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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세계적 사상가 4인의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김명주 옮김, 장대익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평점 :

유신론의 도전으로부터 무신론을 지키려는 한 편의 <어벤져스> (p7)
이 시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사상가가 ‘신’에 대해 자유롭게 대담하는 『신 없음의 과학』은 그 라인업부터 화려하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주문을 깨다』의 대니얼 데닛, 『종교의 종말』의 샘 해리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까지. 인류 최고의 지성이 만나 ‘망상’과도 같은 유신론을 비판한다.
이들의 기본적인 논지는 무신론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묘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리처드 도킨스의 경우 4인의 기사 중 모든 부분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데니얼 데닛은 종교의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교회가 세상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종교의 독단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샘 해리스는 ‘다른 종류의 교회’를 말한다. ‘신비’와 ‘미신’을 구분해야 한다는 히친스는 이러한 주제로 토론하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
“당신은 그동안 인생을 낭비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p87)
이 발언의 주인공은 샘 해리스지만 모든 기사들은 이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신론자에게 종교가 거짓임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낭비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도신경>에서 끊임없이 믿는다고 되뇌는 것은 역설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는 주문이다. 똑같은 형태의 논쟁 같지 않은 논쟁, 불합리한 추론을 사용하고, 믿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p103)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종교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데닛의 주장은 매우 타당해보였다. 믿지 않는 것에 상처받고 믿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지를 찬양하는 것이 사기꾼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렇기에 그는 종교도 제약 산업이나 석유 산업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길 바란다(p89).
네 기사 모두 종교를 비판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이 부분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인 서구와 우리나라의 차이가 보인다.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몰몬교인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 조금 높다는(p9) 통계를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이미 국민의 절반 이상(56.9%)이 무교기 때문에 무신론자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다. 네 기사의 대담은 상당히 비장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종교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이 서구권 국가만큼 강제적이지 않다보니 도대체 우리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은 서양 국가들이 왜 유독 종교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입장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여러분은 아무도 믿음이 없는 세계를 기대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p157)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 출신의 네 명의 기사가 무신론자를 자청하며 사회적인 분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정녕 믿음이 없는, 아무도 교회를 가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인가?
강경파인 도킨스는 이 말에 긍정한다. 그는 아무런 증거 없이 믿는 종교는 사람의 사고력을 저하시킨다 주장한다. 도킨스는 텅 빈 교회를 바라지만 잘 써진 소설인 <성경>의 문학성마저 부정하진 않는다. 데닛은 종교가 점성술의 지위로 강등되길 희망한다. 히친스는 종교인들이 믿음을 잃는다면 자신은 논쟁 상대를 잃게 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는 유머를 보인다. 해리스는 교회가 텅 비기를 바라기보단 심오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다른 교회를 바란다. 이들 대부분 교회가 지상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진 않는 것 같다. 다만 누군가의 강요로 인해 생각하고 의심하는 능력을 잃게 만드는 종교를 경계한다. 이들은 특정 종교가 잘못된 거라 말하지도 않는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결국 다 타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히친스는 모든 종교가 똑같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p190). 아직 우리나라에는 심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의 경우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다 보니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것 역시 네 명의 기사들이 고민해야 할 사명인 것 같다.

과학에는 신비라고 할 것이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문제, 난해한 문제가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존재해요(p119).
왜 유독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할까? 온전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종교인들의 지상최대의 목표다.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의 지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 이상한 집단에 많은 이들은 중독됐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강요받은 적은 없지만 집단적 광기를 보이는 집단에 속한 이들의 사고가 신기해 종교에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광활한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한 인간이 어찌 세상을 다 알 수 있다 말하겠는가. 그런데 알지 못하는 부분을 단지 ‘믿음’이란 망상으로 채울 수 있는가? 항상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4명의 석학의 대담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가 왜 문제인가를 넘어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한 차원 더 높게 문제에 다가갔다. 단순히 왜 사람들은 신을 믿을까만 고민했던 내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세상을 바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 없음의 과학』은 신자,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지만 오랜 시간 신에 대해 연구해온 석학들의 진수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