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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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사는 어떤 동물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소이다. 우리 동물은 살아가는 동안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지요.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p16)

 

장원농장의 흰 수퇘지 메이저 영감은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농장의 동물들을 불러 모아 일장연설을 펼친다. 짧은 생애 동안 오직 인간만을 위해 비참하게 일만하는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추방하고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얻어야 한다는 그의 연설에 많은 동물들이 공감한다. 메이저 영감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투쟁을 위해 우리 동물은 철저하게 단결하고 철저하게 대동해야 한다며(p20) 동물들의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자신들을 착취하는 인간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지 오웰의동물농장은 서슬 퍼런 냉전시대 소비에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소설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이 가진 모순을 꼬집는다. 한 꺼풀만 벗겨놓고 보면 이 작품은 20세기 사회 전반과 소비에트라는 지리적 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타당한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p6) 역자의 작품소개는 이 소설을 단순히 특정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절대 권력은 체제와 무관하게 부패한다.

 

비록 농장 정책에 관한 문제는 다수결에 의해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누가 봐도 다른 동물들보다 똑똑한 돼지들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p72)

 

한없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동물들의 반란은 생각보다 이르게 발발한다. 장원농장의 주인 존스 씨에게 불운이 겹치면서 동물들에게 소홀해졌고, 굶주린 동물들은 결국 사료 창고를 급습한다. 지금껏 반항 한번 한적 없이 인간에게 순응했던 동물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인간들은 줄행랑치고 비로소 장원농장은 인간이 아닌 동물들의 소유가 된다. 돼지들은 메이저 영감의 교훈을 다듬어 만든 동물주의원칙을 일곱 계명으로 요약해 배포한다.

 

첫째,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둘째,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모두 친구이다.

셋째,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여섯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일곱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스노볼나폴레온이 주축이 되어 이끄는 동물농장은 인간과 달리 동물다움을 추구한다. 일곱 계명에서 볼 수 있듯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빠!(p52)”라는 격언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을 동물의 적으로 선포한다. 다만 알파벳도 깨우치기 어려운 동물들이 있는바,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돼지들은 두뇌노동을 하기 때문에 농장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특권을 누린다.

 

처음에는 젖과 사과로 시작했던 돼지들의 작은 특혜가 점차 덩치를 키우고 표면적으로는 평등했던 동물들의 의사 결정은 점점 돼지들의 독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회의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혔던 스노볼과 나폴레온의 갈등은 풍차건설로 인해 절정에 달하고 나폴레온의 계략으로 스노볼은 농장에서 추방당한다. 어느 순간부턴가 동물을 위한 동물농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존스 시대 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고단한 하루를 견딘다.

 

사실인 즉, 존스나 존스 시대와 관련한 모든 일이 그들의 기억에서 거의 다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들은 지금의 생활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 자주 배를 굶주리고 자주 추위에 떤다는 것,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보통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확실히 지금보다도 사정이 더 나빴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노예 신분이었지만 지금은 자유의 몸이 아닌가. (p155)

 

 

 

 

 

 

동물 농장의 모든 사업에 앞장서서 나섰던 복서의 허망한 죽음, 자기도 모르게 바뀐 일곱 계명에 혼란스러워하는 동물들,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돼지들. 이 짧은 책 한권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집약되어 있어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펜에 감탄하면서 그의 재능에 경의를 표한다. 워낙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 무심결에 읽는다면 그 본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갈 확률이 높은데 영미번역의 대가 김욱동 교수 판본으로 만난 동물농장 상세한 해석과 주석으로 가독성을 높였다. 어느 출판사로 읽어야할지 고민하는 분들께 비채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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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가문 메디치 1 -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
마테오 스트루쿨 지음, 이현경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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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라는 건 싸우기 전에 이미 일찌감치 승패가 정해진단다. 이 말 명심해라! 넌 전사 가문이 아니라 은행가, 정치가, 예술가 집안의 자식이다. (p84)

 

유럽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메디치가. 후세에 길이 이름 남길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하고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의 번영을 이끌었던 탁월한 안목과 명성으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다. 메디치가가 살아 숨 쉬었던 15세기 피렌체를 생생하게 그린 마테오 스트루쿨의 권력의 가문 메디치 1 피렌체의 새로운 통치자는 피렌체의 국부라 불린 코시모 데 메디치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굳건히 자리 잡기까지 언제나 영광스러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장 화려한 순간만 보여주는 역사책과 달리 마테오의 소설은 인간적인 고뇌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한 남자를 보여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인생이 꼭 생각했던 것처럼 살아지지 않는다는 삶의 진리를 기세등등한 메디치가도 피해갈 수 없었다. 피렌체,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피어오른 추악한 탐욕은 가장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을 좀먹고 그들의 편에선 메디치가는 눈엣 가시로 전락한다.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전투는 서로 국경선이 인접한 도시 국가의 숙명이다. 내부와 외부의 적 모두에게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메디치가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이미 정해진 승패를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전사가 아닌 그들에게 있을 것인가!

