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 경제학과 뇌과학이 밝혀낸 초수익을 내는 비상식적 투자 법칙
테리 번햄 지음, 이주영 옮김, 이상건 감수 / 다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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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이해로 투자를 성공하다



비열한 시장에서 도전하는 합리적인 투자

도마뱀의 뇌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테리 버넘의 책 가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20년 만에 복간되었다. 테리 버넘은 '도마뱀의 뇌'라는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당대 최고의 투자경제학자이다. 현재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채프먼 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다.

투자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투자는 멀고 어려워 보인다. 용어부터 시작해서 매커니즘, 방법 등과 같은 것들이 투자를 주저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투자에 경험이 있다면 투자가 쉬울까? 전혀 그렇지 않다. 투자는 계속해도 어렵다. 시장의 변화, 자본의 흐름 등 아무 무수한 변동 요소가 있고 날마다 변하는 경제 상황과 정치 상황으로 시장의 예측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입장에서 투자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막막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래프와 이상한 표현들로 이루어진 경제 보고서 등 그것들을 해석하려 시도하면 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어지럽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어떤 계산을 근거로 한 예측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들었기에 늘 손해를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시장에서 늘 지기만 하는 개미에게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되물어야 할 차례이다.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에서는 투자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 인간의 뇌는 농업이 발명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조상들의 세계에 맞춰진 뇌의 배경이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수집과 채집을 하며 위험으로부터 몸을 숨기는 생활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인간의 본성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위험에서 도망치도록 설계된 뇌로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현대의 금융시장과는 맞지 않았고 본능이 투자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실패와 어려움에서 계속 도망가고 투자에 실패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어떠한 방식의 노력이 필요한 걸까. 18년 전의 분석인 이 책은 현재에도 시간적 이질감 없이 독자들에게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을 알려준다. 인간의 뇌를 ‘도마뱀의 뇌’라고 칭하며 이 뇌를 시장에서 이용하는 방법에 관해 말한다.

금융시장이 우리를 좌절시키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과거를 돌아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비합리적이며, 도마뱀의 뇌는 우리를 손실로 이끈다.

출처 입력

우리의 본능이 투자에 맞지 않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을 경제 투자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할 때 더욱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본성을 이용한 투자, 비열한 시장, 도마뱀의 뇌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에 주목한다. 심리적인 부분이 어떻게 인간을 투자에서 도태되게 만드는지, 독자는 비열한 시장을 우리에게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비열한 시장에 잘못 대처했다가는 큰 손해를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유리하고 똑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덟 가지의 행동수칙을 통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 더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힘을 써야 꼬리를 자르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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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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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더듬으며 천천히 찾아내고야 마는

임솔아, 『짐승처럼』(현대문학, 2023)



공존을 향한 위태로운 관계의 재정립

다양하고 무수한 가족을 말하다

임솔아의 『짐승처럼』이 현대문학 출판사의 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시집 『겟패킹』 등과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임솔아는 이번 소설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가족의 삶을 가부장제의 외부에서 상상하며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공존을 말한다.

언젠가 가족을 이해할 수 없겠다고 체념했을 때 보이지 않던 가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태도가 있었고 동시에 가족이면서 타인인 각각의 사람에게만 행하는 배려의 방식이 있었다. 나는 멀리서 객관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가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다시 가족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이 필요한지, 서로를 위하는 방식에 어떠한 폭력성이 있었는지 주목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있어 필연적으로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관계를 뒤흔든다면,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행하기 위한 책임은 어떻게 짊어져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임솔아의 소설 『짐승처럼』은 가족의 관계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폭력성과 관계 맺는 이의 책임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소설은 도망친 유기견을 찾는 사연과 '채빈'과 '나'의 갈등과 화해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나’의 이종사촌동생인 '채빈'이 '나'의 집에 남겨지게 되고 '엄마'는 '나'에게 '채빈'이 이종사촌동생이 아닌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친동생이 생긴 '나'는 '채빈'과의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채빈'은 의지할 곳이 없어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집으로 계속 초대하게 되고 '엄마'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의 죽음을 처음부터 지켜본 ‘채빈'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떠나고 ‘나’는 그렇게 홀로 10년을 살다가 다시 '채빈'과 조우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나타난 '채빈'에게 사실 집으로 동물을 끌어들인 사람이 자신이 아님을 듣게 되고 뒷이야기를 알게 된다. 이후 ‘별나'라는 강아지를 키우며 '별나'의 엄마인 '유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게 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짐승처럼』은 기묘하고 어딘가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관계를 진심으로 들여다보려는 태도에서 발생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임솔아는 왜 가족 간의 이야기에 동물을 개입하게 되었을까. 동물은 과거에서부터 인간과 함께 지내왔다. 애완이라는 명칭이 붙은 애완동물에서부터 지금의 반려동물로까지 비인간으로서 그들의 명칭과 대우는 변화되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또한 바뀌었다. 과거에는 집을 지키는 짐승,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짐승이었다면 지금도 인간의 곁을 지키긴 하지만 과거에 그들의 역할보다는 멀리 벗어나져 있다. 보호의 의미로 지킨다는 개념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로 곁을 지킨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금의 동물은 인간의 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과 다를 게 없다. 인간으로서의 가족과 비인간으로서의 가족은 외향적 특징을 제외하고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직도 동물을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과거의 의미에 가두어 폭력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가정폭력이라 할 수 있지만 동물은 여전히 동물이기에 동물 학대라 불린다. 임솔아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동물과 가족의 범위에 관해 탐구하고 더 나아가 동물과 가족, 가족과 가족 모두를 연결하는 관계성이 어떤 식으로 현재 발현되어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성과 가족이라 불리는 관계에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비인간의 자리를 조명하고 조금 덜 폭력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채빈은 닭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모든 동물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머물렀던 아이들의 이름을,

