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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골 전시관
마타요시 에이키 지음, 조정민 옮김 / 모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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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서 발굴된 인골 한 구를 둘러싼 이야기 <인골전시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오키나와에 여행을 가본 경험이 있으나, 이 지역이 일본 본토와는 또 다른 역사적인 아픔이 있는 공간인지라 그 곳에서 발굴된 인골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가 돋았다.

사기꾼에게 집을 빼앗기고 어머니마저 잃게 된 학원 강사 메이테쓰가 주인공. 인골이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 그 현장에 가게 되고 ‘고토노’라는 여성을 만나 발굴작업에 함께 하게 되는데 민박집 주인 ‘쇼신’을 통해 그의 딸 ‘사요코’를 만나게 되고 역사관에서 대척점에 있는 두 여성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역사의 학술적이고 실체적 진실을 좇는 여성 '고토노'와, 인골을 상업적이고 사적 자랑거리로 소비하려는 '사요코' 사이에서 방황하는 메이테쓰의 모습이 효과적으로 대비되고 있는데 결국 그의 선택은 후자인 점도 관전포인트. 메이테쓰의 모습은 ‘진실’과 ‘소비,허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사요코의 먼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전시관을 만들고자 했으나 사요코 부녀의 단순한 자랑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인골전시관.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무리들의 등장으로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더니, 사요코의 전남편이 등장하면서 점점 취지를 잃어가는 전시관.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메이테쓰가 원했던 건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믿고자 했던 것일까.

/ 고립된 사요코를 위해 인골 전시관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 내 착가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인골 속에서 오키나와인의 깊은 내면 풍경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p.299)

이야기 후반부에 나오는 메이테쓰의 깨달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초반 설정인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파고드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는 생각. 인골의 정체가 알고 싶었던 건 나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작가 마타요시 에이키는 오키나와 현지인의 삶, 미군 기지 문제, 일본 본토와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현실적이면서도 블랙유머를 섞어 그려내는 작가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일본의 대표 작가이다. 오키나와의 정체성과 본토와의 역사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뤄온 작품세계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말 없는 인골을 통해 역사적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소비되는지를 날카롭게 지목하는 듯 하다.

인골을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이해집단의 저마다의 해석이 또 하나의 포인트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 ‘전시’라는 행위 역시 만든 이의 주관과 해석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 도리는 없고. 말 하지 않는 ’인골‘을 두고 자꾸만 늘어가는 주변의 말들. 추측과 억측, 왜곡과 멸시는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진실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어 버리는 현대인들. 언제 진실이 중요했던 적이 있던가.

역사를 바로 알고 제대로 기록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
지금 우리에게 ’올바른 시선‘을 가질 필요를 알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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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낱말들 - 아름다운 낱말 하나를 얻는 순간 세계는 곱절로 선명해진다
박완서 지음, 호원숙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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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작가님이 남긴 문학을 기리며 따님인 호원숙 작가님과 편집부가 함께 엮은 책 <박완서의 낱말들>. 좋은 기회로 서평단에 당첨되어 만나보게 된 곱디 고운 책이다.

첫번째로 든 생각은 책 참 예쁘다. 함께 구성된 낱말 수집 노트는 달력과 메모장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어 활용도가 좋을 뿐만 아니라 식물 일러스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미감을 더해준다. 만듦새가 정말 훌륭하잖아!

두번째로 든 생각은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순우리말 표현 중에 몰랐던 내용이 정말 많았다. 사투리 혹은 옛말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단어들이 순우리말이고 표준어라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단어를 고르고 수집하여 적재적소에 마침맞게 사용하는 것이 작가의 큰 역할이자 사명감이라고 생각하는데 함께 수록되어 있는 작가님의 책 속 문장들이 말맛을 더해준다. 우리 한국어는 참 매력적이구나.

책의 앞 부분에는 이 책의 엮은이이자 박완서 작가님의 따님이신 호원숙 작가님의 짧은 글이 실려 있는데 이 글을 읽을 때 참 마음이 따뜻했다.
/ 어머니의 글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욱 시적인 울림을 준다. 그 낱말을 일상에서 썼을 때에 어머니의 음성이 생각나 사무치는 그리움에 젖게 된다.

