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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실험미술 시공아트 23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김미경 옮김 / 시공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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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무 훌륭한 책이 절판되어 아쉽다. 구타이와 하이레드센터로 대표되는 전후 일본의 개념미술은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들은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뿌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구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도서관에도 잘 없는 책이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구해서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책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이레드센터와 대표적인 작품 하나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하이 레드 센터(Hi-Red Center, HRC)

하이레드센터라는 이름은 발기인 다카마쓰 지로(赤瀬川原平) 아카세가와 겐페이(高松次郎) 나카니시 나쓰유키(中西夏之)을 영어로 옮겼다. 전후 세대에 해당하며 일본의 전위미술이나 실험미술, 혹은 반예술이라고 불린다. 창립 시점은 1963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발기인 세 명 외에 수많은 비공식 요원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인원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공식적으로 정착된 형태가 없기 때문에 집합체인지 운동체인지는 모호하다.


이들 작업의 국가와 개인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의 연속으로, 권위적인 국가와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전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미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절대 해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이 미술을 두고 아카세와가는 이것을 ‘비밀예술’이라고 말하며, 다다이즘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다다이즘은 세계1차대전 이후 이들과 비슷한 시도를 했다. 아방가르드 미술 중 한 사조.) 비밀예술은 엉겹결에 우연히 목격할 수 있다. 공개된 제도 안에서 관객으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았을 때, 우연히 그 광경을 포착했을 때 형식 내부의 암호를 읽을 수 있다.


별것 아닌 것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작품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카하라


긴자 나미키도리-수도권 청소 정리 운동


1964년 일본은 도쿄 올림픽 개최 전 해외 손님을 의식해 도로 포장, 고속도로 건설, 조경 활동 등을 진행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하이레드센터는 긴자의 가로수길을 청소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완장을 찼다. 이들은 ‘수도권 청소 정리 촉진운동에 참가하자!’라는 전단지와 ‘청소중’이라는 입간판을 설치했다. 가운과 완장은 이들에게 어떠한 권한과 권력을 부여해 주었고, ‘진짜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의 지시에 따라 차를 세웠는데 심지어는 경찰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모조된 공적 힘의 위력은 대단했다. 권력이란 얼마나 추상적인가. 어떤 이는 보도블럭의 한 칸만 수 시간을 들여 깨끗하게 만든 뒤 그 칸을 밟기 위해서는 실내화를 신고 지나가라고 지시했다.


‘수도권 청소 운동’은 하이레드센터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국가 행사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또 행정 절차와 그 노동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얘기하기도 하며 일찍이 가짜 노동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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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취향 채석장 시리즈
아를레트 파르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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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의미화되는 아카이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미완의 대화에 무한히 다른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기


이성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작업인 아카이브, 객관적일 수 없고 언제나 소외를 발생시키는 아카이브. 진실의 증거로 작용하는 증거로서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문화공동체의 기억으로서 아카이브를 말한다.
















ISBN 978-89-320-3604-5  0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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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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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 본문 중

우리 사회는 고통과 억압에 대해 너무 무감하다. ‘기왕이면 대감집 노예’ 같은 표현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단지 자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판보다 수용과 적응이 우선이라고 배우며 자란 우리는 스스로 노예 감독관임을 알지 못한다. 자기 착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를 노예로 만들고,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지, 나는 어떤 것을 욕망하고 그 욕망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차근차근 생각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온 우리 또래는 노예 상태이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기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자기 착취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으로부터 빠져나오기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사유는 불가능하다. 탈학습(unlearing)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상식과 지배적 지식이 누구를 지배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신념이 아니다. ‘대감집 노예’가 되고 싶거나 ‘갓생’을 살고 싶은 것은 개인의 가치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양틀 속에 몸 구기며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착취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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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 SF... F.. C.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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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서

