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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갭의 샘물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5
나탈리 배비트 지음, 최순희 옮김 / 대교출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에는 어른들의 모든 것이 부럽고 근사했습니다. 올려다봐야 하는 키에 눈치보지 않고 마음대로 구불거리게 할 수 있는 머리카락, 손님들이 집에 찾아올 때면 몰래 현관에 나가서 신어보고 좋아하던 뾰족구두.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을 섞어가며 물건을 팔던 화장품 외판원 아주머니까지, 어른들을 향한 놀라움과 탄성은 그칠 줄을 몰랐지요. 그 어른들이 곁에 있었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미용사에서 외판원으로, 우편집배원에서 은행원으로 자유롭게 꿈의 나래를 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니까 참 피곤한 게 어른이더군요. 왜 어릴 적에는 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어른들의 세상은 온통 화나는 일에 속상한 것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릴 때의 꿈을 반대로 꾸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동심의 세계에 사는 꿈이지요.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에 살고 싶어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아이들의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건강하게 크다 보면 어느 새 어른이 되니까요. 솔직히 되기 싫어도 어른의 몸과 나이는 저절로 찾아오는 법입니다. 기다릴 줄만 알면, 그리고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후회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늙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맞습니다. 아직 과학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 꿈은 어쩌면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 팬>은 영원한 어린이 피터 팬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혼자서 어린이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피터 팬이 아끼고 사랑하는 웬디는 피터 팬의 나라 네버랜드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피터 팬은 자기처럼 부모 품을 벗어나 어린이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지만, 웬디는 부모 품에서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늙어가지요. 웬디가 할머니가 되고 세상을 떠나도 피터 팬은 네버랜드에서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수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겠지만, 피터 팬은 사랑하는 웬디를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웬디가 부모 곁으로 돌아가지 않고 네버랜드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웬디는 왜 영원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고 총알을 맞아도 멀쩡한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트리갭의 샘물>(대교)의 터크 씨 가족입니다. 터크 씨와 부인, 두 아들은 우연히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자신들이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져 옮겨 다니며 살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서 살다가는 괴물 취급을 받고 이웃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늙고 죽어 가는데 그들 네 사람만 변함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떠돌다가 다시 트리갭으로 돌아왔을 때 터크 씨 가족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 없었지요. 터크 씨의 맏아들과 결혼했던 여인도 괴물과 살 수 없다고 떠났고 벌써 죽었으니까요. 터크 씨 가족들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트리갭의 샘물을 가지려고 추적을 할 뿐, 아무도 터크 씨 가족들의 고달픔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한편 주인공 위니는 터크 씨 가족과 얽히게 되어 제시 터크에게서 샘물이 든 병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영원한 삶을 얻어 제시와 함께 세상을 두루 여행하며 살 수 있었지요. 그러나 위니는 샘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병을 땅에 떨어뜨려 엉뚱하게도 두꺼비가 마셨지요. 위니는 <피터 팬>에서의 웬디처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았으며 결국에 죽어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렇다면 두 작품의 주인공 웬디와 위니는 왜 영원한 삶, 영원한 젊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먼 옛날 진시황은 곳곳에 신하들을 보내어 불로초(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전설의 약초)를 구해오라고 시키기도 했다는데, 자기 앞에 굴러온 행운을 보기 좋게 걷어차다니, 웬디와 위니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나요?
터크 씨의 말 중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웬디와 위니의 선택을 조금이나마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돌고 돌면서 결코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인 거야. 개구리도 이 바퀴의 한 부분이고, 벌레도, 물고기도, 또 티티새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사람들도. 그러나 결코 똑같은 것은 아니지. 항상 새로운 것이 오고, 항상 자라나고, 변화하고, 항상 움직여 가는 거야. 그렇게 되게 만들어져 있어. 이 세상은 그런 거야."
"끝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우리 가족처럼 영원히 사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 죽는 것 없이는 사는 것도 없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것, 이것은 그러니까 사는 것도 아닌 거야. 우리 가족은 그저 있는 거야. 길가에 놓인 돌멩이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