직접 어머님의 음성으로 이러한 낱말을 듣고 자랐을 호원숙 작가님에게 있어서 이 책을 엮는 과정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한장 한장 꺼내서 곱게 펴고 애정을 담아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으리라. 그 시선이 느껴져서 이 책에 온기가 더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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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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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에피소드들이 스쳐 지나가듯 이어지는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작가님의 소설은 작년 겨울 즈음 《비누방울, 퐁》을 통해 먼저 접했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집의 출간 연도(2023년)를 보니 이 책이 먼저였고, 《비누방울, 퐁》이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셈이다.

조금씩 인연이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다 보니 전체적인 인상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떠도는 유령, 스쳐 지나가는 인연, 그리고 다정한 이별이라는 주제를 다채롭게 다루면서 귀여운 연결고리들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묶여 있다. 그럼에도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름의 별점 5개를 준 〈오리배〉, 그리고 〈아홉 번의 생〉. 나머지 세 편도 모두 3~4점인 걸 보면 별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결국 다 좋았다는 이야기다.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중 한 편을 제외하면 다섯 편의 화자는 모두 유령, 혹은 영혼이나 귀신이다. 몸이 죽어 형태를 잃고, 몸 밖으로 나와 자신의 생이 다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해, 혹은 가지 '않고' 떠돌며 이 생과의 마지막 이별을, 다정한 안녕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맞이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그녀의 상상력은 귀엽고 따뜻하며 친근하다. 그리고 참 사랑스럽다. 죽음과 삶을 말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침울하거나 두렵지 않다. 비누방울처럼 둥둥 떠 있다가, 옅어진 채로 일렁인다. 가벼워지더니 이내 희미해진다. 그제서야 진짜 안녕이다.

책 제목인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서의 ‘좋은 곳’이 ‘그 좋은 곳’이었구나,라는 사실은 첫번째 소설 <오리배> 한편만 읽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화자인 지영은 이미 죽었고, 영혼인 채로 오리배의 머리 위에서 엄마와 희재를 기다리고 있다.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고 ‘죽은 자의 날’에 돌아오는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가족의 이야기인 <코코>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잊지 않고 제단에 사진을 올려줘야만 사후세계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죽은 자의 날이 되어 다리를 건너 가족들을 보러 올 수 있다. 자신이 엷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화자는 남아 있는 두 사람, 엄마와 희재가 나를 잊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이 대목에서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 엷어진다는 것은 천으로 치면 중간 아무 곳에서나 올이 한두 가닥씩 풀려 나가는 일이었고 그 틈새로 생각이나 기억들이 조금씩 새어 나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p.49)
/ 올까. 정말로 올까. 오지 않는다면.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 (p.50)

우리가 죽은 자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음에 나와 있는 것 같다.

/ 그랬다, 그 반짝이는 알갱이들만큼이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은 강물이 한 번 일렁이는 동안만큼만 빛날 뿐이라는 것을.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빛들은 강 하류로 흘러가면서 거대한 물결에 합쳐져 사라질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다음번의 빛을 그 표면에 받아들이며, 강이 흐르고 해가 빛나는 동안 영원히 계속. (p.57)

이 소설집의 처음을 알리는 작품으로 강한 잔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작가님이 그리고 싶어 하는 세계관이 잘 만들어져 담겨 있는 듯하여 애정이 가고 이미지 역시 선명했다. 앞으로 강에서 오리배가 보이면 아니, 오리만 봐도 이 작품이 떠오를 것만 같다.

또 한편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네 번째 수록작인 <아홉번의 생>. 제목을 보자마자 황정은 작가님의 <묘씨생>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어장 넘기고 나니 각주에 언급이 되어있다. 《파씨의 입문》이라는 단편집을 참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작품인 <묘씨생>. 고양이는 죽어도 다시 태어나 아홉번의 생을 산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고양이가 화자이고 아홉번의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작품의 화자인 고양이는 연작소설답게, 다섯번째 소설인 <영원의 소녀>에서도 슬그머니 언급된다.)

보잘 것 없는 네 번의 삶을 지나 만나게 된 다섯 번째 삶에서 이웃집 선인장을 만나게 되고, 그 애와의 대화를 통해 ‘선물을 주고도 내가 더 기쁜 마음’을 느끼게 된다.

/ 내 유일한 희망은 단 하나였다. 이번 생에서 안 된다면 다음 생에서는 어떨까. 내가 죽어 어딘가에 다시 태어난다면, 거기서 너를 만난다면.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p.182)

이야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문장들은 최근에 읽은 조해진 작가님의 <빛과 멜로디>라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빛이 멜로디처럼 퍼져 나가는 모양을, 관계들이 프리즘이 되어 서로를 더 확산시키는 그 눈부신 기적을.

