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 왼발 비룡소의 그림동화 37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정해왕 옮김 / 비룡소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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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늙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러고 나니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늙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늙고 죽습니다. 발버둥치며 젊어지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름살을 펴고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늙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에 걸맞게 흰머리와 주름을 갖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다 보니 사람의 수명도 늘어나고 노인 인구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노인으로 살아갈 날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 동화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몇몇 어린이들은 어쩌면 노인으로 살 날이 젊은이로 살 날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리다고 해서 노인을 싫어하거나 피하는 어린이들이 종종 보이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몇 살이든지 모두가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담고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 나를 세상에 있게끔 해 줬고 나의 미래를 보여 주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늙었다고, 이제는 지겹고 쓸모도 없다고 스스로 죽으러 가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비룡소)의 아우레리오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는 하나 남은 손자 페피토에게 자신이 탄 수레를 끌게 하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산길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곧 죽을 테니까 관심도 없다는 투로. 그러나 산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지혜가 필요한 이들이었습니다. 맛있는 치즈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에 넣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타가 좋은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손을 봐야 하는지 묻고 할아버지가 가볍게 해결해 줄 때마다 너무나 고마워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에 필요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신나게 내려왔지요.
  할아버지가 떠나면 혼자 남게 되는 손자 페피토가 얼마나 슬플까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요?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질병에 걸려 힘겹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오느라 고장나 버린 몸이 노인들을 더욱 고달프게 하지요. <오른발 왼발>(비룡소)의 할아버지는 원래 건강한 노인이었습니다. '오른발 왼발' 하면서 손자 보비의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보비와 블록 쌓기를 함께 해 주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앓아 누워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됩니다. 어릴 적 보비처럼 말이지요. 할아버지가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은 보비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를 해 주고 밥도 떠 먹여 주고 걸음마도 가르쳐 줍니다. '오른발 왼발' 하면서.
  우연인 것처럼 두 작품 모두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비룡소)의 할아버지는 늙었다고 삶을 포기해 버리려 합니다. <오른발 왼발>(비룡소)의 할아버지는 뜻밖에 병이 걸려 가족들을 걱정에 빠뜨리지요. 어쩌면 두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슬픔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지요. 왜 아직 살아 있는 목숨을 버리려고 했을까요? 무엇이 병에 걸리게 한 것일까요? 혹시 노인들이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손주들 돌봐 주느라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자라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희망은 보입니다. 페피토와 보비의 마음이지요. 페피토는 자꾸 사람들과 멀어지려는 할아버지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보비는 하마터면 병이 깊어질 뻔한 할아버지에게 새 생명을 건네지요. 할아버지들이 언젠가 자신들에게 줬던 마음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손주를 둔 노인들은 늙는다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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