페미니즘 SF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언제나 그 시작엔 샬롯 퍼킨스 길먼의 책이 있었다. 『허랜드』는 무려 1915년에 ≪포러너≫라는 잡지를 창간해 그곳에 연재한 100년도 더 된 작품이다. 잡지 발간이 얼마나 빡세고 힘든데 잡지를 만들면서 연재까지…. 『허랜드』 이전에는 『내가 깨어났을 때』라는 작품을 연재했고 『허랜드』 이후의 이어지는 내용으로는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가 있다. 보통 길먼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3부작이라고 불리는데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1860년생으로 미국 동부 출신.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 여성관의 멍청함을 알고 스스로 공부하고 저항했다. 십대 시절부터 코르셋을 입지 않으려고 스스로 옷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유방암을 알고 ‘휴식 치료법’이라는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억압하는 처방을 받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칭한 길먼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의식 또한 왜곡시킴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보았고, 여성이 인간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획득할 때 인류 전체가 함께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옮긴이의 말


내용에 대해서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보다 체제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지도자가 없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상상의 나라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서 민주적 가치와 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 가치 속에 여성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세 남자는 미국 사회 안에서도 엄청나게 보수적인, 보수적인 남자들 사이에서도 보수적인 테리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무례하고 건방지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든다. 반면에 허랜드의 여자들은 일관된 태도로 그들을 대하는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멋있어 보이면서도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여성혐오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다. (아니안웃겨) 세 남자는 놀라지만 허랜드에서는 당연한 일들에 대해 질문할 때 허랜드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네, 왜요?" 하는 하니 짤이 떠올라서 혼자 킬킬거렸다....


“네.” 우리는 인정했다. “문명국 대부분이 다 그래요.”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더 이상 별 쓸모없는 동물을 키우는데···.” “개들은 집을 지켜 줍니다.” 테리가 주장했다. “강도가 들어오려 하면 개가 짖거든요.” 그러자 그녀는 ‘강도’라고 적고는 계속해서 읽었다.


하나의 편견이겠지만 여성들만 사는 사회를 그리는 소설이라고 해서 그동안 봐 온 것처럼 여성 화자가 등장하거나 3인칭 시점으로 그 사회를 하나씩 훑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1장 내내 모험을 떠나는 ‘백인 남성’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 더없이 완벽한 이상적인 사회를 보여 주기에 적합한 화자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동력을 위해서 결핍이나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허랜드에는 결핍도 갈등도 없다. 허랜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낱낱이 알려졌다면 모순이 생기거나 이상화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 영원한 주일 학교 같은 걸 원한다면야 물론 좋겠지. 하지만 난 뭔가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게 좋다고. 여기는 모든 게 이미 다 이루어져 있어.” 그것은 뭔가 일리가 있는 비판이었다. 개척 시대는 진작 오래전에 끝났다. 이 문명이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은 이미 극복된 지 오래였다. 고요한 평화, 넘치는 풍요, 한결같은 건강, 넉넉한 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매끄러운 운영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극복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되는 유서 깊은 시골 저택에 사는 행복한 가족 같았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혹은 불만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여자들끼리 살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놓고 굳이 남자들이 살던 나라의 ‘결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온 것인가. ‘공정하고, 침착하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불행도 범죄도 수치심도 모르는’ 여자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단지 호기심에서 출발한 사회 실험인가? 자기네들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랜드 사람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것이 결국은 이들을 바꿀 수 있는 오만함을 끝까지 가졌던 것 같다. 허랜드에 잘 동화되어 사는 인물이나, 이곳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인물 모두 자기가 가진 젠더 개념을 버린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모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이 문화 전체의 주조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현저히 부족했다. 이에 나는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성적 매력들’이 사실은 전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성이 반영된 것뿐이라는 확신을 즉각 얻었다. 남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되었을 뿐, 발달 과정에서의 진정한 성취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특징들인 것이다.


문명과 비문명 혹은 야만, 형제애와 자매애, 과학기술과 원시적인 것처럼 대비되는 개념을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경계와 대비는 모호해지고 오히려 전복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까지 원래 가진 언어 습관, 즉 여성적이라는 말로 너무 쉽게 여성을 폄하하고 깔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적이라고 폄하하는 그 행동을 본인이 하고 있음에도. 언어습관이 사고를 지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고가 언어 습관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이 먼저이든 언어가 사고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는 것 같은 게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이 점점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단어를 덜 사용한다는 것이다.


