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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산다. 어떻게 보면 공간속에 존재하는 삶이지만 인간은 공간속에 산다는 말보다는 시간속에 산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시간은 한 인간의 바깥에도 존재하고 내적으로도 존재한다. 그로 인하여 인간은 때로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때로는 영원한 시간속에 존재하기도 한다. 한 인간의 삶은 그의 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작과 끝이 있으나 자연은 스스로 죽어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존재이나 명명을 이어간다. 이로 인하여 인간과는 다른 상대적 시간을 산다.
낯선 작가를 만났고 낯선 소설을 만났다. 아마도 나 말고도 많은 분들이 유사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제목이 주는 웅장함, 태고의 풍경 이미지 덕분에 이 책의 시작에서부터 반전을 겪었다. 첫 시간을 넘기고 난 뒤 나타난 게노페파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시대의 시간을 먼저 인지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등장한다. 그것은 신의 시간에서 시작하여 천사의 시간, 사람들, 땅, 나무, 집과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시간을 다룬다. 책을 읽다보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의 시간들이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처음에는 읽어나가면서 앞에서 다룬 누군가의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도 혹은 타인과의 전후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독자로 하여금 흥미로움을 유발하게 한다.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책이 얼마나 재밌게 읽어지는지 이 책을 읽는 동안 함께 읽던 페터 한트케의 소설을 못내 끝까지 못 읽은 것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오는 시간 순서대로 읽고 각각의 시간들을 따로 읽어볼까 하는 맘으로 읽으면 어떻게 읽혀질지 궁금하여 엑셀을 이용해서 그들의 각자의 시간의 흐름을 정리하여 살펴 보았다. 사실 어려운 작가의 이름은 아직 보지 않고는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흑백사진 속 웃는 모습은 각인이 되어 있다. 무언가 동화작가 같기도 하고 무언가 나만이 발견한 흥미로움을 간직하고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정말 세상의 신비에 경이가 찬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런 그녀가 쓴 소설은 신화적, 환상적인 면이 없는 것도 아님에도 리얼리즘의 요소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시간적 배경의 근간에는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한 1차대전 시작 전 게노페파의 시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손녀 아델카의 시간이 되는 1980년의 시간을 다루지만,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신이 만든 세상, 자연이 존재하는 시간, 인간의 고통과 영원한 꿈을 꾸는 시간, 그리고 현존을 거듭한 이후 얻은 안식과 같은 다양한 시간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꿈의 시간들을 다루곤 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인간의 눈으로 보여진 세상만이 전부가 아닌 땅을 딛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 하늘을 배경삼아 존재하는 천사와 죽은자의 시간 속에서 삶이 끝난 후 삶에 대한 인식을 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살아간 인간의 생을 다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근간을 이루는 것을 나는 여인들의 삶으로 보았다. 이 소설속에는 삼대에 걸친 이야기가 존재한다. 게노페파와 크워스카의 첫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인간적인 삶과 자연의 삶에 가까운 그녀 두 사람의 삶은 여러면에서 대조가 되지만 게노페파의 시간의 물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여인으로서 아이를 임신하고 육체적으로 이끌리는 정인을 만나며 이후 그 사람을 잃은 후 영원히 걸을 수조차 없어져버린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크워스카의 삶은 버려진 아이가 삶의 모든 고초를 겪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게노페파가 육체의 삶을 빌어 이루어나가는 모든 것과 달리 동물과 식물과 함께 살아가며 이 책에서 나쁜인간, 익사자 물까마귀와 같이 가장 신화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그리고 남성으로서 포피엘스키의 등장은 모든 것을 가진 물질에 속한 자이나 그 모든 것의 허무와 비관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포피엘스키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왔느지를 묻는 질문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으나, 한 랍비를 통해 어디로 가야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다음부터는 그만의 시간(게임의 시간)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첫 세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이후 세대와의 삶의 배경, 시간이 겹치는 순간까지 함께 하지만 그들의 삶의 큰 물줄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다.
그러나 다음 게노페파의 딸 미시아의 삶, 미시아 남편의 누나인 파푸가 부인의 삶, 크위스카의 딸 루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어머니들의 삶의 풍경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간의 주인공은 미시아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이 책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굴곡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가장 평탄하게 보이기도 한다. 비록 전쟁을 겪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두 여인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전형적인 가사일을 담당하는 여인으로서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나 자식들에게서 조차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파푸카 부인의 시간을 살펴보다면 시간이 얼마나 자비롭지 않은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루타의 삶은 한마디로 전쟁이 여자와 아이들에게 있어 얼마나 ‘악’에 속하는 영역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녀는 전쟁과 그리고 제대로 되지못한 남편으로 인한 억압된 삶에서 태고의 삶을 떠나 경계 밖으로 나간 유일한 여인이기도 하다. 그어느 누구의 삶보다 루타의 삶이 그리고 병사 쿠르트의 삶을 보다보면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희생자임을 알게 된다.
최근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쟁과 평화, 적과 흑 등 전쟁이 남긴 많은 이야기에 관련하여 책을 읽었다. 마가렛 미철이 쓰는 전쟁에 관한 역사소설이 주는 의미는 그간의 역사소설들과 좀 다른 면이 있었는데 올카 토카르추크의 소설도 읽다보면 그녀가 죽은자들의 행렬, 이반 무크타의 나 쿠르트의 삶 등을 통해 아주 강렬하게 그 모습을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아직 언급하지 않은 이지도르나, 미하우, 파베우 보스키 등의 삶 또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길게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한다.
태고의 시간은 결국 이들의 삶이 하나의 공간속에 모여진 시간이다. 태고는 비록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곳이 어디즘인지 우리는 읽는 동안 그려낼 수 있다. 그곳이 어디이든 우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가장 중심지의 삶이고 각자 시간의 흐름속에서 자신들만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선택을 하기도 한다. 가상의 공간일지라도 우리는 폴란드의 어느 마을을 그려낸다. 세계대전의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겪은 나라이기도 하고, 이후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또다른 감시의 세상을 살아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끝의 삶에는 오래전 마을을 떠난 아델타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결국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델타의 삶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녀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언제나 소중히 간직했던 커피 그라인더는 그녀는 가고 없지만 그녀들이 소유한 그라인더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의 삶보다 때로는 더 영속성을 갖는 이 사물을 작가는 우리에게 왜 등장을 시킨 것일까. 왜 작가는 창조를 한 신이 그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외면 당해 파괴하는 순간에 이르기 까지 도대체 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것만 같다. 나는 그녀가 이 소설에서 많은 등장인물의 삶을 다루면서도 순간순간 등장한 보리수의 시간, 버섯균의 시간 등을 통해서 죽음의 생 까지도 다르고 있음을 보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시간 속에서 물질적 부, 야망을 향한 꿈을 꾸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과거의 시간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책의 곳곳에 죽음을 배치하였다. 인간에게 죽음 이후의 시간을 작가는 보여줌으로서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는지도 이야기하고, 그런 인간의 시간과 대조되게 자연을 통해 인간이 시간을 소유해야 하는 방식 등을 버섯균을 통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기에 우리에게 시간은 삶으로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오지 않은 미래까지. 이책에서 시간에 관하여 어떤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야기를 조합할때마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 무의식속의 원형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작가의 다른책도 바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이번기회를 통해 만나게 되길 희망한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