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길벗어린이 문학
우메다 슌사코 글, 우메다 요시코 그림, 송영숙 옮김 / 길벗어린이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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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집단 따돌림이 너무나 심각하다 보니 이제 '왕따'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여고생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친구를 두고 장난스레 붙인 말이었다지요? 그러나 일본에서 시작된 '이지메'(집단 괴롭힘)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번져서 지금은 학교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왕따는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따돌림은 어디에나 있었지요.
  옛날의 따돌림은 놀림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동네의 누군가 간밤에 오줌을 싸서 소금을 얻으러 다니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알나리깔나리'하고 약을 올리는 정도였지요. 간혹 마음씨 고약한 아이들이 자신보다 못난 아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때리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행동은 오히려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었습니다. 더구나 금방 놀리다가도 놀이를 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돌리던 아이들과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가 함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일 없이 따돌림이 계속된다거나 따돌리는 행동을 여럿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요. 따돌림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니까요.
  왕따는 다릅니다.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왕따와는 어울려 놀아 주지 않습니다. 한 번 왕따가 되면 더 이상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왕따가 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옛날 놀림 당하던 아이들은 뭔가 모자라고 아둔하거나 창피한 실수를 했다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놀림은 철없는 아이들이 한때 저지르던 잘못이었지요. 그런데 왕따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 심지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한 교실에 왕따 두세 명 있는 것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 곁에서 인기를 관리하며 왕따 시키는 아이들의 편에 서기도 합니다. 이쯤이면 따돌림에 '왕'자가 붙을 만합니다.
  <내 짝꿍 최영대>(재미마주)에서 영대는 비록 왕따이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대를 안쓰러워하는 짝꿍이면서 영대가 왕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요. 영대는 엄마가 없어서 항상 지저분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말도 잘 못합니다. 아이들의 놀림을 견디다 못한 영대는 수학 여행을 가서 참아왔던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 버립니다. 때리면 바보처럼 맞을 줄만 알았던 영대가 큰 소리로 울어버리자,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영대에게 미안한 마음에 함께 울음을 터뜨리지요. 한 순간에 왕따가 사라지는 따뜻한 동화입니다. 그런데 과연 왕따가 이렇게 쉽게 사라질까요?
  영대와 비슷한 아이가 있습니다. <까마귀 소년>(비룡소)의 '땅꼬마'입니다. 늘 뒤처지고 공부도 꼴찌라서 영대처럼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런데 '땅꼬마'에게는 그다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지요. '땅꼬마'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괴로워하고 참는 것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왕따 시키지 않는 자연과 친해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무며 새, 벌레들을 관찰하고 사랑하면서 '땅꼬마'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특별한 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변함없이 왕따인 채. 새로 온 선생님이 '땅꼬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영원히 왕따로 남았을지도 모르지요.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기회를 주고 '땅꼬마'는 6년 동안 자신을 왕따 시킨 아이들 앞에서 까마귀 소리를 발표합니다.
  <모르는 척>(길벗어린이)은 더욱 살아 있는 왕따 이야기입니다. '나'는 자신도 왕따가 될까 봐 같은 반 돈짱이 따돌림 당하는 걸 모르는 척합니다. '나'는 돈짱이 괴롭힘을 당할수록 덩달아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돈짱은 어머니 앞에서 당한 망신을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야라가세에게 그대로 갚아 줍니다. 그리고 전학을 가게 되지요. '나'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은 야라가세 패거리의 눈치를 살피기만 할 뿐 돈짱의 전학을 보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야라가세가 중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야라가세 역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그 분풀이로 돈짱을 괴롭혀 온 것입니다.
  나보다 센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주먹을 들이대는 것이 왕따의 본모습입니다. 셋만 모이면 왕따가 생긴다는 말은 누구도 왕따를 피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같이 왕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혹시 모두가 야라가세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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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 왼발 비룡소의 그림동화 37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정해왕 옮김 / 비룡소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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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늙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러고 나니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늙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늙고 죽습니다. 발버둥치며 젊어지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름살을 펴고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늙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에 걸맞게 흰머리와 주름을 갖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다 보니 사람의 수명도 늘어나고 노인 인구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노인으로 살아갈 날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 동화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몇몇 어린이들은 어쩌면 노인으로 살 날이 젊은이로 살 날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리다고 해서 노인을 싫어하거나 피하는 어린이들이 종종 보이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몇 살이든지 모두가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담고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 나를 세상에 있게끔 해 줬고 나의 미래를 보여 주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늙었다고, 이제는 지겹고 쓸모도 없다고 스스로 죽으러 가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비룡소)의 아우레리오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는 하나 남은 손자 페피토에게 자신이 탄 수레를 끌게 하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산길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곧 죽을 테니까 관심도 없다는 투로. 그러나 산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지혜가 필요한 이들이었습니다. 맛있는 치즈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에 넣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타가 좋은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손을 봐야 하는지 묻고 할아버지가 가볍게 해결해 줄 때마다 너무나 고마워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에 필요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신나게 내려왔지요.
