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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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2,000년도 넘은 역사에서 나타난 진리를 찾는 방식이며 오류나 거짓을 알리는 한 방식이다(p23).

 

철학에는 왜? 라는 질문이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철학가들은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을 만족하지 않고 그 너머의 진리를 탐구하려한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요하다보니 현대의 일반인들에게 난해하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란 이미지를 띄운 것 같다. 철학에 대해 알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두려운 독자들을 위해 페르난도 사바테르는 윤리와 정치를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을 출간한 이후 그 세 번째 시리즈로 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는 책을 펴냈다.

 

고대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현대의 아렌트와 삼브라노까지. 시대를 초월한 철학가들의 관심사가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옮겨왔는지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책은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가를 탐구해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현대에 살았다면 어그로꾼이 아니었을까, 그는 반어법을 통해 무언가를 잘 안다고 믿는 사람들을 차례차례로 무너트렸다. 그러다보니 미움도 많이 받았지만 앎을 위한 노력만큼은 필사적이었다. 그는 철학자들은 우리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며 이 무식함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p42)이라고 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자의 본분을 잊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살아생전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아테나의 광장인 아고라에서 시민들과 토론을 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글로 정리해 후세에 남긴 것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처럼 자유로운 토론을 즐기기보단 철학 학교를 세워 제자를 양성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마라(p60)” 는 무시무시한 플라톤의 철학 학교 아카데메이아의 경고 문구만 보더라도 불변하는 지식인 기하학과 숫자에 대한 플라톤의 관심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사상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어받는다. 그는 최초로 행복에 관해 언급한 학자이기도 하다.

 

중세에 이르러 철학은 종교와 결탁한다. 신앙과 이성은 양립할 수 있는가(p106)’ 는 중세 철학가들의 과제였다. 가톨릭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선과 악의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를 맹렬히 비난했으며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했다. 다만 신이 인간을 지옥이란 고통에 밀어 넣는 이유만큼은 끝까지 규명하지 못했다. 가톨릭의 또 다른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5가지 방식을 통해 신앙을 이성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다만 그 증명 기반이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론에서 비롯되다 보니 그가 말한 신이 기독교의 하느님뿐만 아니라 다른 신의 존재 증명에 활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종교인 에라스뮈스는 그 누구보다도 사치스러운 교황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다만 종교개혁을 이룩한 루터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는 일평생 애매한 입장을 보였지만 전쟁에 관해서만큼은 단호했다.

 

점차 철학의 세계는 심오해진다. 데카르는 확언할 수 있는 지식을 찾기 위해 의심했다. 감각적, 수학적 지식은 의심하는 그에게 있어 언제든지 변하거나 속임을 당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그를 만족시킨 것은 존재하는 나였다. 나는 생각하고 의심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p158) 깨달음을 얻은 그는 비로소 현실의 지식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회의론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인 것 같다. 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그가 철학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는 철학을 탄탄한 이론의 기반 위에 세우고 싶어 했다. 그가 출간한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준다. 칸트의 철학은 철저히 이성에 기반을 한다. 칸트는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법과 같은 강제가 아닌 이성적인 존재의 자유의지의 결과로(p211)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가 현대를 살았다면 나치의 전체주의를 어떻게 비판했을까. 정치철학의 권위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대학살의 사형집행인인 아이히만 재판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시민이 정치적 자질과 도덕적인 책임을 포기하고, 의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여 범죄를 저지른 악의 평범성’”에 관해 이야기한다(p296).

 