/ 세계란 참으로 넓고도 복잡하다. 수없이 많은 생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끊을 때마다 세계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세계가 빛이라면 관계는 두꺼운 유리조각과도 같다. 하나의 관계를 통과한 세계는 수십가지의 색깔로 나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한번 지나간 빛이 돌아오지 않듯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무작위로 내달리던 두 갈래의 빛이 어딘가에서 다시 겹쳐지는 찰나가 있다면.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찰나를 붙잡아두는 방법을, 그저 소중하고 소중하게 누리는 방법을. (p.201)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p.205)

너무 아름다워서 밑줄을 긋고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사랑을 확인하려 애쓰지 말고, 이 소중한 찰나의 순간에 감사하며 그 순간을 즐기라는 다정한 조언.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 속이 분명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좋은 곳’은 죽어서야만 비로소 갈 수 있는 좋은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일 것 같다.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 그런 공간과 그런 사람들. 우리 모두 좋은 곳에서 만나요. :)

#이유리 #좋은곳에서만나요
#안온북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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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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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로 서평단이 되어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서 출간되는 정보라 작가님의 연작 소설 세 편을 읽게 되었다. 2023년부터 시작되어 2024년, 2026년에 이르기까지 장장 4년 동안에 걸쳐 드디어 완결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는데 다 읽고나니 4년 동안 이어진 작가님의 상상력과 탄탄한 구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평소 장르물에 대한 호불호의 개념이 거의 없어서 큰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었는데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장르소설은 상황 설정, 세팅이 중요한 이야기라서 특히나 초반의 이해도가 중요하다. 이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잡고나면 금방 빠져들어 읽어갈 수 있기 때문에 메모를 하는 것이 적극 권장된다. 보통은 책 여백에 메모를 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연작소설이고 세 권에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는지라 수첩에 따로 정리를 하며 읽었더니 아주 명료해서 좋았던.

2023년 3월에 제일 처음 발표한 <밤이 오면 우리는>은 이 이야기의 서론이자 개론으로서 아주 훌륭했다. 등장인물 수도 적고, 작은 범위의 이야기라서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크게 어렵지 않았던.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이 이야기의 기본 세팅값이 제시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처음 문장을 제목으로 가져왔는데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 기계에 의해 정복당한 인간 멸종의 시대를 그리고 있는데 최후까지 남은 인간과 흡혈인, 그리고 인조인간이 등장한다. 연작소설이 아닌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여겨질만큼 탄탄한 1편이었다. 마지막 문장마저도.
/ 한때는 인간이었잖아요. 그때는 당신이 인간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1년 뒤인 2024년 12월에 발표된 두번째 작품 <예언자>는 세 편의 이야기의 가운데에서 강하고 독보적인 색깔을 지닌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이미지가 강렬했고, 1편에 등장하는 ’마리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천사, 비상, 물 속의 푸른 용, 심장, 공장‘의 다섯가지 소제목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1편은 자연스러웠는데 2편까지 읽고나면 대혼란이 찾아온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장면도 있고, 이게 뭐지 싶어서 빨리 3편으로 넘어가게 되는.
/ 살아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고 살아 있으면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저항할 수 있었다.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곧 저항이었다.

대장정의 마무리는 2026년 3월에 발표된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이다. 1편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3편이 시작되면 ‘2편이 삽입된 이야기구나’라는 점이 바로 파악된다. 1편과 2편의 세계관이 연결되면서 정리하는 편이기도 하고 다양한 문제의식이 명료하게 제시된다. ‘낯선사람’의 입을 통해 2편에 대한 요약을 해주는 부분이있는데 아마도 독자를 배려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인공 ‘나’를 비롯한 또 다른 인물들이 연대하여 기계에 맞서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특히 마지막 단락에서 ‘통신망 안으로 녹아 흩어진 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부분을 읽을 때는 최근에 읽은 김중혁 작가님의 <꿈이다 아니다>에 등장하는 ‘갈라’라는 공간이 떠올랐다. 이 소설 속 통신망 속이든 <꿈이다 아니다>의 갈라 속이든 우리의 의식은 영원히 어떤 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이러한 상상력들은 어쩌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하는 불멸의 욕망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마지막 3편이 가장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5.18 광주가 소환되는 장면들이 참 많았고 그런 의미에서 한강 작가님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살아가야 하고, 인간이기에 연대해야 한다.