 

어쨌든 당신이 바로 피렌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p101)

 

14292월부터 14539월까지의 메디치가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책의 주인공은 코시모 데 메디치다. 메디치가의 명성에 비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코시모와 로렌초 형제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1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 등장하는 로렌초가, 내가 알고 있는 로렌초인가 의아했다. 타고난 침착함과 통찰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예술에 조예가 깊은 코시모, 냉철한 판단력과 수완으로 메디치 가문의 사업을 잘 이끌어가는 로렌초. 한 사람의 독단 결정으로 종종 반목할 때도 있지만 두 형제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신뢰하며 피렌체와 메디치를 사랑한다. 그들의 아버지 조반니가 독살 당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하며 메디치가에 깊은 원한을 가진 한 여자, 라우라 리치가 등장한다. 1편에서부터 쌓인 악연의 고리는 대를 거듭해 2편과 3편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편의 주인공이 바로 메디치가의 전성기를 이끈 그 유명한 로첸초인데 1편의 로렌초와 2편의 로렌초는 동일인물이 아니다.

 

메디치가와 반목하는 가장 큰 정적 알비치가의 리날도에게 종속된 라우라와 스위스 출신 용병 라인하르트 슈바르츠. 밀라노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까지. 악인의 서사도 충실하게 다뤄 그들이 왜 메디치와 싸울 수밖에 없는지 납득시킨다.

 

제가 항상 원하는 일은 어쩌면 성공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피렌체에 이득이 되고 피렌체를 눈부신 도시로 만드는 데 일역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p224)

 

역사 소설이지만 철저한 자료 조사로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를 잘 고증한 것 치고 메디치 가문이 한없이 선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있어 이게 정말일까? 의아한 부분이 있긴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목숨도 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재력이 부러우면서도 어쩜 저렇게 이상적인 인간으로 그렸을까 주인공 버프가 조금은 거부감 들 때도 있다. 가진 게 많았기에 빼앗기보단 지켜야 했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까지 몸을 낮추고 기회를 엿봤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메디치가가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권력의 가문 메디치 시리즈를 읽어보길 바란다. 부분부분 알았던 메디치가 이야기에 빈 공간을 채워줄 책이다. 책을 읽고 나니 메디치가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피렌체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이 아쉬움은 우선 다음 편으로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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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의 기술 - 일하는 커플이 성공하는 법
제니퍼 페트리글리에리 지음, 곽성혜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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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일이 두 파트너 모두에게 술술 풀려가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한 가지 영역에서 뭔가 탈이 나면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때부터 인생이 빠르게 통제 불능 상태로 빨려 들어간다. (p41)

 

예전처럼 남자가 한 가정의 모든 경제 활동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 이 시대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만난 두 남녀가 한 가정을 꾸렸을 때 이상적으로 일과 사랑 두 가지 모두를 잡는 건 어렵다. 제니퍼 페트리글리에리의일과 사랑의 기술 100쌍의 전문직 커플을 인터뷰한 저자가 크게 3번의 전환기를 맞이할 커플들의 인생 곡선을 예측해 그들이 앞으로 어떤 문제를 직면할 것이며 어떻게 헤쳐 나가야하는지를 기술한다. 삶의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1전환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되는 2전환기, 이전처럼 치열한 삶의 역할에서 벗어난 공허에 시달리는 3전환기. 각자의 시기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커플에게 3번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본다. 이 책은 맞벌이 부부들이 겪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통해 자칫 일과 사랑의 균형을 잃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참사를 막기 위한 좋은 안내서다. 40년 전에는 남자를 우선으로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했다면, 남녀 평등의식이 나날이 강해지는 이 시대의 커플들은 그 무엇보다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예기치 못한 해고, 지역 이동, 해외 파견, 경력상 중대한 기회, 출산, 심각한 질병, 이전 결혼에서 얻은 가족과 새 가족과의 통합 이러한 일들이 모두 밀월기의 종식과 제1전환기의 시작을 알리며 커플의 삶을 거꾸러뜨릴 수 있는 인생의 주요 사건들이다. (p46)