어떤 오해는 단순한 계기로 풀릴 수 있다. 아주 단단해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털실도 어느 한 줄기만 잡아당겼는데 풀리기도 한다. 오히려 풀기 위해 애쓰고 힘을 더 줄수록 오해는 더 단단해지고 손쓸 수 없게 될 때도 있다. '채빈'과 '나'의 이야기는 털실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방으로 살펴보고 최대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들을 둘러싼 반려견인 ‘별나’의 이야기도 그들의 오해에서 가장 큰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더 넓은 범위로써의 확장을 시도한 것은 아닐까. '채빈’과 ‘나’가 이해하는 가족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 주변에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둘러봐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미울 때가 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미울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이 사람과 어떤 관계이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렇게 해도 미움이 산불처럼 번질 때 나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밉다고. 그러면 그것에 관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그곳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털실이 무너진다. 가장 부드러운 형태로, 서로를 끌어안기 좋은 부드러움으로. 짐승처럼은 서로를 가장 따뜻하게 안는 방식이 아닌,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안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행해야 할 이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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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 삶을 파괴하는 말들에 지지 않기
아라이 유키 지음, 배형은 옮김 / ㅁ(미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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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를 아낄 수 있도록

아라이 유키, 배형은 옮김, 『말에 구원받는 것』(ㅁ, 2023)

사회를 흔드는 빈약한 언어에 맞서는
존엄한 말의 힘에 관하여


아라이 유키의 『말에 구원받는 것』이 ㅁ(미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에 말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 『말에 구원받는 것』이 일본에서 출간된 뒤 한국에서 올해 출간되었다. 아라이 유키는 문학 연구가이며 소수자의 자기표현법과 장애인의 사회 활동을 연구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타인을 깎아내리는 말이나 자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말들에 익숙해졌다. SNS 댓글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었다. 사회는 점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된 것처럼 보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넘쳐흐르는 자극적인 말과 태도에 있어 더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타인을 대한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서로의 존엄을 해친다고 해서 자신의 존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행되는 폭력의 말들은 그러지 않는 이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쳐 사회를 병들게 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 의문이었고 해결할 수 없어 사람을 포기했던 적 있었다. 나라도 조금 더 폭력적이지 않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폭력적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순 없어도 내가 타인을 파괴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쉬웠다. 나의 말이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점에서 아라이 유키의 『말에 구원받는 것』은 나의 기나긴 의문에 어떤 답변을 들려주었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파괴된 언어와 사회를 돌이킬 수 있는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이것은 말을 믿는 자의 태도일 것이다. 빈약한 언어가 축적될 때 끔찍해지는 사회를 들여다보고 지금 여기에 ‘없는’ 언어를 불러온다. 그 언어는 회복과 구원의 말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함을, 존엄 가득한 언어가 사회와 존재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힘이 있음을 증명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갈라 나누고 몰아세우고

입 다물게 하는 사회는 누구에게나 ‘살기 힘든’ 사회임에 틀림없다.

그런 사회가 ‘살기 편하다’면 그런 ‘살기 편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비참한 일이다.

