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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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의사이자 신비가인 그녀를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으로 여겼다. 다른 저서를 통해 접한 그녀의 영성은 한번에 알아듣기 어려워 나의 부족함을 탓하곤 했었다. 하지만 <죽음의 신비>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죽음의 의미와 죽음에 이를 사람이 기억해야 할 일들은 내가 어떤 죽음에 이르고 싶으며, 그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답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죽음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이다. 그러나 처벌로써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차원의 벌이 아니다. 인간은 죽을 운명임에도 하느님의 도움없이 세상을 살아가다 조언과 충고도 따돌리다 죽음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마치 세상에서 자신이 누리던 것들이 자신과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살아간다. 마침내 하느님께 돌아가야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사람에게 처벌로써의 죽음이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본보기가 되어주는 성경 속 인물들과 성인들, 구원의 협조자이신 성모님이 계심을 또한 교회 공동체가 우리의 죽음을 준비시키며 죽음 이후의 안위까지도 기도로써 살핌을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만 배웅하지 않고, 하늘나라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 걸어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다만, 우리가 중간 수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며 신앙과 관련하여 어떤 것은 선호하고 다른 어떤 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갑작스레 자기 존재를 뿌리째 뒤흔들거나 안전하게 여겨온 기반에 금이 가고 불안하리만치 동요를 일으키는 것들과 마주할 때조차 주저 없이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 삼킨 성인들처럼 전심을 다해 신앙인의 삶을 살라고 격려한다.

어쩌면 세상에 비춰지는 죽음은 쓸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말하기 꺼려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도 같다. 나 역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마음과 말을 아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도 언젠가는 그 수순을 밟게 되리라는 것이 자명하니 어찌 준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음의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죽음 준비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죽음에 이른 모습은 움켜쥐지 않고 내어놓은 사람이다. 빈손으로 가는 죽음을 기억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 때문에 죄짓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겸손을 아는 사람이다.

<죽음의 신비>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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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모두와 함께 - 레오 14세 교황의 가르침
레오 14세 교황 지음,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옮김, 한영만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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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님은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1977년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의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한 후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2025년 가톨릭 교회의 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 책은 레오 14세 교황님이 선출된 2025년 5월 8일부터 6월 29일까지의 연설, 강론, 담화 중 28편을 날짜순으로 엮은 책이다. 이 중에서 5월 18일 베드로 직무 개시 미사 강론을 영상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교황님이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선택되었다고 하신 말씀이 감명 깊어 기억하고 있다. 겸손하게 직무를 받아들이는 멋진 모습이라고 여겼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가정, 어린이, 조부모, 노인의 희년에 행한 강론, 2025년 6월 1일 일요일'처럼 그 연설이나 강론을 말씀하신 날짜와 참석자들을 유추할 수 있는 미사의 지향이 적혀 있다. 또한 강론에 담긴 메시지들이 미사에 참석한 이들 - 추기경님들, 교회 운동 단체들, 자선 단체들, 천체 물리학 여름 학교 참가자들, 주교들 - 이 공감할 수 있고 기억해야 할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이 놀라웠는데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씀들 속에서 교황님의 식견을 엿볼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태도를 조목조목 정리해 주셔서 내가 교회 일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직업생활이나 일상에서 기억하여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도록 했다.


교황님의 말씀을 읽으며 무엇보다 레오 14세 교황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가 세계 곳곳에 닿아 많은 이들이 희망과 사랑과 함께 하기를 바랐다.



***

37) 바로 이런 발자취를 따르도록 부름받았다고 느낀 저는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핵심은 이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레오 13세 교황님은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를 통해 거대한 첫 산업 혁명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또 다른 산업 혁명과 인공 지능의 발전에 응답하기 위해, 모두에게 그분의 사회 교리의 유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62) 저는 아무런 공로도 없이 선택되었으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이 되기를 원하는 형제처럼, 그리고 단 하나의 가족 안에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의 길을 여러분과 함께 걷기를 원하는 형제처럼 여러분에게 다가갑니다.


84) 저는 5월 8일 저녁 첫인사에서 권고드린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함께 선교하는 교회, 다리를 놓는 교회, 대화를 나누는 교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선, 우리의 존재, 우리의 대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이"에 대해서 말입니다.


108) 감사와 희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부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혼인은 이념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참사랑의 규범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전적이고, 충실하고, 결실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여러분을 하나의 몸으로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여러분에게 생명을 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자녀에게 일관성의 모범이 되어 주고, 자녀들에게 바라는 대로 여러분이 몸소 행동하며, 순종을 통해 자유를 배우도록 교육하기를 바랍니다. 항상 자녀에게서 장점을 찾고, 이를 자라게 할 방법을 찾도록 격려합니다.


