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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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에피소드들이 스쳐 지나가듯 이어지는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작가님의 소설은 작년 겨울 즈음 《비누방울, 퐁》을 통해 먼저 접했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집의 출간 연도(2023년)를 보니 이 책이 먼저였고, 《비누방울, 퐁》이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셈이다.

조금씩 인연이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다 보니 전체적인 인상은 하나로 귀결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떠도는 유령, 스쳐 지나가는 인연, 그리고 다정한 이별이라는 주제를 다채롭게 다루면서 귀여운 연결고리들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묶여 있다. 그럼에도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름의 별점 5개를 준 〈오리배〉, 그리고 〈아홉 번의 생〉. 나머지 세 편도 모두 3~4점인 걸 보면 별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결국 다 좋았다는 이야기다.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중 한 편을 제외하면 다섯 편의 화자는 모두 유령, 혹은 영혼이나 귀신이다. 몸이 죽어 형태를 잃고, 몸 밖으로 나와 자신의 생이 다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해, 혹은 가지 '않고' 떠돌며 이 생과의 마지막 이별을, 다정한 안녕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맞이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그녀의 상상력은 귀엽고 따뜻하며 친근하다. 그리고 참 사랑스럽다. 죽음과 삶을 말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침울하거나 두렵지 않다. 비누방울처럼 둥둥 떠 있다가, 옅어진 채로 일렁인다. 가벼워지더니 이내 희미해진다. 그제서야 진짜 안녕이다.

책 제목인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서의 ‘좋은 곳’이 ‘그 좋은 곳’이었구나,라는 사실은 첫번째 소설 <오리배> 한편만 읽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화자인 지영은 이미 죽었고, 영혼인 채로 오리배의 머리 위에서 엄마와 희재를 기다리고 있다.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고 ‘죽은 자의 날’에 돌아오는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가족의 이야기인 <코코>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잊지 않고 제단에 사진을 올려줘야만 사후세계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죽은 자의 날이 되어 다리를 건너 가족들을 보러 올 수 있다. 자신이 엷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화자는 남아 있는 두 사람, 엄마와 희재가 나를 잊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이 대목에서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 엷어진다는 것은 천으로 치면 중간 아무 곳에서나 올이 한두 가닥씩 풀려 나가는 일이었고 그 틈새로 생각이나 기억들이 조금씩 새어 나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p.49)
/ 올까. 정말로 올까. 오지 않는다면.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 (p.50)

우리가 죽은 자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음에 나와 있는 것 같다.

/ 그랬다, 그 반짝이는 알갱이들만큼이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은 강물이 한 번 일렁이는 동안만큼만 빛날 뿐이라는 것을.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빛들은 강 하류로 흘러가면서 거대한 물결에 합쳐져 사라질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다음번의 빛을 그 표면에 받아들이며, 강이 흐르고 해가 빛나는 동안 영원히 계속. (p.57)

이 소설집의 처음을 알리는 작품으로 강한 잔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작가님이 그리고 싶어 하는 세계관이 잘 만들어져 담겨 있는 듯하여 애정이 가고 이미지 역시 선명했다. 앞으로 강에서 오리배가 보이면 아니, 오리만 봐도 이 작품이 떠오를 것만 같다.

또 한편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네 번째 수록작인 <아홉번의 생>. 제목을 보자마자 황정은 작가님의 <묘씨생>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어장 넘기고 나니 각주에 언급이 되어있다. 《파씨의 입문》이라는 단편집을 참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작품인 <묘씨생>. 고양이는 죽어도 다시 태어나 아홉번의 생을 산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고양이가 화자이고 아홉번의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작품의 화자인 고양이는 연작소설답게, 다섯번째 소설인 <영원의 소녀>에서도 슬그머니 언급된다.)

보잘 것 없는 네 번의 삶을 지나 만나게 된 다섯 번째 삶에서 이웃집 선인장을 만나게 되고, 그 애와의 대화를 통해 ‘선물을 주고도 내가 더 기쁜 마음’을 느끼게 된다.

/ 내 유일한 희망은 단 하나였다. 이번 생에서 안 된다면 다음 생에서는 어떨까. 내가 죽어 어딘가에 다시 태어난다면, 거기서 너를 만난다면.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p.182)

이야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문장들은 최근에 읽은 조해진 작가님의 <빛과 멜로디>라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빛이 멜로디처럼 퍼져 나가는 모양을, 관계들이 프리즘이 되어 서로를 더 확산시키는 그 눈부신 기적을.

/ 세계란 참으로 넓고도 복잡하다. 수없이 많은 생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끊을 때마다 세계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세계가 빛이라면 관계는 두꺼운 유리조각과도 같다. 하나의 관계를 통과한 세계는 수십가지의 색깔로 나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한번 지나간 빛이 돌아오지 않듯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무작위로 내달리던 두 갈래의 빛이 어딘가에서 다시 겹쳐지는 찰나가 있다면.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찰나를 붙잡아두는 방법을, 그저 소중하고 소중하게 누리는 방법을. (p.201)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p.205)

너무 아름다워서 밑줄을 긋고도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사랑을 확인하려 애쓰지 말고, 이 소중한 찰나의 순간에 감사하며 그 순간을 즐기라는 다정한 조언.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 속이 분명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좋은 곳’은 죽어서야만 비로소 갈 수 있는 좋은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일 것 같다.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 그런 공간과 그런 사람들. 우리 모두 좋은 곳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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