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시대 공감
명형진 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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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교구와 수도회에서 서로 다른 소임을 하는 여섯 사제가 들려주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에 관한 글이다. 가톨릭출판사 웹진에서 연재하고 있는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여섯 사제의 길은 신자인 나와는 분명 다르지만 신앙인으로서의 갈망과 고민들이 서로 닿아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을 때 침묵하시는 하느님에게 매달리며 원망했던 순간들, 나의 그릇으로는 담지 못했던 상황들과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동과 겸손해지는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큰 울림을 주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본당의 주임 신부님, 봉사 단체 지도 신부님을 떠올리며 기도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열심인 모습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신자들을 위해 물심양면 애쓰시는 사제들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

18) 성체 앞에서 지치고 괴로운 마음을 쏟아 놓고 돌아설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의 지친 마음과 함께하신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가려진 눈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신다.

21)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란 "하느님 면전에서 존경 어린 침묵을 지키는 것"(2628항)이라고 말한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이 머무는 시간인 것이다.

63) 시련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분명 우리 모두 시련을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 있다. 시련의 시간은 '하느님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 가는 시간'이자, '겸손과 의탁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겪은 고통이 내 겸손의 깊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떠올리며, 그분의 부르심에 나를 내어 맡겨 드린다.

91) 우리는 타인을 돕거나 사랑하려 할 때도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작아지기를 주저하고는 한다. 돕는 행위의 주체가 '나'이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주체가 여전히 '나'로 머물기를 바란다. 하지만 더 큰 사랑은 타인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나를 덜어 내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나를 덜어 낼 수 있다면,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진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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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론 -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지음,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 엮음, 방종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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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 귀족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퐁텐에서 태어났고, 1112년 시토회에 입회했다. 1115년 클레르보라는 계곡 지역에 수도원을 세운 후 저술 활동을 활발히 했다.

저자는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로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꼽는다. 그러므로 창조와 구원을 통해 증명되는 그분의 사랑에 우리 인간은 끝없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단계는, 스스로를 위해 자신만을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지만 여전히 자신을 위한 두 번째 단계,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세 번째 단계, 더 이상 하느님 외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네 번째 단계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의 믿음은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듣곤 한다. 그래서 나의 안위와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의 바람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올렸다. 무언가를 더 바라지 않고, 내 안에 담겨 있는 것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이 하느님임을 증언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내가 안심하는 마음이 든다면 또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닐까.

저자는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먹이고 사랑을 주는 어머니를 바라보듯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아무 의심도 없이 전적으로 그분의 사랑에 보답하는 인간이 되려는 그의 모습이 어린아이를 닮아 있다.

하느님께 더욱 다가가고 싶은 이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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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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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의사이자 신비가인 그녀를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으로 여겼다. 다른 저서를 통해 접한 그녀의 영성은 한번에 알아듣기 어려워 나의 부족함을 탓하곤 했었다. 하지만 <죽음의 신비>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죽음의 의미와 죽음에 이를 사람이 기억해야 할 일들은 내가 어떤 죽음에 이르고 싶으며, 그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답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죽음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이다. 그러나 처벌로써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차원의 벌이 아니다. 인간은 죽을 운명임에도 하느님의 도움없이 세상을 살아가다 조언과 충고도 따돌리다 죽음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이 누리던 것들이 자신과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살아간다. 마침내 하느님께 돌아가야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사람에게 처벌로써의 죽음이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본보기가 되어주는 성경 속 인물들과 성인들, 구원의 협조자이신 성모님이 계심을 또한 교회 공동체가 우리의 죽음을 준비시키며 죽음 이후의 안위까지도 기도로써 살핌을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만 배웅하지 않고, 하늘나라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어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다만, 우리가 중간 수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며 신앙과 관련하여 어떤 것은 선호하고 다른 어떤 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갑작스레 자기 존재를 뿌리째 뒤흔들거나 안전하게 여겨온 기반에 금이 가고 불안하리만치 동요를 일으키는 것들과 마주할 때조차 주저 없이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 삼킨 성인들처럼 전심을 다해 신앙인의 삶을 살라고 격려한다.

어쩌면 세상에 비춰지는 죽음은 쓸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말하기 꺼려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도 같다. 나 역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마음과 말을 아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그 수순을 밟게 되리라는 것이 자명하니 어찌 준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음의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죽음 준비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죽음에 이른 모습은 움켜쥐지 않고 내어놓은 사람이다. 빈손으로 가는 죽음을 기억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 때문에 죄짓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겸손을 아는 사람이다.

<죽음의 신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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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모두와 함께 - 레오 14세 교황의 가르침
레오 14세 교황 지음,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옮김, 한영만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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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님은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1977년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의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한 후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25년 가톨릭 교회의 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 책은 레오 14세 교황님이 선출된 2025년 5월 8일부터 6월 29일까지의 연설, 강론, 담화 중 28편을 날짜순으로 엮은 책이다. 이 중에서 5월 18일 베드로 직무 개시 미사 강론을 영상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교황님이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선택되었다고 하신 말씀이 감명 깊어 기억하고 있다. 겸손하게 직무를 받아들이는 멋진 모습이라고 여겼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가정, 어린이, 조부모, 노인의 희년에 행한 강론, 2025년 6월 1일 일요일'처럼 그 연설이나 강론을 말씀하신 날짜와 참석자들을 유추할 수 있는 미사의 지향이 적혀 있다. 또한 강론에 담긴 메시지들이 미사에 참석한 이들 - 추기경님들, 교회 운동 단체들, 자선 단체들, 천체 물리학 여름 학교 참가자들, 주교들 - 이 공감할 수 있고 기억해야 할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이 놀라웠는데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씀들 속에서 교황님의 식견을 엿볼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태도를 조목조목 정리해 주셔서 내가 교회 일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직업생활이나 일상에서 기억하여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도록 했다.