109) 가정에서 신앙은 세대를 통해 삶과 함께 전해집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나 마음속 애정처럼 함께 나눠집니다. 이처럼 가정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우리의 선익을 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144) 항상 축복하는 눈길을 간직하십시오. 베드로의 직무는 바로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선을 발견할 줄 아는 것, 심지어 숨어 있는 선까지도, 소수에 불과한 선까지도 알아볼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선교사로 생각하십시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봉사하면서 친교와 일치의 다리가 되고, 함께 일하도록 부름받은 각국 당국들과 어디서든 진실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키워 나가기 위해 교황이 파견한 선교사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역량이 성화를 향한 확고한 다짐으로 언제나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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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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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미사 전례의 화답송으로 또 성가의 가사로 노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시편의 한 구절을 기도 안에서 떠올릴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은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0가지 단어는 시편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단어들의 뜻을 기억하며 시편을 읽는다면 시편을 보다 깊이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겠다.

저자는 시편의 제한적 어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기도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을 찾을 것이 아니라 기도의 본질, 즉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처음 아이와 기도할 때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기도하고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그런 말 못하는데"하며 기도하기를 주저했다. 엄마, 아빠가 사용한 말이 아이에게는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오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서 즐거웠습니다'라거나 '선물을 받아서 기뻤습니다.'하고 한 문장으로 기도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후로 아이는 기도 시간에 자신만의 언어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책 속에 시편을 읽으며 생길 수 있는 의문점들과 배울 점들을 정리한 부분들 덕분에 시편을 보다 탐구하며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시편을 읽기 전 또는 시편을 읽고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12) 어휘의 관점에서 시편집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바로 '반복'이다. 시편 기도의 어휘가 광범위하지는 않아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기도를 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만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인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낱말 그 자체는 대화의 초기 실마리, 통교를 위한 출발점일 뿐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낱말들이 전제하고 있고 또 심화하도록 도와주기를 원하는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103) 비록 시편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을 갈망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하더라도, 시편은 우리가 속한 세상의 거친 현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모든 불의한 상황을 거슬러 강한 분노를 매우 장연스럽게 표현한다. 폭력을 묘사하는 표현을 만날 때, 이것을 교의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내 안에는 폭력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가?',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115) 우선 이 세상에는 '원수들'이 있다는 현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민족과 나라,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충돌, 다툼은 인간관계가 아직도 가끔 대립과 적대감으로 휩싸여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원수일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잘못이 항상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분쟁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수들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는 복음적 요구를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만이 지독한 증오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167) 우리의 기도가 말이 많은 독백이 되지는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침묵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종종 우리가 회개하도록 초대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참된 행복의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도 안에서 던져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른 것을 말하고 우리의 삶을 진소랗게 표현하여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매 순간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 삶 안에서 어떻게 통합시키는냐이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시편 95,7)

171) 이 책의 아이디어는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되었다. 40여 개의 낱말은 시편에서 사용된 어휘 가운데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성경의 기도는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노래하고, 하느님의 성실하심 또는 그분의 정의를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기쁨과 언급된 바를 신뢰하고 있음을 되풀이하여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편의 어휘는 일상생활에서 취한 것으로서 참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는 난해하거나 엘리트적인 어휘가 없다. 시편에서는 인공적이거나 상상으로 꾸민 언어가 아닌 일상의 낱말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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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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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는 1905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났고, 1929년에 예수회에 입회, 1936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를 만나 영적으로 교류하다 1945년에 함께 재속 수도회를 설립했다.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추기경에 서임했지만 수여식 이틀 전에 선종했다.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는 묵상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책에서 밝히듯 묵상에 이르기 위한 준비법을 소개하지 않는다. 발타사르는 침묵을 근간으로 하는 수동적이라서 적극적인 묵상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묵상법이라 역설한다. 특히 '성모 마리아는 모든 묵상과 관상의 원형'이라고 밝히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묵상 안에서 따라야 할 본보기가 바로 성모 마리아라고 한다. 얼마 전부터 비로소 알게 된 묵주기도의 은총과 성모님의 순명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책에서 성모님의 삶(태도)처럼 묵상하라는 대목을 만나 새롭게 또는 다시금 성모님에 대해 묵상해 보고 싶어졌다. 덕분에 망설였던 <완독 챌린지>에 참여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마침 10월에 함께 읽는 책이 <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로 성모님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묵상 중 일어나는 세상에 관한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함을 알린다. 세상사에 대한 사회나 나의 판단을 멀리하고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묵상 중에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계획을 알아차리는 것이 또한 묵상 중 침묵이 필요한 이유다. 아마도 내가 침묵하여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자하는 갈망이 클 때, 그때가 그분이 말씀으로 활동하기 가장 좋은 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눈을 감고 고요하게 머무를 때 한동안 풀리지 않았던 고민과 무거운 마음이 한 말씀으로 스르륵 풀렸나 보다.

