이다.

많은 판타지 중에 유시진의 판타지인 『온』이 유시진만의 색깔을 가지고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면이 아닐까 싶다. 한판 모험을 통해 신나게 놀았다는 것보다는 계속 마음에 잔재를 남기며 때로는 제경이 되어보고 때로는 사현이 되어보고 때로는 젤이 되어볼 수 있는, 그 누구의 입장에 나를 대입하더라도 몰입가능한 충분한 설득력.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든지 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진님의 스토리텔링이 탄탄하고 맛깔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 또한 단순히 멋지구리한 설정과 현란한 화면, 뽀대나는 대사발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진님 작품만의 개성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그 무언가를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싶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시샘, 행복, 동경, 용서, 존경, 사랑 등 인간의 다양한 심리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인 『온』은 연재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완결이라는 사실 자체가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세월에 비해 적은 권수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아쉬움도 남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작품으로 탄생한 것 같다. 만신창이가 되어 마주 본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작은 완결과 새로운 시작. 언젠가 외전쯤 등장해 줄법한 이른바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든다.

시진님 작품은 한바퀴를 돌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이 맨 처음과 또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작품이 새로운 각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달까,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 맛이 새록새록하달까. 어찌보면 잔잔하고 심심한 듯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와 회수를 거듭할수록 풍미가 더해지는, 그리하여 보고 또 꺼내봐도 그 매력이 다하지 않는. 그러니 『온』을 보실 때도 부디 구석구석까지 꼭꼭 씹고 또 씹어보시길. 시진님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물론이요, 그렇지 않더라도 색다른 판타지물을 접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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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어댑터 4
미네쿠라 카즈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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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는 사람은 익히 알겠지만, 마코토와 토키토의 캐릭터는 미네쿠라 카즈야의 전작 ‘학생회 집행부’의 캐릭터들과 동일하다. 이름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러블리 쿠보타와 뷰티 토키토라고 부르는 모습이나, 미묘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행동과 말을 서슴치 않는 면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와일드 어댑터를 그리기 전에 그 캐릭터들을 빌려와서 개그물을 그렸다고 말한 바처럼, 어두운 와일드 어댑터에 비해 학생회 집행부는 개그의 정수를 보여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학생회 집행부를 봐도 좋겠지만, 와일드 어댑터를 먼저 보고난 후에 보면 이 둘의 캐릭터뿐 아니라 자칫 지나치기 쉬운 회장과 호모인 세키야의 캐릭터까지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 한층 재미나다. 여전히 오른손에 장갑을 낀 토키토를 발견할 땐 그 섬세함에 놀랄 정도다. 물론 그 외엔 전혀 별개의 이야기!

어느날 오른손이 야수처럼 변형된 채 뒷골목에 버려진 토키토를 주워온 마코토는 그와 함께 변형의 원인인 W.A(와일드 어댑터)라는 문제의 약을 추적하며 함께 지내게 된다. W.A라는 정체불명의 약을 추적하는 것을 큰 줄기로 매 권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데, 토키토의 잃어버린 기억과 W.A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쓰라린 모습의 군상이다. 죽어버린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스스로가 녹아없어져 버리길 바라는 여자도 있고, 자신의 누이를 제 손으로 파멸시켜야하는 남자, 지독한 열등감으로 결국 제 손으로 제 인생을 망가뜨리게 되는 사람도 있다. 관련된 사건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이들뿐만 아니라 토키토와 마코토 자신들도 때론 두렵고 때론 희망적인 어떤 진실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거나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포커페이스 마코토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에서 접하게 되는 인물들의 눈으로 이 둘을 보면서, 혹은 그들의 독백 속에서 그들이 맘속 깊이 감추고 있는 진실들에 한걸음씩 접근하는 것은, 그럼에도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라 조금 야릇한 기분이 들게도 만든다.

