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어댑터 4
미네쿠라 카즈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는 사람은 익히 알겠지만, 마코토와 토키토의 캐릭터는 미네쿠라 카즈야의 전작 ‘학생회 집행부’의 캐릭터들과 동일하다. 이름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러블리 쿠보타와 뷰티 토키토라고 부르는 모습이나, 미묘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행동과 말을 서슴치 않는 면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와일드 어댑터를 그리기 전에 그 캐릭터들을 빌려와서 개그물을 그렸다고 말한 바처럼, 어두운 와일드 어댑터에 비해 학생회 집행부는 개그의 정수를 보여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학생회 집행부를 봐도 좋겠지만, 와일드 어댑터를 먼저 보고난 후에 보면 이 둘의 캐릭터뿐 아니라 자칫 지나치기 쉬운 회장과 호모인 세키야의 캐릭터까지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 한층 재미나다. 여전히 오른손에 장갑을 낀 토키토를 발견할 땐 그 섬세함에 놀랄 정도다. 물론 그 외엔 전혀 별개의 이야기!

어느날 오른손이 야수처럼 변형된 채 뒷골목에 버려진 토키토를 주워온 마코토는 그와 함께 변형의 원인인 W.A(와일드 어댑터)라는 문제의 약을 추적하며 함께 지내게 된다. W.A라는 정체불명의 약을 추적하는 것을 큰 줄기로 매 권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데, 토키토의 잃어버린 기억과 W.A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쓰라린 모습의 군상이다. 죽어버린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스스로가 녹아없어져 버리길 바라는 여자도 있고, 자신의 누이를 제 손으로 파멸시켜야하는 남자, 지독한 열등감으로 결국 제 손으로 제 인생을 망가뜨리게 되는 사람도 있다. 관련된 사건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이들뿐만 아니라 토키토와 마코토 자신들도 때론 두렵고 때론 희망적인 어떤 진실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거나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포커페이스 마코토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에서 접하게 되는 인물들의 눈으로 이 둘을 보면서, 혹은 그들의 독백 속에서 그들이 맘속 깊이 감추고 있는 진실들에 한걸음씩 접근하는 것은, 그럼에도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라 조금 야릇한 기분이 들게도 만든다.

정체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검은 음모, 그리고 조금씩 용틀임하는 토키토의 어두운 기억. 무언가 심상치 않은 과거가 있으리라는 것은 알겠지만 당췌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마코토와 토키토가 간직한 깊은 비밀은 한꺼풀도 아직 채 벗겨지지 않은 것 같고, W.A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지금까지는 요원해보인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했던 마코토는 토키토의 천진할 정도의 강함에 이끌리게 되고, 인간보다 오히려 동물을 더 사랑하던 그에게 토키토는 유일한 진실이자 신보다도 절실한 존재가 되어간다. 강하고 세상에 두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속이 공허한 마코토에게, 그 내면을 온전히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척 보기에는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한 토키토다. 마코토가 장난처럼 던지는 한마디씩은 어쩐지 그냥 흘려지지 않고, ‘너의 모든 것이 나의 언령’이라는 대사나 토키토의 어깨에 기댄 그의 얼굴에선 왠지 의미심장함마저 전해지는 듯하다. 어째 러브스토리에나 어울릴 듯 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톱니바퀴처럼 꼭 들어맞는 영혼의 반쪽, 세상 어딘가에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하면 이 둘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유기 외전’의 금선, 오공과 캐릭터의 느낌이라든지 구한 자가 구원받는 관계가 비슷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와일드 어댑터쪽이 좀 더 비장하고 어두운 느낌이 강하다.

소년만화나 순정만화로 양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 개성있고 힘찬 그림체와 미묘한 분위기, 그리고 절묘하게 툭툭 건드리는 인상적인 대사들은 작품에 한층 힘을 실어준다. 속을 가늠할 수 없는 냉혹한 킬러와 야생동물처럼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소년. 이들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사랑은 아니지만 우정이상의 끈끈한 무언가로 연결된 이들의 미묘한 의존관계와 이들 자체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는 것도 이 작품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매력중의 하나다. 일단 너무나 매력적인 이들을 한번 만나면 미네쿠라 카즈야만의 분위기에 휩쓸려 끝까지 함께 내달려보고 싶어질게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떨어질 곳도 없는 그들. 서로 의지하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지탱해가는 이들이 나아가는 길 끝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 무엇이 되었건 제발 가슴 미어지는 진실만은 아니길 바라며, 그들의 거친 행보에 숨죽이며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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