"곧 자신의 모든 지상적인 것을 아버지로부터의 사명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그분의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기도 안에서 그분과 관계를 유지하는, 신인의 내적 자세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마치 커튼이 올라가듯이, 이 단계 어디에서나 우리는 그 중심을 볼 수 있다. 그때 이것이 필수이다. 멈추는 것! 커튼이 올라간 것은 은총이며, 그 본 것을 파악하고 그것이 자신을 꿰뚫게 하라는 초대이다. 이는 그것으로 성취되길 바라는 갈망(결코 향유하고 소유하려는 의지가 아닌)이 열리는 가운데 일어난다. 우리에게 이것이 허락된 것, 우리가 진열창을 통해 과일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보고", "시식"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 심지어 압도적인 기쁨일 수 있다.(87쪽)"

묵상하며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궁금한 이들, 무엇을 청해야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

29) 그리스도교적으로 요구되는 침묵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믿는 이(신자)는 자시닝 들어가야 할,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있게 되는, 조요하고 숨겨진 "골방"(마태 6,6)을 언제나 이미 자신 안에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 안에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아마도 철부지 "작은 이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는"(마티 18,10),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를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43) 그리스도인으로서 묵상하는 이는 오직 그에게 선사된 신적인 영을 통해서만 하느님 말씀의 광대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에게 전달되는 하느님의 영을 통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내면이 무엇이닞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1코린 2,10 참조)?

이것은 묵상하는 이가 묵상하고자 하는 장면으로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자주 반복된 묵상 지침을 고려할 때 즉시 명확해진다.

66) 묵상하는 이의 시선은 자기 자신에게 도덕적 적용을 하기 위해 일찌감치 예수님에게서 떠나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더 잘 보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자기 상황의 변화 또한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변화는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나,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다. 곧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시는 분의 시선에서]......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히브 4,12-13 참조)

79)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러저러한 "기도의 단계"에 올라섰다고 "어떤 교만이나 허영심에서 우리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드릴 수 있고 또 두드려야 하지만, 우리가 두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두드림에는 그러한 마법적인 힘이 들어 있지 않다. 이러한 말씀의 외견상의 침묵은 세 가지 관점 모두에서 집중적인 가르침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는 점, 그리고 [감각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1베드 1,8) 속에서도 그 "변용"은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점, 그런 다음에는 이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87) 곧 자신의 모든 지상적인 것을 아버지로부터의 사명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그분의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기도 안에서 그분과 관계를 유지하는, 신인의 내적 자세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마치 커튼이 올라가듯이, 이 단계 어디에서나 우리는 그 중심을 볼 수 있다. 그때 이것이 필수이다. 멈추는 것! 커튼이 올라간 것은 은총이며, 그 본 것을 파악하고 그것이 자신을 꿰뚫게 하라는 초대이다. 이는 그것으로 성취되길 바라는 갈망(결코 향유하고 소유하려는 의지가 아닌)이 열리는 가운데 일어난다. 우리에게 이것이 허락된 것, 우리가 진열창을 통해 과일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보고", "시식"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 심지어 압도적인 기쁨일 수 있다.

134) 묵상에 세상을 포함시키는 것은 결코 산만함의 성격이 아니며,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집중에 속하는 일이다. 바로 그분의 계시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집중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중은 우리가 묵상 가운데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할 때만 일어난다. 세상이 그 자신을 보는 방식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방식도 결코 묵상에 알맞지 않다(그것이야말로 정말 산만함일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알맞은 방식이다. 곧 세상이 하느님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하느님으로부터의 멀어짐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의 행위로 세상을 되찾아 오시는, 그분의 칠밀함[하느님과의 가까움] 안에서, 바로 그분 아들의 파견 안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묵상에 알맞다. 삼위일체이시며 당신 사랑의 삶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그분 안에서""우리는 살고 움직이며 존재"(사도 17,28)한다. 내가 모든 이["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 마태 25,40 참조)에 대한 그분의 헌신을 고려하지 않고는 결코 하느님의 헌신을 묵상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 묵상과 나의 일상적인 세상일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전제 조건이다.

161) "따라서 그리스도교 묵상은 온전히 삼위일체적이며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적이다. 아무도 하느님을 찾기 위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성에 등을 돌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기 위해 모든 이는 성령 안에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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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하루의 리듬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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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특별한 하루를 위한 리추얼 모음집으로,

나만의 고유한 속도, 고유한 평온에 이르는 방식을 찾아가도록 마중물이 되어주는 책이다.