정체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검은 음모, 그리고 조금씩 용틀임하는 토키토의 어두운 기억. 무언가 심상치 않은 과거가 있으리라는 것은 알겠지만 당췌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마코토와 토키토가 간직한 깊은 비밀은 한꺼풀도 아직 채 벗겨지지 않은 것 같고, W.A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지금까지는 요원해보인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코토는 토키토의 천진할 정도의 강함에 이끌리게 되고, 인간보다 오히려 동물을 더 사랑하던 그에게 토키토는 유일한 진실이자 신보다도 절실한 존재가 되어간다. 강하고 세상에 두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속이 공허한 마코토에게, 그 내면을 온전히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척 보기에는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한 토키토다. 마코토가 장난처럼 던지는 한마디씩은 어쩐지 그냥 흘려지지 않고, ‘너의 모든 것이 나의 언령’이라는 대사나 토키토의 어깨에 기댄 그의 얼굴에선 왠지 의미심장함마저 전해지는 듯하다. 어째 러브스토리에나 어울릴 듯 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톱니바퀴처럼 꼭 들어맞는 영혼의 반쪽, 세상 어딘가에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하면 이 둘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유기 외전’의 금선, 오공과 캐릭터의 느낌이라든지 구한 자가 구원받는 관계가 비슷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와일드 어댑터쪽이 좀 더 비장하고 어두운 느낌이 강하다.

소년만화나 순정만화로 양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 개성있고 힘찬 그림체와 미묘한 분위기, 그리고 절묘하게 툭툭 건드리는 인상적인 대사들은 작품에 한층 힘을 실어준다. 속을 가늠할 수 없는 냉혹한 킬러와 야생동물처럼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소년. 이들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사랑은 아니지만 우정이상의 끈끈한 무언가로 연결된 이들의 미묘한 의존관계와 이들 자체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는 것도 이 작품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매력중의 하나다. 일단 너무나 매력적인 이들을 한번 만나면 미네쿠라 카즈야만의 분위기에 휩쓸려 끝까지 함께 내달려보고 싶어질게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떨어질 곳도 없는 그들. 서로 의지하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지탱해가는 이들이 나아가는 길 끝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 무엇이 되었건 제발 가슴 미어지는 진실만은 아니길 바라며, 그들의 거친 행보에 숨죽이며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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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원 전쟁 1
마츠모토 토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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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외국인이 말을 걸어올 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할 말을 잃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다는 영어 콤플렉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인의 80%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표지에서부터 난무하고 있는 영어때문에 벌써부터 으으윽~하고 얼굴을 가릴 필요도, 손을 벌벌 떨면서 페이지를 넘길 필요도 없다. 키코를 보라. 비록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외국인만 보면 바짝 쫄아버리긴 하나, 자고로 ''언어는 자신감''이라는 말의 진가를 온몸으로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은근히 띄엄띄엄 잘 알아듣는 키코의 듣기 실력은 사실 그렇게 처참한 지경은 아닌 거 같지만, 어쨌거나 여기선 영어 좀 한다고 뻐길 필요도,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그저 키코와 함께 편안한 맘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면 그걸로 오~케이다.

아빠의 뉴욕전근 때문에 단기간에 영어를 마스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키코. 영어를 생각만 해도 목이 바짝바짝 타는 키코가 찾아간 영어학원에는 인기상종가의 두 강사 이슈와 커트가 있다. 그중에서도, 여자들과의 미팅보다도 100엔샵에 들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슈와 키코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한데, 100엔샵의 통조림 캔이 맺어준 운명같은 만남, 그들은 학원에선 선생과 제자이지만 100엔코너에서 100엔짜리 캔을 놓고 경쟁하는 살벌한 라이벌이기도 한 것이다! 엇,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둘의 관계가 심히 수상쩍다. 키코식으로 부르자면 이수씨(이슈)와 카토씨(커트)가 키코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수상해지기 시작하고, 오랜 세월 키코를 맘속에 품은 소꿉친구 시로가 가세하면서 분위기는 좀 더 후끈 달아오르게 된다.

영어학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인 『영어학원전쟁』은 만화를 보는 재미와 더불어 영어표현까지 습득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선사한다. ‘이프 우동 마이(If you don't mind)'나 '와, 츠고이 옹?!!(What''s going on?!!)' 등 앨리스(키코의 영어 닉네임)의 발음으로 함께 배워보는 관용어구들은 재미나면서 꽤나 쓸만해 보이고, 밑에 살포시 표시되어 있는 '앨리스의 활용도 별점'도 키코라면 그러려니 싶은 것이 무지 웃긴다. 초반엔 아무 때고 수시로 등장하는 영어가 아주 조금 호흡을 가빠지게도 하지만, 나중엔 이정도쯤이야~라고 너털웃음을 짓게 되니 영어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게는 꽤 효과있는 치료제가 될런지도. 딕셔너리란 이름으로 매 회 따라붙는 작가의 코멘터리도 굉장히 귀엽고 재밌는데다, 맨 마지막 작가의 화실 분위기를 보여주는 ‘작업실의 진실’이라는 후기도 무척이나 웃기니 빼놓지 말자.