「마이너스 감정을 처리하는 비용」 중에서

나는 어떤 현상이 벌어진 것에 대한 잘못을 나에게 버릇처럼 묻곤 한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든 아니든 ‘나는 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생각 앞에서 나는 작아지고 어떠한 말을 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된다.

세상에는 엄격한 잣대가 있고 그 잣대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일수록 가벼워진다. 가볍게 다루는 사람일수록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인터넷 댓글을 보면 어떤 잘못을 개인에게 집중적으로 전가하고 욕한다. 물론 개인의 잘못일 가능성이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회 문제’를 ‘개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육아’, ‘돌봄’ 등과 같은 문제를 여성의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현상에 관하여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예처럼 근본적으로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정확하게 봐야 한다. 무분별하게 타인을 향해 잣대를 들이미는 폭력적인 태도 또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되물어야 한다.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내가 나를 죽이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말’은 어느 쪽”일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그런 뒤에 말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강권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우선 누군가에게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는 데 망설임이 없어진다.

다음에는 낙인 찍힌 사람들을 박해하고 배제하고 입 다물게 한다.

입을 다물린 뒤 이번에는 거꾸로 말하게 한다.

‘이렇게 말하면 동료로 받아줄 수도 있다’는 태도를 취하며 ‘강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말하게 만든다.

‘‘강제로 말하게 한 사람’의 책임은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자발적으로 말한 사람’만이 상처받는다.

「나라를 위한 쓸모가 없었던 사람」 중에서

‘쓸모’를 다하는 삶은 기구하다. 자신의 ‘쓸모’를 사회의 규범에 맞추어 삶을 재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의 몫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배웠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회에 합당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의 상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이 부정당한 것보다 폭력이 삶의 태도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자각조차 못 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쓸모’를 요구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언어는 “높은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허상을 부풀리기 위해, 적을 만들어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위압해 입을 다물기 위해” 쓰인다. 약자는 사회가 자신을 파괴하고 있음조차 알지 못한 채 고갈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약자인 본인도 누군가에게 어떤 ‘쓸모’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약자가 이러한 폭력을 마주하고 폭력 속에서 상처받는 약자를 마주하고 서로가 연대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약자가 약자를 생산하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언어는 무력하다고, 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글을 놓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사회의 합리주의적 사고에 몰두하고 있었고 스스로 손목에 상처를 내듯 살아갔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을 보여줘서, 그 사랑이 문을 열고 눈밭을 달려 나가는 개처럼 스스로 나아가고 주변을 믿는 힘을 보여줘서 나는 다시 언어의 힘을 믿게 되었다.

「격려를 포기하지 않기」에서 문학자인 저자가 어떤 환자가 쓴 시를 보며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말의 힘에 관해 말한다. “적어둔 말로 남겨두면 언젠가 누군가가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를 위해 기도해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무용한 언어의 힘은 자각할 때 그 무엇보다 강력해진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일수록 언어의 힘을 믿어야 하고 그 힘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분량 상의 이유로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것으로 마친다. 정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고민하고 서로를 환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바람과 바람이 만나 현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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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설계자 - 장르불문 존재감을 발휘하는 단단한 스토리 코어 설계법
리사 크론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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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드는 스토리

리사 크론, 홍한결 옮김, 『스토리 설계자』(부키, 2023)

스토리의 뼈대를 탄탄하게 만드는 비결

선택받는 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스토리에 달렸다!

리사 클론의 『스토리 설계자』가 부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세계적인 스토리 컨설턴트이자 전문 연사인 저자는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스토리텔링 전문가로 활약했다. 문학 에이전시에서 출판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왕자의 게임』 브라이언 코그먼, 『캐리비안의 해적』 스튜어트 베티 등 유명 각본가와 극작가 등을 배출해낸 UCLA 익스텐션 작가 프로그램의 강사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가 선택한 책은 어떤 의미로든 ‘좋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가 좋다거나, 감성이 좋다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스토리일 것이다. 스토리는 플롯과 같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서사의 흐름이 있는가 하면 사건을 통해 화자가 어떤 행동을 하며 영향을 받고 화자의 내면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와 같은 내적 투쟁이 존재한다. 저자는 후자가 좋은 스토리이자 잘 팔리는 스토리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내적 투쟁’이 있는 스토리를 어떻게 지을 수 있는지 제시한다. 스토리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스토리의 본질과 오해를 다루는가 하면, 속 이야기를 설계하기 위해 육하원칙을 비롯한 세계관을 다루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내적 투쟁을 일으킬 서사의 시련을 마련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도입부를 다루거나 논리성을 채우는 작업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며 어려운 스토리 설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감정을 바꾸는 것이니까.

