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경계가 흐려지는 물의 문학
리스펙토르의 세계가 ‘당신’을 향해 쏟아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 비바』가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192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작가는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이주하여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소설을 썼다. 작가의 작품을 주도적으로 번역하고 편집했던 벤저민 모저는 작가를 카프카 이후 가장 중요한 유대인 작가로 꼽기도 했다.
고전적으로 시와 소설은 서사의 구체성과 범위를 중심으로 구분되었다. 순간의 이야기는 시,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는 소설. 하지만 순간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를 갖는다고 한들 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범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있으며 이젠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아구아 비바』는 어떤 점에서 시처럼 말을 쏟듯이 풀어내는가 하면 소설의 형식으로 내밀한 서사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구아 비바』의 화자는 자신의 말을 ‘피상적으로만 들으라’고 한다. 어떠한 해석을 통해 무언가를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으로 풀이나 돌을 보고 색이나 소리를 느끼듯 감지하길 권한다. 이러한 방식의 독서는 '시'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감각을 감지하고 관찰하여 확장하는 읽기의 방식은 어떤 서사의 결말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서사의 시작으로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대부분 기묘하고 규범을 벗어나는 글이기도 하다. 그중 『아구아 비바』는 가장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글이다. 앞서 말했듯 전개나 결론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쏟아내고 확장하듯이 말하기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는, 제목에 충실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