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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ㅣ 길벗어린이 문학
우메다 슌사코 글, 우메다 요시코 그림, 송영숙 옮김 / 길벗어린이 / 1998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집단 따돌림이 너무나 심각하다 보니 이제 '왕따'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여고생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친구를 두고 장난스레 붙인 말이었다지요? 그러나 일본에서 시작된 '이지메'(집단 괴롭힘)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번져서 지금은 학교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왕따는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따돌림은 어디에나 있었지요.
옛날의 따돌림은 놀림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동네의 누군가 간밤에 오줌을 싸서 소금을 얻으러 다니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알나리깔나리'하고 약을 올리는 정도였지요. 간혹 마음씨 고약한 아이들이 자신보다 못난 아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때리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행동은 오히려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었습니다. 더구나 금방 놀리다가도 놀이를 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돌리던 아이들과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가 함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일 없이 따돌림이 계속된다거나 따돌리는 행동을 여럿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요. 따돌림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니까요.
왕따는 다릅니다.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왕따와는 어울려 놀아 주지 않습니다. 한 번 왕따가 되면 더 이상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왕따가 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옛날 놀림 당하던 아이들은 뭔가 모자라고 아둔하거나 창피한 실수를 했다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놀림은 철없는 아이들이 한때 저지르던 잘못이었지요. 그런데 왕따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 심지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한 교실에 왕따 두세 명 있는 것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 곁에서 인기를 관리하며 왕따 시키는 아이들의 편에 서기도 합니다. 이쯤이면 따돌림에 '왕'자가 붙을 만합니다.
<내 짝꿍 최영대>(재미마주)에서 영대는 비록 왕따이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대를 안쓰러워하는 짝꿍이면서 영대가 왕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요. 영대는 엄마가 없어서 항상 지저분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말도 잘 못합니다. 아이들의 놀림을 견디다 못한 영대는 수학 여행을 가서 참아왔던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 버립니다. 때리면 바보처럼 맞을 줄만 알았던 영대가 큰 소리로 울어버리자,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영대에게 미안한 마음에 함께 울음을 터뜨리지요. 한 순간에 왕따가 사라지는 따뜻한 동화입니다. 그런데 과연 왕따가 이렇게 쉽게 사라질까요?
영대와 비슷한 아이가 있습니다. <까마귀 소년>(비룡소)의 '땅꼬마'입니다. 늘 뒤처지고 공부도 꼴찌라서 영대처럼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런데 '땅꼬마'에게는 그다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지요. '땅꼬마'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며 괴로워하고 참는 것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왕따 시키지 않는 자연과 친해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무며 새, 벌레들을 관찰하고 사랑하면서 '땅꼬마'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특별한 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변함없이 왕따인 채. 새로 온 선생님이 '땅꼬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영원히 왕따로 남았을지도 모르지요.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기회를 주고 '땅꼬마'는 6년 동안 자신을 왕따 시킨 아이들 앞에서 까마귀 소리를 발표합니다.
<모르는 척>(길벗어린이)은 더욱 살아 있는 왕따 이야기입니다. '나'는 자신도 왕따가 될까 봐 같은 반 돈짱이 따돌림 당하는 걸 모르는 척합니다. '나'는 돈짱이 괴롭힘을 당할수록 덩달아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습니다. 돈짱은 어머니 앞에서 당한 망신을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야라가세에게 그대로 갚아 줍니다. 그리고 전학을 가게 되지요. '나'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은 야라가세 패거리의 눈치를 살피기만 할 뿐 돈짱의 전학을 보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야라가세가 중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야라가세 역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그 분풀이로 돈짱을 괴롭혀 온 것입니다.
나보다 센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주먹을 들이대는 것이 왕따의 본모습입니다. 셋만 모이면 왕따가 생긴다는 말은 누구도 왕따를 피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같이 왕따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혹시 모두가 야라가세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