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지난 주말 까치가 우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알고보니 전지(수목들을 베는 작업)를 한 아파트 단지에서 까치들이 집을 지을 공간이 없어지니 에어컨 실외기에 집을 지으려고 하더군요. 까치가 안타까운 맘 한켠에는 우리집에는 까치집이 없었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왜 이리 올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막상 집을 소유하게 되면 내가 산 집이 떨어질까 조바심을 냅니다.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가 다른 이놈의 ‘이중성’은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인간의 생존본능 중에 하나라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저는 율라비스의 <소유하기 소유되기>를 보면서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도 이중적인 이야기겠지만 말이죠.
저자는 중산층에 진입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소비,일, 투자, 회계라는 네 꼭지에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를 통한 급간을 나누는 계급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소유’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그렇다고 소유를 벗어던지면 지금의 생활수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저자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이중적이죠. 그렇다면 그 다음행동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와 생존본능을 이해하는 것이죠.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시스템을 통해 글을 쓰고 인세를 받고, 대중의 관심을 받습니다. 그게 트래픽이 되어 돈을 버는데 돈을 버는 콘텐츠는 소유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소유에 대한, 그것이 계급을 나누는것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당연히 이해가 안갈리 없습니다. 누구나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목격하고, 그것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거든요. 하지만 그 순간 누구나 한번을 마주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이중적이지 않고 모든 것에 결백하고 떳떳한 사람인가? 선택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사회비판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인정하고 인간과 사회가 이중적인 것 역시 인정하되 사회의 룰을 지켜가며 시스템에 편승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를 비판하지만 사회의 룰은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후자의 2개를 선택할 경우 그 결과는 부정적인 예측이 가능한것 같은데 저자는 ‘이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중성으로 바라본 소유와 계급론을 비판하면서 그 비판으로 글과 관심을 사람들에게 파는 일을 합니다. 굉장히 모순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자본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중에 하나라는 점입니다. 자본의 논리는 상당수 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고, 저자가 살아가는 국가나 이렇게 리뷰를 올리는 저 역시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유를 무시하고 자본주의 시스템 그것도 기본적인 돈이 돈을 버는 복리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글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인세를 받는 또다른 복리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이중적인것을 넘어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얘기하는 것은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릴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바보지만 늙어서까지 마르크수주의자가 되어있는 건 더 바보다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일입니다.

‘정답은 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그렇게 위선적으로 살긴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