300페이지 남짓한 이 책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철학가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각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철학자들이 답하기 위해 어떤 사상이 기반이 되었는지 그 변천사를 알고 싶다면 철학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린다는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철학사의 흐름을 따라 읽다보면 인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시대를 지탱하던 주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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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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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대한민국의 정치를 논하다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 4개의 키워드로 한국 정치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강원국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국제적으로는 높다고 말하지만 현실 정치에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자면 일단 대통령제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부를 만큼 대통령 1인의 권력이 막대하다. 그 근거는 청와대 비서진의 수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각제와 달리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려면 내 사람을 곁에서 수족처럼 부려야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일단 대통령제를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이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었단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임시정부시절부터 유독 대통령에 집착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것도 결국 한민당과 이승만의 타협의 결과라니. 당시 이승만에게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보냈던 선조들을 탓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할 노릇이다. 그 이후 박정희와 전두환을 거치며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더 막대해진다. 6월 민주항쟁으로 값지게 얻은 민주화 앞에서 거물급 지도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닌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분산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이지만 정작 선거에서 패배하고 레임덕에 걸리면 허수아비보다도 못한 신세라니. 역대 대통령 중 이러한 전천을 밟지 않은 자가 없다는 걸 미루어보면 분명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중임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임기가 길어졌다 해도 결국 비슷한 상황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영호남을 대표로 하는 거물급 정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당이 지역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한때는 시대를 호령했던 3김은 과거의 산물이 되었는데도 지역갈등과 이념을 이용하는 구대적인 정치는 여전하다. 3당 합당 이후 이어져 온 양당의 대립이 21세기에도 지속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기성 정치에 신물을 느낀 사람들이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인들에게 등을 올리고 정치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에게 환호한다. 저자는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대중적 인기로 정치에 입문하는 것을 경계한다. 과거와 현재 정치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 중 하나도 그때는 확실한 리더십을 가진 정당의 총수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치인들도 개인 활동에 더 열을 올린다.

 

현실 정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나라만의 정치 발전을 이룩해냈다. 지금은 대통령을 욕해도 잡아가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다. 저자는 점점 국가의 역할보다는 시민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p317) 이라는 저자의 바람처럼 불의에 투쟁하여 얻은 우리 민주주의가 한층 더 미래지향적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정치사를 한 눈에 보면서 참 많이도 분통이 터졌다. 우리는 왜 이럴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 사람들을 우매한 민중이라 답답해하기보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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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세계적 사상가 4인의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김명주 옮김, 장대익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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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의 도전으로부터 무신론을 지키려는 한 편의 <어벤져스> (p7)

 

이 시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사상가가 에 대해 자유롭게 대담하는 신 없음의 과학은 그 라인업부터 화려하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주문을 깨다의 대니얼 데닛, 종교의 종말의 샘 해리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까지. 인류 최고의 지성이 만나 망상과도 같은 유신론을 비판한다.

 

이들의 기본적인 논지는 무신론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묘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리처드 도킨스의 경우 4인의 기사 중 모든 부분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데니얼 데닛은 종교의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교회가 세상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종교의 독단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샘 해리스는 다른 종류의 교회를 말한다. ‘신비미신을 구분해야 한다는 히친스는 이러한 주제로 토론하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

 

당신은 그동안 인생을 낭비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p87)

 

이 발언의 주인공은 샘 해리스지만 모든 기사들은 이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신론자에게 종교가 거짓임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낭비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도신경>에서 끊임없이 믿는다고 되뇌는 것은 역설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는 주문이다. 똑같은 형태의 논쟁 같지 않은 논쟁, 불합리한 추론을 사용하고, 믿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p103)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종교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데닛의 주장은 매우 타당해보였다. 믿지 않는 것에 상처받고 믿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지를 찬양하는 것이 사기꾼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렇기에 그는 종교도 제약 산업이나 석유 산업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길 바란다(p89).

 

네 기사 모두 종교를 비판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이 부분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인 서구와 우리나라의 차이가 보인다.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몰몬교인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 조금 높다는(p9) 통계를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이미 국민의 절반 이상(56.9%)이 무교기 때문에 무신론자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다. 네 기사의 대담은 상당히 비장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종교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이 서구권 국가만큼 강제적이지 않다보니 도대체 우리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은 서양 국가들이 왜 유독 종교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입장을 보이는지 궁금하다.

 

여러분은 아무도 믿음이 없는 세계를 기대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p157)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 출신의 네 명의 기사가 무신론자를 자청하며 사회적인 분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정녕 믿음이 없는, 아무도 교회를 가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인가?