말은 최고의 의사소통수단이긴 하지만, 때론 곁에 있어주세요-라는 말보다 옷깃을 붙잡는 손길이 훨씬 호소력 있듯 눈빛이나 행동 하나만으로 족할 때가 있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더 진실되게 통하는 최단거리 소통법. 툭하면 긴장 끝에 이슈에게 ‘Damn’이라고 외쳐버리는 키코에게는 역시 말보단 이런 방법이 훨씬 효과적일 테다. 마츠모토 토모 작품의 남주인공은 언제나 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지만 번드레한 미사여구가 없는 대신 말뿐이 아닌 진심을 고스란히 전해 받고, 나에게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그런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그가 맘을 열어주는 단 한사람이 되는 것, 이거 꽤나 황홀한 일 아닌가. 아직까진 키코앞에서만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건방진 발언을 찍찍 날려대는 이슈지만, 그런 이슈가 단 한 명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키코가 될 것인지, 과연 키코는 인생의 태클인 영어를 극복하고 멋진 외국인 선생님과의 두근두근 러브까지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 즐겁고 상큼발랄한 이 스토리의 향방이 궁금하다면 키코를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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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10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오카노 레이코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공간의 벌어진 틈을 볼 줄 알며, 그곳에서 새어나온 이세계(異世界)의 존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이 있다. 음양오행 속 천기를 느끼고 우주의 비밀을 남모르게 읽어낼 줄 아는 자, 그들이 바로 '음양사'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붉은 달>의 아리마사나 <동경 바빌론>의 스바루 등이 음양사라고 불리는 자들이었음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는 대략 감 잡아볼만 하다. 고대에는 주술을 부리고 신묘한 점괘를 칠 줄 아는, 그래서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듯 보이는 샤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기도 했다. 때로는 숭배의, 때로는 두려움이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들의 입지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좁아지게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만물이 약간의 혼돈 속에 비틀비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대, 주술의 수호를 받으며 도깨비들을 물리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음양사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헤이안 시대의 일이다.

그간 영화나 소설, 만화까지 여러 매체로 다루어진 것을 보아도, 음양사라는 존재는 일본인들이 워낙에 흥미를 많이 가지는 소재인 듯 싶다. 솔직히 미신같은 것도 다양하고, 기묘한 이야기들도 풀어놓자면 여러 밤을 새도 끄떡없을 만큼 요괴에 관한 소재만도 무궁무진한 일본이다보니, 요괴들의 반대편에서 그들을 다스리고 음양오행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음양사의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꾸준히 호기심의 대상이며 흥미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음양사와, <붉은달>의 아리마사의 모델일 정도로 음양사의 대표격인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야기다. 식신을 자유자재로 부리며 기이한 일들을 많이 이루어내고, 인간세계와 요괴세계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발 담그지 않는 그의 존재는 무척 신비로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거기다 그가 ‘실존인물’이라고 하는 프리미엄까지 붙고보니, 그의 존재는 좀 더 신비롭게 느껴지고, 이야기는 한층 흥미진진해진다.

실은, 흔히들 ‘순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와 사뭇 거리감 있는 꽤 고전적인 그림체 덕에 초반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엔 낯설더라도 보면 볼수록 신선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그림체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데, 이 미묘한 시대적 배경에는 빠르고 부드러운 터치의 그림체보다도, 외려 오카노 레이코의 진지한 듯 독특한 터치의 그림체가 적절해 보인다. 그림의 독특함은 중간 중간 등장하는 컬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올컬러 작품이라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싶게, 색감이 무척이나 오묘하면서도 단아하다.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가 음양사의 만화화를 한다면 단 한명 맡기고 싶은 만화가로 오카노 레이코를 꼽고, 만화화된 이 작품에도 대만족을 표했다고 했던 것은 역시 과장이 아니지 싶다. 읽어갈수록 제대로 흡입력있게, 사소한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오카노 레이코의 솜씨는 아무래도 제대로다.

