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도쿄행 -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 유람기
이상 외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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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십구 세기와 함께 운명하여 버렸었던들 작히나 좋았을까(p174).

 

19세기, 암울했던 그 때 그 시절.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물 밖으로 나갔을 때 느꼈을 그 심정을 어떠할까. 이상의 도쿄행의 실린 지식인들의 유람은 여행이 아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한 사명을 띠고 미지의 세계를 걸어갔다. 도시와 관광지에 대한 감상을 하기 보다는 분석이 우선이었고,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상 시인이 쓴 도쿄에서의 일상은 지독한 가난이 느껴진다. 도쿄에서의 생활이 지금도 해석하기 난해한 그의 작품의 탄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아닐까. 도쿄에서 달을 보며 한탄하는 문장마저 수려하다. 긴자의 화려함과 조선을 떠올리며 지식인의 고뇌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짧은 글이지만 방황하는 이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머문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이들은 도쿄를 기점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허헌의 세계여행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다녔으니. 요코하마에서 하와이로, 미국으로, 아일랜드로, 그의 일주는 거침없었다. 무려 12개국을 유람했으나 그의 일정은 유람이라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영국령에서 독립한 아일랜드의 기개를 부러워하며 서구의 기계공업의 발달에 놀라워하는 그의 기행문을 보고 있자면 조선의 지식인의 깨인 사고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딸 정숙을 미국에서 잠시나마 수학하게 한 그의 선택은 근우회 결성에 큰 이바지를 하지 않았을까. 중간 중간 돈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던 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 19세기 인물인 그와 공감대가 형성된다.

 

박승철의 유람기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할 만큼 지면이 길다. 그가 많은 글을 남겼기에 그러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곳을 갔다.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은 대게 부유한 집안의 자제일텐데 모든 글에서 끊이지 않는 건 그 나라의 물가다. 경비가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들었는지를 굉장히 상세하게 서술해두었다. 동남아의 열대 과일을 먹고 파리의 화려함에 심취한다. 독일에서 괴테의 집을 설명한 내용을 보면 현재의 관광안내책자라 해도 믿을 만큼 그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에게 유람은 외국은 어떤 곳인지를 절실히 알려야하는 하나의 일이었을까. 괜시리 안쓰러워진다.

 

7인의 유람기를 읽다보면 정말 신기하다. 성관호의 이야기를 보면 또 아니지만 그나마 일본 정도는 가볍게 패스하고 이역만리 먼 곳에서 홀로 내딛었을 그 심정을 상상해보면 참 재밌다. 조선에서는 지식인들이었지만 그곳에서는 갓난아기와 다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꽤 엄근진한 유람기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당황함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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