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 전쟁 1
마츠모토 토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외국인이 말을 걸어올 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할 말을 잃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다는 영어 콤플렉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인의 80%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표지에서부터 난무하고 있는 영어때문에 벌써부터 으으윽~하고 얼굴을 가릴 필요도, 손을 벌벌 떨면서 페이지를 넘길 필요도 없다. 키코를 보라. 비록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외국인만 보면 바짝 쫄아버리긴 하나, 자고로 ''언어는 자신감''이라는 말의 진가를 온몸으로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은근히 띄엄띄엄 잘 알아듣는 키코의 듣기 실력은 사실 그렇게 처참한 지경은 아닌 거 같지만, 어쨌거나 여기선 영어 좀 한다고 뻐길 필요도,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그저 키코와 함께 편안한 맘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면 그걸로 오~케이다.

아빠의 뉴욕전근 때문에 단기간에 영어를 마스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키코. 영어를 생각만 해도 목이 바짝바짝 타는 키코가 찾아간 영어학원에는 인기상종가의 두 강사 이슈와 커트가 있다. 그중에서도, 여자들과의 미팅보다도 100엔샵에 들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슈와 키코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한데, 100엔샵의 통조림 캔이 맺어준 운명같은 만남, 그들은 학원에선 선생과 제자이지만 100엔코너에서 100엔짜리 캔을 놓고 경쟁하는 살벌한 라이벌이기도 한 것이다! 엇,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둘의 관계가 심히 수상쩍다. 키코식으로 부르자면 이수씨(이슈)와 카토씨(커트)가 키코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수상해지기 시작하고, 오랜 세월 키코를 맘속에 품은 소꿉친구 시로가 가세하면서 분위기는 좀 더 후끈 달아오르게 된다.

영어학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인 『영어학원전쟁』은 만화를 보는 재미와 더불어 영어표현까지 습득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선사한다. ‘이프 우동 마이(If you don't mind)'나 '와, 츠고이 옹?!!(What''s going on?!!)' 등 앨리스(키코의 영어 닉네임)의 발음으로 함께 배워보는 관용어구들은 재미나면서 꽤나 쓸만해 보이고, 밑에 살포시 표시되어 있는 '앨리스의 활용도 별점'도 키코라면 그러려니 싶은 것이 무지 웃긴다. 초반엔 아무 때고 수시로 등장하는 영어가 아주 조금 호흡을 가빠지게도 하지만, 나중엔 이정도쯤이야~라고 너털웃음을 짓게 되니 영어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게는 꽤 효과있는 치료제가 될런지도. 딕셔너리란 이름으로 매 회 따라붙는 작가의 코멘터리도 굉장히 귀엽고 재밌는데다, 맨 마지막 작가의 화실 분위기를 보여주는 ‘작업실의 진실’이라는 후기도 무척이나 웃기니 빼놓지 말자.

말은 최고의 의사소통수단이긴 하지만, 때론 곁에 있어주세요-라는 말보다 옷깃을 붙잡는 손길이 훨씬 호소력 있듯 눈빛이나 행동 하나만으로 족할 때가 있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더 진실되게 통하는 최단거리 소통법. 툭하면 긴장 끝에 이슈에게 ‘Damn’이라고 외쳐버리는 키코에게는 역시 말보단 이런 방법이 훨씬 효과적일 테다. 마츠모토 토모 작품의 남주인공은 언제나 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지만 번드레한 미사여구가 없는 대신 말뿐이 아닌 진심을 고스란히 전해 받고, 나에게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그런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그가 맘을 열어주는 단 한사람이 되는 것, 이거 꽤나 황홀한 일 아닌가. 아직까진 키코앞에서만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건방진 발언을 찍찍 날려대는 이슈지만, 그런 이슈가 단 한 명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키코가 될 것인지, 과연 키코는 인생의 태클인 영어를 극복하고 멋진 외국인 선생님과의 두근두근 러브까지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 즐겁고 상큼발랄한 이 스토리의 향방이 궁금하다면 키코를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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