 

강경파인 도킨스는 이 말에 긍정한다. 그는 아무런 증거 없이 믿는 종교는 사람의 사고력을 저하시킨다 주장한다. 도킨스는 텅 빈 교회를 바라지만 잘 써진 소설인 <성경>의 문학성마저 부정하진 않는다. 데닛은 종교가 점성술의 지위로 강등되길 희망한다. 히친스는 종교인들이 믿음을 잃는다면 자신은 논쟁 상대를 잃게 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는 유머를 보인다. 해리스는 교회가 텅 비기를 바라기보단 심오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다른 교회를 바란다. 이들 대부분 교회가 지상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진 않는 것 같다. 다만 누군가의 강요로 인해 생각하고 의심하는 능력을 잃게 만드는 종교를 경계한다. 이들은 특정 종교가 잘못된 거라 말하지도 않는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결국 다 타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히친스는 모든 종교가 똑같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p190). 아직 우리나라에는 심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의 경우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다 보니 모든 종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것 역시 네 명의 기사들이 고민해야 할 사명인 것 같다.

 

 

과학에는 신비라고 할 것이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문제, 난해한 문제가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존재해요(p119).

 

왜 유독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할까? 온전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종교인들의 지상최대의 목표다.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의 지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 이상한 집단에 많은 이들은 중독됐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강요받은 적은 없지만 집단적 광기를 보이는 집단에 속한 이들의 사고가 신기해 종교에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광활한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한 인간이 어찌 세상을 다 알 수 있다 말하겠는가. 그런데 알지 못하는 부분을 단지 믿음이란 망상으로 채울 수 있는가? 항상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4명의 석학의 대담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가 왜 문제인가를 넘어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한 차원 더 높게 문제에 다가갔다. 단순히 왜 사람들은 신을 믿을까만 고민했던 내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세상을 바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 없음의 과학은 신자,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지만 오랜 시간 신에 대해 연구해온 석학들의 진수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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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도망치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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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망쳐야 했을지, 어디까지 도망칠건지 궁금증이 가득하네요!! 따스한 이야기라니 어떻게 풀어갈지 더더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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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도쿄행 -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 유람기
이상 외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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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십구 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p174).

 

19세기, 암울했던 그 때 그 시절.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물 밖으로 나갔을 때 느꼈을 그 심정을 어떠할까. 이상의 도쿄행의 실린 지식인들의 유람은 여행이 아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한 사명을 띠고 미지의 세계를 걸어갔다. 도시와 관광지에 대한 감상을 하기 보다는 분석이 우선이었고,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상 시인이 쓴 도쿄에서의 일상은 지독한 가난이 느껴진다. 도쿄에서의 생활이 지금도 해석하기 난해한 그의 작품의 탄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아닐까. 도쿄에서 달을 보며 한탄하는 문장마저 수려하다. 긴자의 화려함과 조선을 떠올리며 지식인의 고뇌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짧은 글이지만 방황하는 이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머문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이들은 도쿄를 기점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허헌의 세계여행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다녔으니. 요코하마에서 하와이로, 미국으로, 아일랜드로, 그의 일주는 거침없었다. 무려 12개국을 유람했으나 그의 일정은 유람이라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영국령에서 독립한 아일랜드의 기개를 부러워하며 서구의 기계공업의 발달에 놀라워하는 그의 기행문을 보고 있자면 조선의 지식인의 깨인 사고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딸 정숙을 미국에서 잠시나마 수학하게 한 그의 선택은 근우회 결성에 큰 이바지를 하지 않았을까. 중간 중간 돈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던 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 19세기 인물인 그와 공감대가 형성된다.

 

박승철의 유람기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할 만큼 지면이 길다. 그가 많은 글을 남겼기에 그러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곳을 갔다.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은 대게 부유한 집안의 자제일텐데 모든 글에서 끊이지 않는 건 그 나라의 물가다. 경비가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들었는지를 굉장히 상세하게 서술해두었다. 동남아의 열대 과일을 먹고 파리의 화려함에 심취한다. 독일에서 괴테의 집을 설명한 내용을 보면 현재의 관광안내책자라 해도 믿을 만큼 그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에게 유람은 외국은 어떤 곳인지를 절실히 알려야하는 하나의 일이었을까. 괜시리 안쓰러워진다.

 

7인의 유람기를 읽다보면 정말 신기하다. 성관호의 이야기를 보면 또 아니지만 그나마 일본 정도는 가볍게 패스하고 이역만리 먼 곳에서 홀로 내딛었을 그 심정을 상상해보면 참 재밌다. 조선에서는 지식인들이었지만 그곳에서는 갓난아기와 다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꽤 엄근진한 유람기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당황함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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