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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추억은 이곳에 남아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박주리 옮김 / 저녁달 / 2025년 11월
평점 :
워낙 한국소설 편식자인지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좋은 외국소설에 대한 귀를 늘 열어두고 있는 나에게 “출간 즉시 프랑스 소설 베스트셀러 1위”라는 타이틀 절대 못 참지. 서평단으로 받아보게 된 <우리의 추억은 이곳에 남아>.
할머니의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된 엠마와 아가트, 두 자매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게 느껴지는 여러 가지의 이유들이 있는데 첫째는 플롯, 둘째는 캐릭터, 셋째는 문체와 톤.
적고 보니 이 소설 매력이 너무 많네.
첫번째는 플롯. 두 자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각각의 화자로 펼쳐진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 제목이 <과거, 몇월 몇일, 아가트, 몇살> <현재, 몇월 몇일, 엠마 몇살> 이런 식.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성인데 거기에 덧붙여 화자까지 함께 바뀌고 있으니, 같은 사건을 두 명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플롯은 이 소설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할머니 집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일주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대로 기술된다면 정말 재미없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세팅을 이렇게 만들어둠으로 인해 엄청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지는 느낌.
두번째는 캐릭터. 책임감 있고 부모의 지지를 받는 첫째딸 엠마와 반항심이 있고 열등감이 있으면서도 조금은 예민한 둘째딸 아가트. 두 캐릭터 모두 전형적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되는, 가족 내에서의 두 가지 비극이(엄마 아빠와 각각 관련) 각각 다르게 표출되게 되고 또한 이 부분은 두 자매의 타고난 위트, 유머와 붙으면서 더욱 극대화된다. 서로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자매의 마음이 참 예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할머니는 정말 사랑스럽고, 엄마는 정말 밉다.
세번째는 문체와 톤. 엠마와 아가트의 목소리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나면 두 사람을 알아버리게 되는데 두 자매 모두 재치가 있다. 표현력이 둘 다 작가급이야 정말. 모든 챕터가 주인공인 엠마, 아가트 각각의 1인칭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심리와 감정이 정말 잘 드러나 있어서 이입이 정-말 많이 되는 부분.(나 역시 맏딸이자 언니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재미있게 읽히는걸 보면 번역이 대단했다는 점인데 프랑스어를 못 읽으니 이것참. 원문이랑 비교해 보고 싶은 부분이 정말정말 많았다.
엠마는 아가트에게 해야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도망쳤다가 다시 5년만에 그녀를 소환했다. 그들이 방학 때마다 머물렀던 할머니의 집에서. 집이 팔리기 전에 일주일을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끝까지 조마조마하며 읽어내다 소설의 마지막 5페이지를 앞두고 급하게 쏟아낸다. 눈물이 찡- 그 후 마지막 5페이지는 정말이지.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서사 덕분에 자매의 추억인 영화 <타이타닉>과의 마무리 연결도 그저 좋았다.
인덱스를 너무 많이 붙였다. 문장이 좋을 때, 위트가 돋보일 때, 감정의 서술이 진할 때 붙이게 되는데 우와. 다 옮길 수도 없을 지경. 이 소설은 꼭 내 동생에게 선물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자매들이 함께 읽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