테리가 생각하는 어머니다움이란 아기를 품에 안거나 ‘슬하에 아이들을 거느린’ 채 온통 그 아기나 아이 생각만 하고 있는, 그런 통상적인 개념이었다. 사회를 지배하고 모든 기술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아이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살피고 교육하는 개념으로서의 모성은 테리에게 어머니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끝으로 아쉬운 점은, 책 자체에 아쉽다기보다는 번역의 한계를 느낀 것이 women, female, lady, girl 등으로 다르게 쓰이는 단어를 모두 여성이나 여자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에는 사회적 성인지, 생물학적 성인지 드러나게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한국어는 성별 표현에 위계가 없다. 그래서 번역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고! 원서를 옆에 두고 읽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빌어먹을 할망구들 사고방식!” 테리는 말했다. “저러니 남자들 세계를 이해 못 하지! 저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야. 그저 한 무리의 여, 여, 여성들*에 불과해!” 테리가 그들의 처녀 생식을 인정한 뒤에 한 말이었다.

          * 원문에서 테리가 쓴 단어는 부정적 의미의 ‘females’이다.


처녀생식을 제외하고 나면 이 소설은 현실 고증 다큐멘터리 추적 60분이다.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를 지루하게 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일상에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과 말들이 재현되어 있어서 대단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100년도 더 뒤에 읽는 건데 여전히 상황이 비슷하다는 건 좀 안타깝긴 하지만. 21세기 여성, 제4물결이 밀려오는 이 시점에서 허랜드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절대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에 대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뛰어난 상상력 하나만으로 이 소설은 훌륭하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학교 커리큘럼에 포함시켜서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여성이고 청년인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감상이 비슷했다. 비슷하게 분노하고 비슷하게 웃었다. 감상이 비슷해서 점점 대화에 활기를 잃을 때쯤 멤버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내가 만약 허랜드에 사는 청년이라면 제프, 테리, 밴 세 남자 중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대단한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한 사람은 정말로 고통스러워하며 대답하기 싫어했다. 어떤 사람은 편하게 휘두를 수 있는 ‘제프’를 골랐고, 어떤 사람은 그나마 상식적으로 말이 통하는 ‘밴’을 골랐다. 나는 가장 새롭고 신기한 인간 테리를 고르겠다고 했다.


혼자서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더 즐거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 혼자 읽었다면 42%쯤에 하차했을 것 같다…. 독서모임 중이라면 함께 읽자고 제안해 보시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량이 짧고 세계관이 복잡하지 않아서 술술 읽히는 책이기 때문에 읽어 볼 것을 추천합니다.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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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항쟁 -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김상숙 지음 / 돌베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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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가로 활동하던 선배 미술가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듣게 된 세미나에서 10월 항쟁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보고 들은 건 기존에 알던 역사와는 달랐다. 이제껏 역사 교육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10월 항쟁은 전국 시위로 번져나간 시발점이지만 여전히 ‘폭동’이나 ‘사건’으로 불리며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근현대사로 유명한 작가의 책에서 '시월사건'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건'으로 표현하는 것은 절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이 세미나를 들은 이후 10월 항쟁과 관련한 몇몇 행사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젊은이가 이런 문제에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는 어른들의 인사를 들었다. 모두가 그랬다. 이것과 관련한 기사를 쓴다고 말하자 기특하다며 용돈까지 쥐어 주시는 분도 계셨다.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 채영희 선생님께서 김상숙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 말씀하시는 장면이 너무 선명하다. 10월항쟁에 관한 유일한 책이고 진심이 담긴 책이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강신주의 『구경꾼 VS 주체』에서 10월 대구항쟁을 다룬다고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주 어렵지 않으니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그 책의 전편인 『철학 VS 실천』을 다 읽고 넘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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