당신은 그럴 힘이 있다. 이제 그 힘을 활용하길 바란다.

대학 시절 소설 수업 과제로 소설을 쓴 적 있다. 아마 마지막 소설이었을 텐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감정을 다 넣어서 썼었다. 그때는 플롯이나 주된 사건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 그 소설이 생각난다. 그 소설을 읽으면 대학 시절 어려웠던 나의 생활에 관한 감정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을 쓰고 난 뒤로 난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어떤 마음 하나를 닦아낼 수 있었다고. 어떤 이야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스토리의 힘이자, 내적 투쟁의 힘이 아닐까.

저자는 스토리의 힘을 잘 아는 사람 같다. 구조적인 흐름과 플롯의 배치를 통한 효과를 언급하기 전, 마음에 관해 말한다. 마음은 본질적인 것이며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일까. 마음을 믿는 사람의 글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바꾸거나 최소한 돌아보게라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저자는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독자의 마음에 어떻게 닻을 내리는지 방법론적인 구성으로 책을 만들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본질적인 힘은 자신에게 있음을 인지하게 해주는 것 같다. 믿음은 믿는 자의 것이다. 하나의 믿음으로부터 나아가는 스토리의 가지를 저자의 책을 통해 오랜만에 자각하게 되었다. 소설을 꼭 쓰지 않더라도 이 책은 글을 쓴다면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다방면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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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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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순간의 말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민승남 옮김, 『아구아 비바』(을유문화사, 2023)


읽을수록 경계가 흐려지는 물의 문학

리스펙토르의 세계가 ‘당신’을 향해 쏟아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 비바』가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192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작가는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이주하여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소설을 썼다. 작가의 작품을 주도적으로 번역하고 편집했던 벤저민 모저는 작가를 카프카 이후 가장 중요한 유대인 작가로 꼽기도 했다.

고전적으로 시와 소설은 서사의 구체성과 범위를 중심으로 구분되었다. 순간의 이야기는 시,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는 소설. 하지만 순간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를 갖는다고 한들 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범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있으며 이젠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아구아 비바』는 어떤 점에서 시처럼 말을 쏟듯이 풀어내는가 하면 소설의 형식으로 내밀한 서사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구아 비바』의 화자는 자신의 말을 ‘피상적으로만 들으라’고 한다. 어떠한 해석을 통해 무언가를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으로 풀이나 돌을 보고 색이나 소리를 느끼듯 감지하길 권한다. 이러한 방식의 독서는 '시'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감각을 감지하고 관찰하여 확장하는 읽기의 방식은 어떤 서사의 결말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서사의 시작으로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대부분 기묘하고 규범을 벗어나는 글이기도 하다. 그중 『아구아 비바』는 가장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글이다. 앞서 말했듯 전개나 결론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쏟아내고 확장하듯이 말하기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는, 제목에 충실한 글이다.

이 말을 해야겠다 : 나는 이 '지금-순간'의 사차원을 포착하려 하지만,

찰나에 불과한 이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새로운 지금-순간이 되었으며,

그것 또한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말을 해야겠다'라는 욕구가 이 책의 전부이다. 서사이며 세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지금-순간'을 말하기 위해 그것과 관련된 모든 말을 한다. '말'을 전하는 방식은 편지의 방식처럼 보인다. 글의 도입에서 작가는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순간에 관해 말한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지금-순간'을 반딧불이에 비유하며 은유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말'을 하겠다는 건 모든 작가의 욕구이기도 하며, 그것이 끝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도전하려는 당찬 포부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금-순간'을 말하지만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전부를 말하겠다는 것과 같다. 전부란 삶이자,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 그렇기에 작가는 처음 눈을 뜬 새처럼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이가 그의 언어를 들었을 때에는 어떤 중얼거림과도 같게 느끼게 된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적인 언어를 구사하기에 이 뜻이 저 뜻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어도 좋을 말이 많다. 그래서 정말 감각적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작가가 각오하고 썼다는 게 아닐까.

처음 을유문화사에 서평을 신청했을 때 내가 이 서평을 다른 서평처럼 끝까지 완성도 있게 쓸 수 있을 순 없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읽겠다고 한 이유는 이 중얼거림이 내게 어떠한 감각을 쥐여줄 것 같아서였다. 다 읽고 난 뒤 나는 어떤 소용돌이 사이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벗어날 수 없으나 책의 '지금'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 울타리를 벗어나며 어디로 나아간다는 자각 없이 폭력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는 세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본 계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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