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은 자기계발 같은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심지어 데일 카네기‘인간관계론』도 끝까지 읽지 않았다. 한 열 장쯤 훑어보고 나자, 자신은 남의 생각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를 만나고 나서는 달라졌다. 그녀가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게 바로 사랑의정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위해서 정말로 내 모습을 바꾸고 싶은 마음.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테니스슈즈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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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캘빈은 아직 어렸다. 어린애답게 희망을 참 오랫동안 품었다. 이제는 그만 품어야 할 만한 시점을 훌쩍 넘겨서까지. 그는 새롭게 등장한 아버지가 보내준 책을 모두 읽었다. 마치 그 책이 사랑인것처럼 마구 욱여넣으면서 아픈 마음을 온갖 이론과 알고리즘으로채웠다. 그리고 자신과 아버지가 나누었던 화학적 관계를, 영원히 이어져 있어 끊을 수 없는 유대를 밝혀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독학으로 배운 것은 타고난 권리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화학이 복잡하다는 점, 때로는 비정하리만큼 뒤틀리고 꼬였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캘빈은 이 새로운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만나주지도 않았으며 화학이라는 그 학문 자체에서 그가숨기지도 키우지도 못한 원한이 피어났다는 사실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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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순진한 사고방식이네, 라는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생은 열심히 노력해서 헤쳐나가면 되는거라고 계속 믿고 있지 않은가.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하는 법인데, 하지만 이제껏 엘리자베스는 운이 좋았던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운이라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이 노력이 언젠간 빛을 발할 거라고 그녀가 얼마나 단언했던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인생에는 사실상 최선을 다해도 노력이 빛을 잃는 경우가 더욱 많은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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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은 길고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 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 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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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랜 시간을 문장들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문학은,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단순화하는 경향이있다."
로제 그르니에의 문장을 읽고 두려워졌다.
얼마나 많은 것이 내 단순함의 칼날에 잘려 나갔을까?
아마도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신이 자꾸 미워졌다.

그때마다 다른 문장들이 다가왔다.
"나는 이미 한때 소년이었고 소녀였으며,
덤불이었고 새였고,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말 못하는 물고기였으니."
엠페도클레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장이다.
아무래도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후예인가 보다.
사랑의 윤회를 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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