여우의 자식이라는 신비한 출생의 비밀에다 놀라운 술법, 거기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까지 지닌 세이메이. 만화는 그의 일대기를 전하듯, 헤이안 시대의 설화집을 인용해가며 나레이션을 해나간다. 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세이메이가 친구인 히로마사와 함께 교토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에피소드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한 시대물이나 세이메이의 신묘한 일생에 대한 전기라기보다 일종의 버디물같은 기분이 든다. 최고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와 풀어가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앗,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만, 단순히 퇴마라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느낌이 아니라서 더 맘에 든다. 귀신의 구전을 가로채는 남자 세이메이. 술을 즐기고 풍류를 아는 세이메이. 살생을 싫어하고, 비파나 돌멩이에서도 영혼을 발견하는 세이메이. 읽고난 후엔, 신비로운 존재를 넘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 컴 앞에 앉아 자판에 타닥타닥 그의 이름을 두들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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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오브 라이프 2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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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시나가 후미가 게이들만 잔뜩 나오는 그림을 그린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제 그런 편견은 접어두어도 좋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현란한 음식과 그에 수반하는 굉장한 대사의 압박에 기가 질려버린 사람이나, 혹은 장르적인 편견으로 요시나가 후미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요시나가 후미가, 참신한 학원물을 그리고 있단 말이다! 사실 그녀의 전적을 따져 볼 때,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뭔가 있을꺼야’라며 색안경을 끼고 껀수(!)를 찾아 헤매보기도 했지만, 노노..그녀는 정말 순수하다구요~

플라워 오브 라이프, 이거,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뜻한다는 영화제목 ‘화양연화’와도 어쩐지 통하는 거 같다. 가장 꽃다운 청춘, 아직 채 영글지 않은, 그리고 활짝 꽃피지도 않은 수줍은 꽃봉오리와 같은 그때,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에 있는 모호한 나이의 그들이 주인공인 플라워 오브 라이프는, 역시나 요시나가 후미의 독특한 감수성을 잘 살려, 수줍고 평범한 소년 소녀들이 아닌 조금은 괴짜들이 끌어나가는 이야기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면, 백혈병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사나이 하루타로, 이것이 오타쿠다! 오타쿠의 진정한 면목을 보여주는 마지마, 그리고 이중에선 가장 정상(?)으로 보이는 귀여운 쇼타, 성별이 모호한 담임선생까지. 그의 정체가 게이인지 아닌지 밝혀지는 순간, 역시나 후미의 엉뚱함에 반하고 만다.

씩씩하고 강하며 남성적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수줍은 캐릭터인 하루타로와, 그에 반해 외유내강,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속 깊고 형같은 쇼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뭐든 하는 열혈 마지마.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남다른 그들의 딱하나 공통점이라면, 만화동호회에 몸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는데, 고등학교생활의 꽃인 문화제 때 회지를 내는 과정에서 하루타로와 쇼타가 합심! 그들이 그려낸 작품이 애들에게 괜찮다는 평가를 얻어내고, 그림이 되는 또 한 사람의 그녀, 성질로 치자면 마지마 못지않은 타케다까지 새로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들의 만화인생에 날개가 돋치지 않을까 싶다.

1권이 왠지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면, 2권에서는 정말 제대로 웃겨준다. 새로운 캐릭터 타케다도 마지마와 함께 제대로 된 오타쿠 마니아 한 쌍이 될 수 있을 만한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만큼, 앞으로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런지 기대가 된다. 거기다, 이제 마지마가 새로운 면모를 보이며 거의 마성에 가까운 마지마의 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고야 말았으니,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런지는 당췌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파릇파릇한 청춘과 넘치는 생명력에 박수를~

우정, 눈물, 개그와 엽기가 함께하는 초발랄학원물 플라워 오브 라이프. 튀면서도 튀지 않는 캐릭터와, 흔한 듯한 소재로 흔하지 않게 끌어가는 후미의 개성이 만나니 참으로 볼만한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 그러나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참 사랑스럽다. 게다가, 마냥 진지하고 무겁기보단 웃음이 묻어나고, 마냥 가볍기보단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그런 작품이어서 더욱 좋다. 곧 그들의 청춘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앞으로 그들의 우정이 점점 더 자라고 깊어져 찡한 감동이 되길 바란다. 꽃다운 인생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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