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3 - 애장판, 완결
유시진 지음 / 시공사(만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시진님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심리를 그려내는 데 있어 탁월한 면이 있다. 때로는 판타지물이거나 때로는 일상적인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작품의 겉모습은 늘 변신해왔지만,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 심리를 섬세하게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늘 캐릭터 하나하나, 스토리 하나하나가 더 가슴에 와닿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인 『온』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판타지 소설작가인 제경과 일러스트레이터 사현, 그리고 액자구성 식으로 온이라는 세계의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사현에게 끌리는 제경의 심리 그리고 온 세계의 주인공들의 감정같은 게 조밀하게 표현이 되면서 어느덧 촘촘하게 얽혀있는 감정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게 된다.

맨 처음 『온』을 봤을 때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으면서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한 느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나중에 자려고 자리에 누웠을 때, 다른 무슨 일을 할 때도, 이상하리만치 자꾸만 머릿속에 남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제경과 사현의 감정, 그들의 관계, 처음에는 공감되지 않던 그들의 기분조차 자꾸 생각하고 또 곱씹어 보게 되면서 어느새 그들 속에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결국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그들 하나하나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타인의 행복을 시샘하는 나단도, 누군가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젤도, 자신의 행복이 어느 순간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사미르도 모두 다 우리 누군가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후로도 『온』은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마치 사현의 동화에 등장하는 흰 뼈처럼 말이다.

많은 판타지 중에 유시진의 판타지인 『온』이 유시진만의 색깔을 가지고 매력을 발산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면이 아닐까 싶다. 한판 모험을 통해 신나게 놀았다는 것보다는 계속 마음에 잔재를 남기며 때로는 제경이 되어보고 때로는 사현이 되어보고 때로는 젤이 되어볼 수 있는, 그 누구의 입장에 나를 대입하더라도 몰입가능한 충분한 설득력.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든지 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진님의 스토리텔링이 탄탄하고 맛깔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 또한 단순히 멋지구리한 설정과 현란한 화면, 뽀대나는 대사발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진님 작품만의 개성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그 무언가를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싶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시샘, 행복, 동경, 용서, 존경, 사랑 등 인간의 다양한 심리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인 『온』은 연재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완결이라는 사실 자체가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세월에 비해 적은 권수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아쉬움도 남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작품으로 탄생한 것 같다. 만신창이가 되어 마주 본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작은 완결과 새로운 시작. 언젠가 외전쯤 등장해 줄법한 이른바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든다.

시진님 작품은 한바퀴를 돌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이 맨 처음과 또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작품이 새로운 각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달까,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 맛이 새록새록하달까. 어찌보면 잔잔하고 심심한 듯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와 회수를 거듭할수록 풍미가 더해지는, 그리하여 보고 또 꺼내봐도 그 매력이 다하지 않는. 그러니 『온』을 보실 때도 부디 구석구석까지 꼭꼭 씹고 또 씹어보시길. 시진님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물론이요, 그렇지 않더라도 색다른 판타지물을 접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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