교황님의 말씀을 읽으며 무엇보다 레오 14세 교황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가 세계 곳곳에 닿아 많은 이들이 희망과 사랑과 함께 하기를 바랐다.



***

37) 바로 이런 발자취를 따르도록 부름받았다고 느낀 저는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핵심은 이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레오 13세 교황님은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거대한 첫 산업 혁명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또 다른 산업 혁명과 인공 지능의 발전에 응답하기 위해, 모두에게 그분의 사회 교리의 유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62) 저는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선택되었으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이 되기를 원하는 형제처럼, 그리고 단 하나의 가족 안에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걷기를 원하는 형제처럼 여러분에게 다가갑니다.


84) 저는 5월 8일 저녁 첫인사에서 권고드린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함께 선교하는 교회, 다리를 놓는 교회, 대화를 나누는 교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선, 우리의 존재, 우리의 대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이"에 대해서 말입니다.


108) 감사와 희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부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혼인은 이념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참사랑의 규범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전적이고, 충실하고, 결실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여러분을 하나의 몸으로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자녀에게 일관성의 모범이 되어 주고, 자녀들에게 바라는 대로 여러분이 몸소 행동하며, 순종을 통해 자유를 배우도록 교육하기를 바랍니다. 항상 자녀에게서 장점을 찾고, 이를 자라게 할 방법을 찾도록 격려합니다.


109) 가정에서 신앙은 세대를 통해 삶과 함께 전해집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나 마음속 애정처럼 함께 나눠집니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우리의 선익을 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144) 항상 축복하는 눈길을 간직하십시오. 베드로의 직무는 바로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선을 발견할 줄 아는 것, 심지어 숨어 있는 선까지도, 소수에 불과한 선까지도 알아볼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선교사로 생각하십시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봉사하면서 친교와 일치의 다리가 되고, 함께 일하도록 부름받은 각국 당국들과 어디서든 진실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키워 나가기 위해 교황이 파견한 선교사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역량이 성화를 향한 확고한 다짐으로 언제나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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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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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미사 전례의 화답송으로 또 성가의 가사로 노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시편의 한 구절을 기도 안에서 떠올릴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은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0가지 단어는 시편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단어들의 뜻을 기억하며 시편을 읽는다면 시편을 보다 깊이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겠다.

저자는 시편의 제한적 어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기도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을 찾을 것이 아니라 기도의 본질, 즉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처음 아이와 기도할 때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기도하고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그런 말 못하는데"하며 기도하기를 주저했다. 엄마, 아빠가 사용한 말이 아이에게는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오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서 즐거웠습니다'라거나 '선물을 받아서 기뻤습니다.'하고 한 문장으로 기도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후로 아이는 기도 시간에 자신만의 언어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책 속에 시편을 읽으며 생길 수 있는 의문점들과 배울 점들을 정리한 부분들 덕분에 시편을 보다 탐구하며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시편을 읽기 전 또는 시편을 읽고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12) 어휘의 관점에서 시편집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바로 '반복'이다. 시편 기도의 어휘가 광범위하지는 않아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기도를 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만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인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낱말 그 자체는 대화의 초기 실마리, 통교를 위한 출발점일 뿐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낱말들이 전제하고 있고 또 심화하도록 도와주기를 원하는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103) 비록 시편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을 갈망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하더라도, 시편은 우리가 속한 세상의 거친 현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모든 불의한 상황을 거슬러 강한 분노를 매우 장연스럽게 표현한다. 폭력을 묘사하는 표현을 만날 때, 이것을 교의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내 안에는 폭력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가?',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115) 우선 이 세상에는 '원수들'이 있다는 현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민족과 나라,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충돌, 다툼은 인간관계가 아직도 가끔 대립과 적대감으로 휩싸여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원수일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잘못이 항상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분쟁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수들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는 복음적 요구를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만이 지독한 증오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167) 우리의 기도가 말이 많은 독백이 되지는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침묵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종종 우리가 회개하도록 초대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참된 행복의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도 안에서 던져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른 것을 말하고 우리의 삶을 진소랗게 표현하여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매 순간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 삶 안에서 어떻게 통합시키는냐이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시편 95,7)

171) 이 책의 아이디어는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되었다. 40여 개의 낱말은 시편에서 사용된 어휘 가운데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성경의 기도는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노래하고, 하느님의 성실하심 또는 그분의 정의를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기쁨과 언급된 바를 신뢰하고 있음을 되풀이하여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편의 어휘는 일상생활에서 취한 것으로서 참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는 난해하거나 엘리트적인 어휘가 없다. 시편에서는 인공적이거나 상상으로 꾸민 언어가 아닌 일상의 낱말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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