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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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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적기 위해 다시 읽은 ‘빛의과거’.. 이번엔 그 때보다 좀더 ‘비관’에 대한 부분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람들의 면면을 읽고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사람은 저렇구나라고 읽었고,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섞여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일, 현상에 집중되어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읽은 책에서 그 현상너머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결국 왜 사람마다 다른 삶의 태도를 형성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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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주어진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는 예로 들어보자. 표면적인 경우만 봤을 경우 어떤사람은 아무일 없이 그 일을 해낸다. 어떤사람은 순간순간 그 일이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된다. 어떤사람은 정말 쥐어 짜듯 자기는 너무 힘이 든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사실 그게 너무도 궁금했다. 왜 동일한 일을 하는데 누군가는 그것이 정말 힘들지 않아서 힘들다 소리를 안하는 것인지, 누군가는 정말 힘들다면 그것이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은 과연 그러면 일을 처리내 해는 역량의 차이인지,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십년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그것은 그들의 살아온 방식, 경험과 모든 것을 영향을 미치고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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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님의 ‘빛의 과거’는 삶에서 정점을 찍은 후 하강곡선을 타고 묵묵히 내려가는 삶을 보고 있는 김유경이라는 화자와 끝내 정점이 어딘지도 모른 채 오르고자 하는 또다른 화자 김희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때 젊음의 시기를 지나온 인간 군상,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젊음의 시기를 지나 60이라는 시절이 오기 전까지의 과거의 삶이 우리 앞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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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무력감, 소외감, 지의식, 두려움, 자괘감, 무시, 비굴함, 수치심, 자기위안, 박탈과 결핍, 상실과 비교... 그리고 이러한 말들과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 그리고 그 사이의 것들은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러한 감정들은 고독과 가난, 지인들로부터 받은 모욕, 차벽, 폭력 등으로 형성되어 온 것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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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궁금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똑같이 경험한 삶을 파괴적으로 혹은 비관적으로 이끄는 누군가, 그것을 삶의 근간을 이루어 간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왜 낙관적으로 생산적으로 살아내는가,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러한 모든 것을 손톱밑에 박힌 가시처럼 아픔을 느끼고,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사소함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관과 자기외면의 다른 면 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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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삶의 근간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그것들을 경험한 것 자체가 인생에 드러워진 장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자기연민이나 자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자기인식을 명확히 해서 전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이 진정 삶의 승자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은희경 작가님의 소설이 나에게 준 메시지는 결국 그러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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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이 소설에서 세세하고 디테일한 이야기의 조각들,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의 경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누구도 일부러 준 사람은 없지만 박탈을 경험하는 김희진과 같은 사람, 누구도 자신의 삶에서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약점으로 인해 살아갈 방법을 택한 김유경과 같은 사람, 그리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았던 그녀들의 이야기들 속에서 나 자신의 면면도 들여다 보게 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슬픈 건 담담하게 살아온 그 삶에 스며든 체념과 이른 포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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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희경 작가님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첫 장편소설과 가장 최근 장편 소설을 읽고 그녀를 영원히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는 일 조차 그건 어디까지나 내 해석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새겨본다. 피드에 밑줄 그어 옮겨놓은 문장이 가득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또 옮기고 싶은 글들이 가득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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