 

제니퍼 페트리글리에리 교수는 자신의 연구 표본을 전문직으로 한정한 만큼 두 사람 모두 커리어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있을 때 닥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여러 모델을 제시해준다. 그녀가 제시한 커리어와 양육 모델은 두 부부가 벽에 부딪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해주지만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고 단언한다. 커플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우선순위를 지정해야 한다. 이때 우선순위는 상대의 경제력이 주가 되어선 안 된다. 경제력이 더 큰 쪽에게 어쩔 수 없이 맞춰야 하는 상황으로 대화가 흘러간다면 상대 배우자는 이때의 앙금을 계속 품고 지낼 수밖에 없다. 어떤 커플이든 이 대화를 나누는 최적기는 바로 지금이다(p60). 서로의 감정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1전환기가 커플에게 자기 선택의 주인이 되라고 요구했다면 제2전환기는 그 선택들에 의문을 제기하라고 떠민다. 그리고 선택들을 잘 지켜왔을수록 의문의 강도는 더 세다(p138)

 

생애 처음으로 찾아온 커플들 간의 위기를 잘 넘겼음에도 나이 40에 이르러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이전보다 더 강렬한 욕망에 시달리며 자신의 커리어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시기다. 이때 서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부부 관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어선 안 된다. 내가 염증을 느낀다면 상대도 그럴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1전환기에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만든 룰을 수정함으로써 서로가 원하는 최선의 길로 이끌어주면 좋다.

 

사회적 위치가 확고했던 1, 2 전환기와 달리 3전환기에는 더 이상 이전처럼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활발했던 정신과 육체는 늙고 노쇠한 채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해야한다. 이때도 결국 대화다.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 해방될 수 없는 인간의 짧은 삶, 이 질문에 답하면서 서로가 함께하기 위해선 앞으로 둘이서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야한다.

 

부부간에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많은 에피소드들이 서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대화가 단절되어 가는지,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게 되는지 잘 표현되어 있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 까지, 적어도 상대가 어떤 가치관에 우선순위를 두는지, 그럼에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결국 한 사람이 포기하고 희생한다면 다음번 전환기 때 그 커플은 더 큰 위기를 맞이할 테니 말이다. 아직 미혼이다 보니 이 책에 나온 기술을 실습할 곳은 없지만 사람이 살면서 인생에서 어떤 위기를 맞이하는지 미리 예습을 하는 건 나쁘지 않다본다. 이렇게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주변에 하나 둘 씩 결혼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선물해주기 너무 좋은 책이다. 결혼하는 친구에게 선물해주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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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
존 C. 머터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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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왜 이리도 불공정해 보이는 걸까? 재난이 덮친 지역은 원래 불공정한 곳일까? 그게 아니라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대신해 재난의 가장 가혹한 피해를 막아 주기라도 하는 걸까? 이에 대해 자연과학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할 수 있다. (p13)

 

무섭게 몰아닥친 재난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진다. 언뜻 보기에 자연의 분노는 모든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연과학자 존C 머터 박사는 본인의 저서재난불평등을 통해 가난과 재난의 상관관계를 서술한다. 책의 부제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는 자연과학자로서 오랜 시간 재난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재해가 정확히 언제 일어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포기했지만 여전히 재난이 불러오는 자연의 혼란을 예측하는 것(p11)을 자신들의 주 임무로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예측 임무를 특정한 재난 그 자체로 한정시키지 않고 재난 전후의 이야기까지 확장시켜 왜 재난이 불공정한지를 설명한다.

 

머터 박사는 재난을 세 국면으로 나눠 재난이 발생하기 전 상황을 국면1, 사건 그 자체를 국면2, 재난 이후를 국면 3으로 기술한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관심 가지는 장면은 짧고 자극적인 국면2. 하지만 그는 국면 13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창한다. 재난을 겪은 후 국면3에서 사회를 재건하는 데 실패하면 또 다른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 주목해(p31) 국면3을 간과하면 더 큰 사회악을 겪을 것을 암시한다. 책에는 국면3에서 재건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수많은 악행이 수록되어 있다.