#정보라 #현대문학
#이름없는것들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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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아니다
김중혁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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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고,
진짜 같았는데 꿈이었던 순간, 있지 않았어?’

있지. 당연히 있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꾸니까.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온종일 생각하기도 하고, 꿈속이 너무 좋아서 깨고나면 속상해 하기도 한다. 다시 그 꿈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을 질끈 감다 실패하기도 하고, ‘이건 꿈이네’ 알아채는 자각몽을 꾸기도 한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기도 하니, 여하튼 나도 ‘한 꿈’ 하는 사람이다.

사실 나에게 상상력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몽상이나 공상을 전혀 즐기지 않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S(현실형) 성향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그 기질은 꿈의 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소설 속 누군가처럼 뱀에게 쫓기거나, 사막을 날아다니는 등의 ‘비일상적’인 꿈은 단 한번도 꾼 적이 없다. 내 꿈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꿈인지 아닌지, 현실이 싫어서 도망친 곳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만큼 그 경계가 모호하다.

<꿈이다 아니다>의 중심에는 자면서 꾸는 꿈을 영상으로 변환해 주는 회사 ’달리‘가 있다. 특수 제작한 달리글라스를 쓰고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을 데이터화 해서 해상도를 높여 영상으로 만들어 준다. 그뿐이겠는가. ‘드림 큐레이터’라는 직원이 꿈을 해석하고 의미까지 부여해준다. 달리글라스가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무조건 구입이다. 그리고 나의 담당자는 컴퓨터 용량을 엄청 늘려놔야 할 것이다.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꿈을 꾸니까.

공간적인 배경이 ’달리’라면 주이창과 주아연 남매는 중심 인물이다. 오빠 주이창은 ‘달리’의 유능한 직원. 동생 주아연은 언더커버 형사.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서술되는데 김중혁 작가님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는 아마도 주아연일터. 말투만 보더라도 성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살아있는 주아연의 대사들은 가히 압권이다.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은 일종의 ’김중혁식 추리소설‘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전작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곳곳에 작가님의 취향이 듬뿍 묻어 있어서, 오랜 팬으로서 그걸 알아보는 재미는 덤. 책을 읽으며 밑줄친 곳과 메모가 참 많아서, 좋은 문장들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뽑은 최고의 페이지는 남기고 싶다.

/ 죽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막막한 기분, 가눌 길 없는 마음, 기분과 마음 역시 곧 사라질 것이라는 체념, 소멸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오히려 이 순간이 드디어 왔다는 반가움, 나를 끌어당기는 안도, 뒤에서 나를 붙잡는 후회,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은 쪽으로 몸이 기우는 동안 머릿속에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버리는 오해, 미련, 기억들이 주아연의 몸을 가득 채웠다가 사라졌다.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해야겠네.” (p.269)

눈물이 조금씩 스며나오더니 눈가에 차올랐고, 마지막 대사 한마디에 툭, 떨어졌다. 이 부분을 읽을 당시 행궁동의 조용한 카페에 앉아있었다. 바로 앞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해도 혼자 웃음이 터져서 맞은편 테이블 여자가 쳐다봤었는데, 한 페이지 넘기자마자 훌쩍대고 있으니, 저 여자 참 이상하다 했을거다. 한 페이지 사이에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이 소설의 밀당이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으면서도, 이 세계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일주일을 꼭 붙들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내가 꾼 꿈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봤다. 대개 꿈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 꿈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가만히 이루어주는 공간 같다. 현실의 걱정거리가 있을 때면 꿈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괜찮다고, 잘 될거라며 나를 토닥이고 안심시켜 준다. 미리 대비하게 하고, 적응하게 해 준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나에게 있어서 꿈은, 어쩌면 가장 따뜻한 도피처이자 안식처, 또 하나의 가능성이자 ‘이상실현소’였던 셈이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뒤엎으며 수많은 버전의 원고를 거쳤다고 하셨는데, 책을 덮고 나서 생겨난 수많은 질문거리만큼 다른 버전의 이야기들이 전부 궁금해 진다.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선물해야지.)
그나저나 오늘 밤에는 또 어떤 꿈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려나. 작가님이 나오시려나.

+ 여자들의 연대가 참 좋다. 여자 캐릭터들 하드캐리.
++ 내가 생각한 또 하나의 제목은 <꿈의 지도>. 조금 유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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