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항쟁 -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김상숙 지음 / 돌베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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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가로 활동하던 선배 미술가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듣게 된 세미나에서 10월 항쟁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보고 들은 건 기존에 알던 역사와는 달랐다. 이제껏 역사 교육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10월 항쟁은 전국 시위로 번져나간 시발점이지만 여전히 ‘폭동’이나 ‘사건’으로 불리며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근현대사로 유명한 작가의 책에서 '시월사건'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건'으로 표현하는 것은 절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이 세미나를 들은 이후 10월 항쟁과 관련한 몇몇 행사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젊은이가 이런 문제에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는 어른들의 인사를 들었다. 모두가 그랬다. 이것과 관련한 기사를 쓴다고 말하자 기특하다며 용돈까지 쥐어 주시는 분도 계셨다.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 채영희 선생님께서 김상숙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 말씀하시는 장면이 너무 선명하다. 10월항쟁에 관한 유일한 책이고 진심이 담긴 책이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강신주의 『구경꾼 VS 주체』에서 10월 대구항쟁을 다룬다고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주 어렵지 않으니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그 책의 전편인 『철학 VS 실천』을 다 읽고 넘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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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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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하는 일론 머스크한테 "유튜브에 공짜로 올려 뒀으니 내 자본론 강의나 들으렴" 했던 그 데이비드 하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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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컴북스 이론총서
박홍규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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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에서 《컴북스 이론 총서》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강력하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주장했던 건 (함께 진행한 책의 강신주도 지적했듯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떤 이론을 배우든 그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인 이유로는 삼겹살 두 근 무게의 『오리엔탈리즘』을 읽을 자신이 없고, 읽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주 좋은 입문서고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추천한다! 《컴북스 이론 총서》뿐만 아니라 출판사 이름을 건 이론 총서를 읽어 보면 난이도나 경향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저자는 내용을 전제하고 써 버려서 입문서의 역할을 못 하고, 어떤 저자는 자기 시각이 너무 부각되어 해설서의 역할을 못 한다. 물론 이 책도 박홍규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서술 방식이나 태도가 '사이드적'이기 때문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가 만들어 놓은 비서구의 개념과 이미지에 대해 말하며 제국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민족주의를 비판한다. 특히 문화 영역에서는 제국의 통치 없이도 식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사이드는 서구 문화를 비판하며 융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다소 낙관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 순진한 방법은 비서구 문화가 동화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 쉽다. 또 융합을 주장하지 않아도 모든 문화는 혼종성을 가지기 때문에 융합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민족 단위가 아니라 지역(local) 단위의 문화를 지키는 방식으로 나가면 서구의 맥락에 포섭될 수 없는 다양한 문화가 보존될 것이다.

   사이드에게 가장 인상깊은 것은 지식인에 대한 태도이다. 지식인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만 지금의 엘리트들은 권력과 결탁해 또 다른 권력이 되었다. 사이드의 말대로 지식인은 공적이며 자유로워야 한다. 자본에 복종하고 봉사하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박홍규도 이 부분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사이드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지식을 권력화하려는 사이드 전공자를 지적하고 대항한 지점은 높이 산다. 하지만 저자에게도 앎과 삶의 일치가 쉬운 작업은 아니었나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면 나는 모임원들과 하는 이 작업이 좋다. 역사, 철학, 정치를 읽고 배우는 이 시간이 좋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은 이 모임이 꼭 대학원 세미나 같다고 했다.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지식을 나눌 수 있고, 그 과정이 괴롭기보다 즐거워서 만족한다. 주위 대학원을 가는 친구들의 유형과 대학원 생활을 보면 많은 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와 같이 저항하는 혹은 의도치 않게 저항하고 있는 친구들이 참 든든하다.

   사이드를 읽으면서 푸코의 감시자 개념과 에두아르 글리상의 혼종성 개념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푸코는 2차가 많으니까 올해 꼭 도전하겠다. 글리상은 검색 가능한 1차나 2차는 없고 논문도 거의 없고, 내가 접근 가능한 것은 이미 다 읽었다. 철학 출판사에 들어가면 내 반드시 에두아르 글리상을 기획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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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의 얼굴들 - 파농 사이즈 바바 스피박 경북대학교 인문교양총서 17
김지현 외 지음 / 역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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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라는 어려운 개념을 일반 대중을 상대로 쉽게(진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이때 설명하는 방식은 일상생활의 문제에서 철학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탈식민주의가 실천적 학문임을 깨닫게 한다. 탈식민주의 입문서로 추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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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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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교육을 강조하는 이 책을 아무런 비판 없이, 내 생각을 전개하지 않고 ‘주입식 독서’ 하는 것만큼 오독이 또 있을까. 경쟁 교육에 대해 이해하고 사회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하나의 입장을 알고 이 책을 덮는 것은 김누리 교수에게 조금 미안해지고, 완독 후에도 그대로인 나에게 조금 부끄러워지기 때문에 한 문장이나마 남긴다. 김누리가 전달한 하나의 관점을 달달 외워 내면화하는 것 또한 새로운 파시즘일 수 있다는, 그러니까 여전히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같은 태도로 민주주의를 주입당하고 있는 새로운 파시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그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도구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나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질러 과열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한두 해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지금의 교육을 ‘경쟁교육’이라 명명하고 이것이 야만이라고 단언하는 책에 반박의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경쟁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깊숙이 파고들었나 보다.