  할아버지가 떠나면 혼자 남게 되는 손자 페피토가 얼마나 슬플까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요?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질병에 걸려 힘겹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오느라 고장나 버린 몸이 노인들을 더욱 고달프게 하지요. <오른발 왼발>(비룡소)의 할아버지는 원래 건강한 노인이었습니다. '오른발 왼발' 하면서 손자 보비의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보비와 블록 쌓기를 함께 해 주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앓아 누워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됩니다. 어릴 적 보비처럼 말이지요. 할아버지가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은 보비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를 해 주고 밥도 떠 먹여 주고 걸음마도 가르쳐 줍니다. '오른발 왼발' 하면서.
  우연인 것처럼 두 작품 모두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비룡소)의 할아버지는 늙었다고 삶을 포기해 버리려 합니다. <오른발 왼발>(비룡소)의 할아버지는 뜻밖에 병이 걸려 가족들을 걱정에 빠뜨리지요. 어쩌면 두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슬픔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요. 왜 아직 살아 있는 목숨을 버리려고 했을까요? 무엇이 병에 걸리게 한 것일까요? 혹시 노인들이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손주들 돌봐 주느라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자라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희망은 보입니다. 페피토와 보비의 마음이지요. 페피토는 자꾸 사람들과 멀어지려는 할아버지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보비는 하마터면 병이 깊어질 뻔한 할아버지에게 새 생명을 건네지요. 할아버지들이 언젠가 자신들에게 줬던 마음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손주를 둔 노인들은 늙는다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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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갭의 샘물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 대교출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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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에는 어른들의 모든 것이 부럽고 근사했습니다. 올려다봐야 하는 키에 눈치보지 않고 마음대로 구불거리게 할 수 있는 머리카락, 손님들이 집에 찾아올 때면 몰래 현관에 나가서 신어보고 좋아하던 뾰족구두.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을 섞어가며 물건을 팔던 화장품 외판원 아주머니까지, 어른들을 향한 놀라움과 탄성은 그칠 줄을 몰랐지요. 그 어른들이 곁에 있었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미용사에서 외판원으로, 우편집배원에서 은행원으로 자유롭게 꿈의 나래를 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니까 참 피곤한 게 어른이더군요. 왜 어릴 적에는 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어른들의 세상은 온통 화나는 일에 속상한 것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릴 때의 꿈을 반대로 꾸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동심의 세계에 사는 꿈이지요.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에 살고 싶어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아이들의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건강하게 크다 보면 어느 새 어른이 되니까요. 솔직히 되기 싫어도 어른의 몸과 나이는 저절로 찾아오는 법입니다. 기다릴 줄만 알면, 그리고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후회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늙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맞습니다. 아직 과학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 꿈은 어쩌면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 팬>은 영원한 어린이 피터 팬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혼자서 어린이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피터 팬이 아끼고 사랑하는 웬디는 피터 팬의 나라 네버랜드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피터 팬은 자기처럼 부모 품을 벗어나 어린이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지만, 웬디는 부모 품에서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늙어가지요. 웬디가 할머니가 되고 세상을 떠나도 피터 팬은 네버랜드에서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수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겠지만, 피터 팬은 사랑하는 웬디를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웬디가 부모 곁으로 돌아가지 않고 네버랜드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웬디는 왜 영원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총알을 맞아도 멀쩡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트리갭의 샘물>(대교)의 터크 씨 가족입니다. 터크 씨와 부인, 두 아들은 우연히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자신들이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져 옮겨 다니며 살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서 살다가는 괴물 취급을 받고 이웃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늙고 죽어 가는데 그들 네 사람만 변함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떠돌다가 다시 트리갭으로 돌아왔을 때 터크 씨 가족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 없었지요. 터크 씨의 맏아들과 결혼했던 여인도 괴물과 살 수 없다고 떠났고 벌써 죽었으니까요. 터크 씨 가족들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트리갭의 샘물을 가지려고 추적을 할 뿐, 아무도 터크 씨 가족들의 고달픔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한편 주인공 위니는 터크 씨 가족과 얽히게 되어 제시 터크에게서 샘물이 든 병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영원한 삶을 얻어 제시와 함께 세상을 두루 여행하며 살 수 있었지요. 그러나 위니는 샘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병을 땅에 떨어뜨려 엉뚱하게도 두꺼비가 마셨지요. 위니는 <피터 팬>에서의 웬디처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았으며 결국에 죽어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렇다면 두 작품의 주인공 웬디와 위니는 왜 영원한 삶, 영원한 젊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먼 옛날 진시황은 곳곳에 신하들을 보내어 불로초(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전설의 약초)를 구해오라고 시키기도 했다는데, 자기 앞에 굴러온 행운을 보기 좋게 걷어차다니, 웬디와 위니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나요?
