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다하는 삶은 기구하다. 자신의 ‘쓸모’를 사회의 규범에 맞추어 삶을 재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의 몫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배웠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회에 합당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의 상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이 부정당한 것보다 폭력이 삶의 태도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자각조차 못 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쓸모’를 요구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언어는 “높은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허상을 부풀리기 위해, 적을 만들어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위압해 입을 다물기 위해” 쓰인다. 약자는 사회가 자신을 파괴하고 있음조차 알지 못한 채 고갈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약자인 본인도 누군가에게 어떤 ‘쓸모’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약자가 이러한 폭력을 마주하고 폭력 속에서 상처받는 약자를 마주하고 서로가 연대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약자가 약자를 생산하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언어는 무력하다고, 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글을 놓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사회의 합리주의적 사고에 몰두하고 있었고 스스로 손목에 상처를 내듯 살아갔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을 보여줘서, 그 사랑이 문을 열고 눈밭을 달려 나가는 개처럼 스스로 나아가고 주변을 믿는 힘을 보여줘서 나는 다시 언어의 힘을 믿게 되었다.
「격려를 포기하지 않기」에서 문학자인 저자가 어떤 환자가 쓴 시를 보며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말의 힘에 관해 말한다. “적어둔 말로 남겨두면 언젠가 누군가가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를 위해 기도해줄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무용한 언어의 힘은 자각할 때 그 무엇보다 강력해진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일수록 언어의 힘을 믿어야 하고 그 힘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분량 상의 이유로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것으로 마친다. 정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고민하고 서로를 환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바람과 바람이 만나 현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