90년대생인 나는 목적도 없이 ‘어쨌거나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고등학교를 다녔고, 어떤 누구도 무슨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지 관심 가지지 않았다. 함께 이 책을 읽고 토론한 친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모임은 성별, 출신 지역, 전공, 종교가 다양한 90년대생으로 구성되었고, 책을 좋아하고 세계의 위기를 인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님(어쩐지 스님의 광채가 있음) :

나는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대학을 잘 가는 것보다 그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걸 더 대단하다고 했었어. 명성처럼 경쟁이 대단했고, 그 분위기 속에서나는 정말 예민했던 것 같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절대 그 학교에 가지 않을 거야.


박마고치(자꾸 다마고치 밥 줌) :

나는 학교가 끝나면 어머니가 앞에서 늘 기다리셨어. 차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고 학원으로 실려갔어.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너무 힘들었어. 반항심이 없었던 건 아니야. 어머니는 내가 문과에 어울릴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고집부려서 이과로 갔지. 문제는 그렇게 선택한 학과가 나랑 안 맞았다는 거야.


변태철학자(모든 말에 철학자를 인용함) :

고등학생 때 주변 친구들의 장래희망을 듣다 보면, 모두 장래희망이 직업이나 전공으로 환속된 경우가 많더라고. 나의 꿈이 고작 어느 대학의 어떤 전공을 하는 게 전부가 되는 거지. 나도 초기에는 그랬던 것 같아. 우선 국문과를 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어. 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는 고민하지도 않고서. 그리고 막상 국문과에 가니까 학과 친구들 대부분 문학에 관심이 없더라고. 전과를 하거나 복수로 이수한 전공에 몰두하기 마련이었어.


경쟁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쌍꺼풀이 없는 친구들이 쌍꺼풀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친구를 따돌린 사례 같은 건 외모지상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또래 친구들끼리 신체를 조각내 품평하고 순위를 매기는 일에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성적과 외모와 조금의 성격이 합산된 결과값은 이 학생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도 되는지를 결정했다. 그 안에서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그 안에 있는 모두가 이미 미쳐 있었을 것이다.


김누리는 한창 68혁명에 빠졌을 때 알게 된 저자인데, 68혁명이 빗겨간 한국에 대해 통탄하는 글을 보고 확 빠져들었다. 내가 68혁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일상생활의 혁명이 가능한 운동이었기 때문이었고, 독일을 포함한 서구의 여러 나라가 이 영향 아래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누리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정치 상황과 일상의 순간이 분리되어 나타나기 때문이고, 이것은 일상 속에 파시즘과 권위주의가 너무나 많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양한 부분에서 이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속속들이 말해 주고 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는 이전 책에서 말했던 다양한 부분 중에 교육 부분에만 집중한 책이다.


김누리가 그중에 특히 교육에 집중했던 것은 진정한 개혁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자란 90년대생들은 부모 세대와 갈등하는 것 같지만 크게 그렇지도 않다. 갈등하는 이들도 소수이고, 갈등에 대한 또래의 반응을 보면 우리 아빠(TK, 50대)가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이다.


민주주의자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김누리의 말은 삼성역 빌보드에 휴대폰 광고 대신 붙여 두면 좋겠다. 휴대폰이 잘 팔린다고 나라가 잘 살게 된다는 거짓말은 진즉 들통났으니까. 일제 강점기에는 황국신민, 제국주의 노예를, 해방 이후에는 반공 투사, 산업 전사를, 지금의 민주정부에서는 자본주의 부품을 만들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도 되지 못하는 부품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1919년 공화국의 주권자가 됐고,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수님 :

통일 때문이야. 통일이 안 된 상황에서 제대로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기는 힘들다고 봐. 역사 교육부터가 그래.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는 남한 중심의 역사를 배우잖아. 대표적으로 고구려나 발해 역사를 도외시하는 것도 이데올로기야.


변태철학자 :

학교 교육에서부터 우리가 조종당하고 있기 때문이지. 푸코의 감시효과처럼 체제의 내면화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으면 그 자체로 비판적인 사고가 불가능해.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인데 자본주의의 욕망이 곧 우리의 욕망이라고 생각할 따름이지.


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 학과에 새로운 전공을 개설해 달라는 요구를 한 적 있다. 떼를 쓴 것이 아니다. 첨단의 이론이었는데, 이 이론을 배워야 하는 이유와 우리 학교가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증거를 함께 제시했다. 이에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의 의견과 이 이론을 가르치는 강사의 이력서를 직접 받아 문서로 제출했다.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는 답변과 함께 내 의견은 묵살되었고, 학과 교수들은 아이들을 선동하고 다닌다며 나를 정말 싫어했다…. 대학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는 곳 아닌가?


민주주의를 한계 짓는 온갖 권력들과 대립하고 대항하려면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당장에 엉성하게 만들어진 것도, 갑자기 끓어오르듯 만들어졌다 하루 아침에 없던 일처럼 사라질 것도 아니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시도도 시스템에 의해 되돌아가고, 심지어는 상품으로 변형된다. 기존의 지배적인 지식과 공통 감각을 뒤흔드는 것은 문화나 예술일 것이고, 새로운 지식과 공통 감각이 생겨나는 것은 교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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