 

 

자연재해는 부유한 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의 가능성에 더 큰 해를 끼치는데 이는 경제난, 정치적 위기, 무능한 지도자, 부패, 내전, 공중보건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위기는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고 통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p65)

 

같은 재난이 들이닥치더라도 더 큰 피해를 입는 건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아이티의 지진, 미얀마의 사이클론을 예로 들어 국가를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 앞에 처했던 무관심과 정보 소외를 꼬집는다.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는 과거의 재난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천혜의 요지다.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자리한 그들은 재난 경보가 울리기 전에 이미 위험 지역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재난을 미리 알고 있음에도 대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특히 지진의 경우 사람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 때문에 죽는다(p91)는 격언이 허황된 말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의 생활 터전이 되는 건물들은 지진을 견디기 충분한 내진 설계가 되어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재난이 지나간 후에 벌어진다. 모든 걸 잃은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일어설 기반이 없다. 하지만 같은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난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그저 약간의 불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p127).

 

재난 앞에서 권력자는 너무나 많은 유혹에 직면한다. 사회의 다른 요소들이 그렇듯, 재난은 사회적 정치적 재정적 이익에 맞추어 다루어진다. 정부의 형태와 발전 단계는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득을 취하는 도구와 행위자, 방법이 달라질 뿐이다. 재난의 형태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이클론이든 지진이든, 예상을 했든 못했든, 재난 이후의 상황이 주는 유혹은 마찬가지다. (p191)

 

재난 이후, 전 세계에서 해당국의 재건을 위한 성금을 보내온다. 과연 그 돈은 정말 그 지역의 재건을 위해 쓰일까? 실제 아이티에선 재건이란 명목 하에 집행된 사업이 현지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 배불리기에 일조했고, 중국에선 지진 복구보다 다른 지역의 국가 기반 시설 증축에 투여됐다. 미국의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은 골칫덩어리 빈자들을 도시 밖으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재난의 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연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길지 않다(p271). 우리가 자연재해라 믿는 것들도 결국 인재다. 이 책을 읽으며 가난한 사람을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하는 건 인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인간의 목숨이 평등하지 않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모두가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언제고 닥칠 수 있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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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지음, 안영준.엄인정 옮김 / 생각뿔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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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판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비판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방어적인 모습을 지니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33)

 

살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골머리 썩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그 사회를 순탄하게 이루고 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게 이 세상인 걸 어쩌겠는가. 1936,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자기계발서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을 출간했다.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저서는 전 세계로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6파트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시중에 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이 책을 근간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추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관계가 어려운 건 이론과 현실간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책의 첫 파트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 원칙을 설명한다. 남을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유치원생도 잘 아는 이 기본 원칙이 책의 서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면서도 행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다 실수를 하면서 산다. 하지만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은 자신의 허물보다 남의 허물에 더 관대하지 못한다. 프로 악플러였던 링컨이 개과천선해 훌륭한 인격자로 재탄생했다는 일화는 꽤 인상적이었다. 상대의 어리석은 실수에 아무리 관대하려해도 생각처럼 호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겠는가. 상대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 이론적으로는 참 맞는 말인데 벌써부터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느낌이다. 역시 나는 리더의 그릇이 아닌가보다.

 

두 번째 파트는 사람의 호감을 사는 6가지 방법으로 이 역시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웃고, 경청하고 기억해주는 것. 그런데 이기적인 인간이 진정성있게 타인에게 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을까? 행하는 본인도, 보는 상대도 쉽사리 가식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요즘 내 가슴에 항상 새기고 다니는 말이라 그런지 참 반가웠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만 하지 실제로 행동하기에는 너무 어렵긴 하다. 나도 잘못한 건 있는데 그러면 너는? 이런 생각 안할 수 있는 성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뒤이어 나오는 가르침, 특히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상호존중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문제인건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다. 아집인지 고집인지 분별없이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인간관계는 파탄난다. 결국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선 눈치껏 몸을 낮추며 살아야한다는 건데..... 피곤하게 못하겠다.

 

사실 이 책에 계속 거슬리는게 데일 카네기는 본인이 미국사람이다 보니 루즈벨트 대통령을 긍정적인 리더십의 상징처럼 그렸는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유명세 = 그 사람의 인격으로 나는 아직 인정할 수 없나보다. 요즘 출간되는 모든 자기계발서의 액기스가 다 이 책에 모여 있다봐도 무방하다. 다 읽고 이걸 실천하라고? 한숨을 내쉴 확률이 높겠지만 그럼에도 한번쯤은 읽어보길 바란다. 우린 가끔 당연한 걸 잊을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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