책에 소개된 리추얼 중, '이것이 바로 나다'하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는 것, 스스로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생의 끝을 떠올리며 공간과 물건과 작별하면서 사는 것에서 위로와 안정감을 느꼈다. 저자의 리추얼은 나로 향하지만 결국 하느님과 연결된 나를 발견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떠올려 본 내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느님과 영적으로 만나기 위해 마련했던 리추얼에는 성경쓰기와 묵주기도, 영적도서 읽기, 그리고 아침에 하루를 봉헌하며 올리는 화살기도가 있다. 그 외에 안셀름그륀 신부님처럼 스스로에게 하는 말, 관계 안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들도 나의 리추얼로 만들어 보고 싶다.

만약 아직 리추얼이 하나도 없다면 리추얼 백과사전인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리추얼, 하루의 리듬>에서 마음에 드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

***

56) 요즘에는 정해진 일정표에 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시간의 신비를 꺠닫기를 원하며, 계절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알아 가려고 합니다. 자신 안에서 삶의 충만함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95)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집중하세요. 숨을 내쉬면서 지금 당신을 사로잡는 것들을 내려놓으세요. 그저 당신이 숨을 쉰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내면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다."

이 말을 하면서 당신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 바로 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나는 단순하고 주도적으로 산다.'

그리고 자주 이렇게 말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나다."

아침에 알람 시계가 울릴 때마다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세요. 그러면 오늘 당신을 기다리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내적으로 자유롭게 서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와 대화하거나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이렇게 말해 보세요. 그 순간, 당신은 자유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자유를 그 모임 내내 유지할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그 모임을 다르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달라질 겁니다. 언젠가는 이 내적 자유가 당신의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연습하는 것, 당신 자신에게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21)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감추고 싶은 마음, 환상, 감정, 열정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런 것들을 시인하지 않고 억누른다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융은 모든 사람 안에 어두운 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좋은 면만 내보이고 어두운 면은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감춰진 이 어두운 면들은 내 마음속 그림자 영역에서 자리를 넓히려 하고 종종 불쾌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억눌린 공격성은 우리의 표정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억눌린 욕구는 남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선을 넘는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면은 우리가 화해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자기 비난', '죄책감', '자기 비하'를 일삼았던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망상적인 자아상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헛된 자아상과 결별해야 합니다. 감추고 싶었던 자기 자신과 화해하면서 스스로 "괜찮다."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167) 다른 사람들의 어떤 모습에 화가 난다면, 그 모습들을 당신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삼아 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의 태도에 화가 나는 걸까? 혹시 나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서 당신을 비추는 거울을 발견한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그 거울을 통해 비치는 당신의 본모습과 그동안 억눌러왔던 행동 방식, 깊은 내면의 욕구들을 하느님께 솔질하게 내보이세요. 그리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바로 그 연약하고 감추고 싶었던 부분들 안으로 온전히 흘러갈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 보세요.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의 모든 면을 감싸안을 때, 진정한 치유과 통합이 시작됩니다.

만약 누군가의 태도가 당신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여 화가 난다면,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당신의 내면에 굳건히 머물기 위해 애쓰세요. 물리적으로 그 사람 곁에 있어야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과 건강한 거리를 두세요. 이러한 내적인 분리를 통해 당신은 그의 태도에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평화를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행동에 대한 당신의 반응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는 지혜입니다.

258) 방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고 이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언젠가 모든 것과 작별할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나는 이 방에 있는 것들을 가져갈 수 없다. 내가 떠나면 다른 사람들이 이 방에서 살 것이다. 이 방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안정감을 느꼈던가? 나는 이 공간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 무엇이 내 마음에 각인되었는가?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당신이 모든 것을 견뎌 내는 모습을 그려 보세요. 당신은 참된 자아와 함께 하느님께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당신의 진짜 모습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래 생각하셨던 대로 말이지요. 그러나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것,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당신의 참된 모습입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당신을 내적으로 구속하고 편협하게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느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내적 자유에 대한 무언가를,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작별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여기'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 여기'는 언젠가 사라지고 영원한 순간에 이른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순간에 이르게 되면 '소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존재'만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 존재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이제 당신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압니다. 나는 내가 체험하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지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순간을 다시 내려놓습니다. 나는 내가 인지하는 것에 감사하지만, 그것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언제든 내가 체험하는 것들과 작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39) 독자 여러분도 알맹이 없는 낡은 의식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을 찾아나서길 권합니다. 나아가 여러분의 삶에 깊은 신뢰와 순수한 기쁨, 진정한 자유,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의식들을 발견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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