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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지금은 담양에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춥고 더웠다.
구렁이가 달걀을 다 먹어버려서
양계 사업에 실패했다고 여긴 아버지는
동네 초입, 온동네 하수가 다 쏟아지는 곳에
시멘트 부로꾸집을 지었다.
10년 후,
아버지는 외지를 떠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새 집을 지었다.
부엌이 있는데 아궁이도 있는 집.
그후 저자는 자취방과 기숙사, 임대아파트를 거쳐
땅을 사서 집을 짓는다.
집을 짓는 동안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했다.
이제는 마음편히 짐을 부려 놓을 집을 갖게 되는구나!
짐을 줄이고 싶기도 하지만
손자의 추억까지 담아두고 싶어하고,
먹고 싶은게 많아서 식재료를 많이 사고 싶지만
냉장고는 가뿐히 두고 싶어하는
저자의 오락가락한 마음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나 역시 집이라는 베이스캠프에
여행가방 한두 개에 모두 들어갈 짐만 들이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사고 싶은 가구 목록을 지닌
나의 마음과 같아 공감했다.
저자가 그리는 정겨운 시골 풍경은 덤.
***
79) 나에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인가. 내게 내 집이란 어떤 집이어야 하는가.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어디로 떠나도 언제고 돌아올 수 있는 집,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 편히 자리 잡고 있는 공간, 그곳이 내 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지고 있다가 값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간편하게 살자, 라는 모토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사실 그리 간편하게 살지 못했다. 산다는 것은 짐을 늘려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짐을 늘리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음에도 살다 보니 짐이 늘어났다. 짐들은 일정 기간 함께 있으면 한 식구가 된다. 짐들이 무슨 생물이나 되는 것처럼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짐들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어느 땐가는 간편하게 살자, 단순하게 살자,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다. 소박한 삶이라는 말들에 마음이 격하게 기울어, 내가 가진 짐들이 미워진 적도 있었지만, 정이 든 그것들을 나는 차가운 길바닥 아무 데나 버릴 수가 없었다. 짐들은 그렇게 내 일부가 되어갔다. 내가 이동하면 나의 짐들도 나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것이 나는 다정하게 여겨지다가도 역정이 났다. 어느날 아침,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그것들을 끌고 어디로, 어딘가로 끝없이 이동할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잠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몸 어딘가가 휘청하면서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 떠돌아야겠다!
115) 이왕 집을 짓자고 했으니, 집 다 지어지면 내게 온 물건들을 되도록 간직하며 살아야지. 혹시 손주가 생기면 손주가 세상에 나와 맨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 맨 처음 신은 신발, 맨 처음 본 책,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말고 집에 간직해야지. 그래서 내 집이 그 아이의 역사가 되게 해야지. 이제 내 집은 그런 곳이 되게 하리라.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게 집값이 아니라, 역사라니. 설핏 가슴이 좀 뛰는 것도 같다. 이것은 네가 세 살 때 갖고 놀던 사금파리고 이것은 네가 열 살 때 별을 관찰하던 망원경이요, 이것은 네가 스무 살 때 보던 책이요...... 내 손주에게는 내 집이 보물창고요 저의 역사가 되는 집.
적어도 집이란 게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집값 오르는 거 봐서 후딱 팔아치우고 떠나기 좋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사는 '임시 숙소'로서의 집이 아닌,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으면 두툼한 시간의 더께가 내 등을 든든히 받쳐주는 집. 그것이 '집'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