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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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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의 사전적 정의는 품성이 어질고 착한이고, ‘차별주의자’에 대한 정의는 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동등하지 못한 대우나 권리를 인정하며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말은 역설적 표현이라기 보다는 형용 모순이다. 그럼에도 갑자기 왜 난데없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선량한 이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우리사회 혐오와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과는 반대의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썼는지도 모르겠다. 사회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차별에 무감한 사람들이 갑자기 차별주의자로 소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차별주의자와는 달리 이들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차별이 만연한 세상 속에 살다보니 그렇게 된 선량한 시민들의 의식저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읽은 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하니 차별에 대하여 인식 전환을 일으킨 것만으로 이 책은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선량한과 차별주의자를 엮어 새로운 용어가 나타난 것이 약간은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구심점이 없이 사실 산만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가 도대체 이 책에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뭐가 있어서 이렇게 정신이 없나 싶었는데, 무언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전환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책을 마치는 순간까지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다 본 후 ‘이상한 정상가족’을 연이어 보고 있는데 앞문맥과 뒷문맥의 연결이 말끔하지만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사실 툭툭 던지는 문장들이 너무 많고 성소수자, 다문화, 장애인, 여성, 인종 등 많은 부분을 섞어 다루다보니 사회의 구조적 측면, 제도적 측면, 인간의 인식적 측면, 교육적 측면 등 구분되어 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이 책이 그 단계마다 깊이를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왜 법으로 제정 될 수밖에 없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실질적 평등에 이르는 길에 대한 부분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나는 솔직히 기대만큼 아쉬운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여 저자가 말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일 자체가 향후 어떻게 인간의 행동변화까지 이끌어 내게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야기를 하였고 그로 인하여 단 한명이라도 변화가 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서있는 곳이 달라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 일을 한 편에서는 법과 제도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법리적 해석과 교육과 인문학적 사고의 향상을 바라는 마음을 저자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싶었다면 우리의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몇 해 전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원룸에 입주를 하려고 하는데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자보까지 붙여가며 입주를 막은 일이 있다. 자신의 주거권은 권리이고 타인의 주거권을 막는 것은 무슨 짓인지,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지칭한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위해서 글을 썼다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처럼, 조금 간명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핵심을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으면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