  터크 씨의 말 중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웬디와 위니의 선택을 조금이나마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돌고 돌면서 결코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인 거야. 개구리도 이 바퀴의 한 부분이고, 벌레도, 물고기도, 또 티티새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사람들도. 그러나 결코 똑같은 것은 아니지. 항상 새로운 것이 오고, 항상 자라나고, 변화하고, 항상 움직여 가는 거야. 그렇게 되게 만들어져 있어. 이 세상은 그런 거야."
  "끝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우리 가족처럼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 죽는 것 없이는 사는 것도 없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것, 이것은 그러니까 사는 것도 아닌 거야. 우리 가족은 그저 있는 거야.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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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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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친구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사이가 오랜 세월동안 만났다 헤어지면서 진정한 친구 사이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진짜 친구를 알 수 있다고. 그런데 요즘은 돈을 많이 쓰는 아이가 인기가 많다고 하더군요. 먹을 것을 사 주고, 선물도 잘하고, 어디 갈 때마다 앞에 나가 다른 아이들 몫까지 한꺼번에 내 주는 아이 말입니다. 갖고 있는 재산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힘을 발휘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본뜬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돈 때문에 좋은 친구라면 그 친구가 돈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우정이 곧 시들해지겠지요. 이처럼 '○○ 때문에 사귀는 친구'란 ○○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친구가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짜 친구는 '그냥 친구'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아무 때나 만나도 거리낌이 없는 친구,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 주는 친구, 내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해도 끝까지 믿어 주는 친구, 내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 주는 친구, 내가 변해도 처음처럼 나를 대하는 친구,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친구. 이런 친구가 그냥 친구인 것입니다.
  어른들이 초등학교 동창들이나 어릴 적 소꿉친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만났던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시절의 친구 사귐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은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시절이기 때문이지요.
  <깡딱지>(사계절)의 주인공 인우는 새학기 짝꿍인 한수가 처음부터 싫었습니다. 한수는 무뚝뚝한 싸움꾼이었거든요. 그러나 인우가 곤경에 처했을 때 뜻밖에도 한수가 도와주게 되고, 인우는 그제서야 한수의 따뜻하며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둘 사이에 기어이 시련이 닥쳤습니다. 인우가 깬 꽃병 때문에 그만 한수가 누명을 쓰고 선생님께 혼이 나게 된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친하면 친할수록 이런 경우에 더욱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오해가 생겨서 서로를 피하고 그러다가 멀어지면, 전과 같은 우정은 나눌 수가 없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깡딱지>에서 인우와 한수는 그렇게 맥없이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고민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그때, 인우와 한수는 진짜 친구가 되었습니다. 누가 와서 방해를 해도 그 둘은 서로 믿고 아껴 줄 것입니다.
  흔히 친구는 같은 종류의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이루어지는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요. 친구 사이에는 성별도 국경도 나이 차이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개나 코끼리, 나무, 인형들까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언제든지 그들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사람보다 좋은 친구로서 충분합니다.
  <샬롯의 거미줄>(시공주니어)에서는 돼지 윌버와 거미 샬롯이 친구로 나옵니다. 물론 처음부터 친구였던 것은 아니지요. 윌버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 샬롯이 다가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윌버는 이집 저집으로 팔려가는 돼지에서 탈바꿈할 수 있었고, 샬롯은 '잔인하고 교활한 사냥꾼'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윌버를 향한 샬롯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윌버가 크리스마스에 죽을까 봐 샬롯은 자신의 거미줄로 '대단한 돼지', '근사한 돼지', '눈부신 돼지'라는 글자를 자아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윌버는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샬롯은 알주머니를 윌버에게 남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대를 이어서 새끼들이 우정을 나누게 되었지요.
