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비교적 쉽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해서 원서 읽기 초보자에게 자주 권하는 책이에요. 저도 영문과 교수님께 추천받았고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쉽다곤 안 함)
『더블린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20세기 초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소설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같은 도시에 살면서 다른 상황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장 없이 담아냈어요.
『더블린 사람들』은 ‘죽은 자/죽은 사람들(The Death)’을 제외하고는 대개 열 쪽 안으로 끝나는 짧은 단편 모음집인데, 각각의 소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한국 소설 중에서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백민석의 『16 믿거나말거나박물지』, 배수아의 『뱀과 물』도 유사한 형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블린(Eveline)이 등장하는 단편의 한 단락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어떤 용어를 사용했는지 어떻게 표현을 만들어냈는지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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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pdf는 구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어요. 애플 유저는 애플북스에서 읽으면 편하답니다.
He rushed beyond the barrier and called to her to follow. He was shouted at to go on but he still called to her. She set her white face to him, passive, like a helpless animal. Her eyes gave him no sign of love or farewell or recognition.
01 문예출판사 문예 세계문학선, 김병철, 1999
프랭크는 난간 저쪽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라고 고함을 쳐도, 그는 여전히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가엾은 짐승처럼 힘없이 창백한 얼굴로 프랭크를 쳐다보았다. 그 눈은 그에게 사랑한다거나, 잘 가라거나, 사람을 알아본다거나 하는 것 같은 표정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청년은 철책 너머로 뛰쳐나가 처녀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계속 가라고 퍼붓는 고함 소리를 들으면서도 청년은 여전히 처녀에게 소리 질렀다. 처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청년 쪽으로 향한 채, 수동적이 되어 어찌할 바 모르는 짐승처럼 맥이 풀려 있었다. 청년을 향한 시선에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표정이나 작별을 고하는 표정도, 심지어 누구인지 알아보는 표정조차 어려 있지 않았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그녀에게 뒤따라오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빨리 가라고 그에게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불렀다. 마치 미약한 한 마리 짐승처럼, 수동적으로, 그녀는 하얀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사랑도 이별도 그 어떤 인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04 펭귄북스 마카롱 에디션, 한일동, 2015
프랭크는 난간 너머로 달려와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빨리 앞으로 가라고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댔으나,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기력한 짐승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사랑이나 작별 또는 인식의 아무런 표시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05 창비 시티 픽션: 더블린, 성은애, 2023
그는 서둘러 개찰구를 지나서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외쳤다. 길을 막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묶인 짐승처럼 맥없이, 창백한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엔 사랑이나 이별 혹은 그를 알아보는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이란
1. 문자 그대로 단어 그대로 옮기지 않고 맥락을 잘 살린 번역
2.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과 표현을 만들어낸 번역
3. 영어 자체를 잘하기보다 내용을 잘 파악한 사람의 번역
이 기준을 가지고 잘 읽히는 판본 추천해 볼게요.
1. 젊고 세련된 느낌의 창비 성은애 옮긴이
찰스 디킨스 전공자라고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세대 영국 작가로 같이 배우기도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책을 다수 번역했고, 영국 문학사에 대한 책도 있네요. 창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더블린 사람들』도 2019년 출간으로 다섯 권 중에서는 가장 최근 출간 도서입니다.
2. 부드럽게 흘러가는 펭귄북스 한일동 옮긴이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살림지식총서에 ‘영국 문화’와 ‘아일랜드’에 대해 쓴 도서가 있어요. 역시 교수는 다른 말로 잘 풀린 덕후라고 하더니…. 오랜 덕질의 세월이 부럽(?)습니다. 문장은 부드럽게 잘 읽히고, 아일랜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옮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원문에 충실한 문예출판사 김병철 옮긴이
이중 가장 오래된 번역인데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 옮기지 않으면서 순서나 느낌을 잘 살린 번역.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 전공은 아닌 듯하고, 미국 소설을 많이 번역했네요.
뒤에 해제가 있는데 그건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영문학의 이해 중간고사는 아니니까요…. 신중하게 고르셔서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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