  한수와 샬롯은 둘 다 친구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친구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샬롯은 윌버를 위해 무리하다가 죽음까지 맞았습니다. 그러나 샬롯의 마음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샬롯의 말대로 친구로서 진심을 다한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굉장한 기쁨을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샬롯도 한수도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소중한 진짜 친구를 얻은 것이니까요.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샬롯처럼 먼저 손을 내밀고 살며시 말해 보세요.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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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봉지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49
로버트 먼치 지음, 김태희 옮김, 마이클 마첸코 그림 / 비룡소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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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속의 성, 뾰족 탑, 마법, 눈물, 백마 탄 왕자님……. 옛날 옛적 공주님들은(특히 서양) 늘 성에 갇힌 채 왕자님을 기다렸어요. 멋진 드레스를 입고 예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기다리는 것말고는 별다를 게 없었어요. 누군가 옆에서 일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백설공주'처럼 남(일곱 난쟁이)이 만들어 놓은 스프나 먹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마법에 걸려 잠이나 자고 있었을 테니까요.
  인형 같은 공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엄지공주'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알지 못한 탓에 고생만 하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았지요.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인간 왕자를 위해 공주라는 신분, 가족, 목소리, 인어로서의 몸 등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 놓았지요. 이 공주들은 적어도 왕자나 마법사에 끌려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지공주나 인어공주조차 마법과 왕자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했군요. 공주들은 언제까지나 마법에 걸려 왕자의 구원을 기다려야 할까요?
  옛날 이야기 속의 낡은 공주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새로운 공주 세 명을 소개하겠습니다. <긴 머리 공주>(마루벌), <종이 봉지 공주>(비룡소),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의 주인공들입니다.
  <긴 머리 공주>에서는 나라의 보물이 되어 버린 긴 머리카락을 차마 자르지 못하는 공주가 나옵니다. 나라가 가난해서 공주의 긴 머리카락으로라도 행복을 느끼게 해 주자는 것이었지요. 머리카락은 너무나도 길어서 큰 가방에 넣고 하인이 들고 다녔습니다. 공주는 자유롭고 싶어했지만, 머리카락이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자유와 나라 사이에서 고민하던 공주는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나라의 가난을 해결하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잘라 둔 채로! 나라도 구하고 자유도 얻은 현명한 공주인 것입니다.
  <종이 봉지 공주>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로널드 왕자가 용에게 잡혀가자 아무 망설임 없이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용이 자신의 화려한 드레스를 몽땅 태워버리는 바람에 옷이 없어서 종이 봉지를 뒤집어쓰고서 말이지요. 공주는 용을 찾아가 지혜를 발휘하고 용이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용감하게 용을 물리치고 자기 앞에 와 준 공주에게 왕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진짜 공주처럼 다시 차려입고 오라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공주가 뭐라고 말했을까요? 공주는 약혼자인 왕자에게 보기 좋게 말했습니다. 나도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 왕자는 싫다고!
  <내 멋대로 공주>의 내 멋대로 왕국에는 희한한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내 멋대로 공주가 살았습니다. 공주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왕비가 남편 감을 찾으라고 호령을 했지요. 그래서 공주는 자신이 시키는 일을 모두 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꾸리꾸리 왕자, 허둥지둥 왕자, 엉거주춤 왕자, 와덜덜덜 왕자, 어질띵띵 왕자, 어설프네 왕자, 설설겨 왕자 등 많은 왕자들이 부자에 얼굴까지 예쁜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서 찾아왔지만, 희한하기 짝이 없는 공주의 주문을 한 명도 완수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뺀질이 왕자만 빼고요. 뺀질이 왕자는 공주가 내린 임무를 척척 잘도 해 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공주가 뺀질이 왕자에게 뽀뽀를 했지만, 왕자는 개구리가 되고 공주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긴 머리 공주, 종이 봉지 공주, 내 멋대로 공주에게는 색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점, 왕자와 결혼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했다는 점, 중요한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했다는 점입니다. 세 공주가 고귀한 신분에만 얽매여 있었다면 자유를 찾지도 못했고, 겉치레만 신경 쓰는 왕자를 알아보지도 못했으며, 돈만 아는 왕자들의 청혼을 물리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비롯하여 우리 머리 속에 뿌리박고 있는 대표 공주들이 그 소식을 들었다면 어떻게 나왔을지 상상이 갑니다. 아마도 풍성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땅바닥에 끌고 다니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걔네들, 공주 모임에서 이름 빼 버려. 공주는 왕자하고 결혼해야 진짜 공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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