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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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과 악의 싸움으로 들리고 흑과 백의 싸움, 사단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대항하고,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으로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다. 물론,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을 낙심시키는 영적인 전쟁이 존재하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함은 맞다. 그런데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영적전쟁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싸움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마다 마음의 연약함이 다를텐데, 그 연약함을 아주 치밀하게 무너뜨리는 것이 영적전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자신을 알고 자신의 자존감의 위치, 자존감을 이루고 있는 많은 감정들, 나아가서는 뇌과학의 이해가 있다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상처와 연관이 있다.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인데 특히 일곱 살에서 열 살 무렵에 혼자 집에 남겨진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이때 뭔가 무섭거나 불쾌한 일을 겪으면 ‘혼자 있음’은 곧 불쾌한 경험으로 각인되기 쉽다. 또 혼자 있는 것이 대한 두려움이 부모를 향한 원망과 이어지곤 한다. “그때 왜 나를 혼자 뒀어?” 하는 원망. 방치되고 보호받지 못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또다시 그런 연약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윤홍균, [자존감 수업] 중 발췌, P.59

혼자 남겨지지 않았음에도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방치되어 있는 듯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지만, 기억이 기억을 낳고, 자신도 모르게 안좋은 기억에 잠식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을 사용해서 그 기억에서 나오려고 해도 쉽게 나와지지 않는다. 불쾌한 경험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실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감정의 실체를 조금씩 이해해가면서 실제적인 영적전쟁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도 받고 병리적인 차원에서 정신의학과의 처방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기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영적전쟁을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적인 연약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함과 빠져나올 수 없다는 내면을 향한 공격이 끊임없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을 자기 자신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인정하고, 또 인정해보자.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싸움이기에…

#북스타그램 #자존감수업 #윤홍균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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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메시아 - 우리가 믿는 예수는 성경에 없다
카일 아이들먼.마크 무어 지음 / 두란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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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메시아], 카일 아이들먼의 저서로는 처음 읽어보는 책이었다. [팬인가, 제자인가]를 읽어봤다면 이번 읽은 책의 방향성을 더 잘 알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하여도 저자의 문체와 성향을 이번 책을 통해 잘 읽을 수 있었다. 책 안에 ‘혁명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저자는 열성적인(?) 제자도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였다.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깊은 차원의 제자도를 꿈꾸고 공동체 제자도를 지지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필자는 너무 급진적인, 저돌적인 제자도에 대해서는 약간의 알러지 반응은 있다. 그러나 급진적닌 제자도를 설명할지라도 저자는 구약의 사람들,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예수님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롯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우리는 인간 지도자를 떠받들려는 유혹에 여전히 흔들린다. 그의 권력으로 우리의 ‘종교’ 정책을 지지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성향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그들을 지켜 줄 왕을 이 땅에 달라고 우기던 이스라엘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우리는 메시아 예수님보다 그들을 더 높은 자리에 두고 우상으로 떠받든다. 그 결과 예수께서 보여 주신 정의와 자비를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대신 예수님을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 형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카일 아이들먼, [실종된 메시아] 중 발췌, P.83-84

예수님 당시의 시대, 헤롯 대왕의 시대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바꿔줄,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꿔줄 메시아가 필요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다. 왕이신 예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이 원했던 왕처럼 그러한 왕이신 예수님이 아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본래의 메시아의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저자는 올바르게 메시아를 이해하고, 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따르는 제자도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주장을 신학 용어로 총괄갱신(recapitualation)이라 한다. 역사가 예수님 안에 집약되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는 개념이다. 구약에서 틀어진 모든 일을 신약의 메시야가 수습하셨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인간이 해내지 못했을 때마다 예수님이 다시 손을 대시고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완수하셨다.
같은 책, P.135-136

저자가 공동체에 대해 강조하는 부분은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신앙생활 할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도와주고 기도하며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앙관에 대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해 아쉬운 점은 든다(저자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으로 인해 메시아가 실종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성경적인 관점과 역사에 기반해 기초를 쌓고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는 삶을 산다면 ‘실종된 메시아’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Jesus Messiah, name above all names
Blessed redeemer, Emmanuel
The rescue for sinners, the ransom from Heaven
Jesus Messiah, Lord of all
작사: Chris Tomlin / Daniel Carson / Ed Cash / Jesse Reeves
Jesus Messiah 가사 © Capitol CMG Publishing, Music Services, Inc, Reservoir Media Management, Inc, Universal Music Publishing Group

Chris Tomlin의 ‘Jesus Messiah’ 후렴이 생각나서 가져와보았다.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진정한 메시아이시다!!!

#실종된메시아 #카일아이들먼 #두란노 #책추천 #신앙서적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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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 로마 제국 어느 회심자의 선교적 일상 ㅣ 1세기 기독교 시리즈 3
로버트 뱅크스 지음, 신현기 옮김 / IVP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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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의 후반부에 나오는 로마의 대화재, 로마의 황제 네로는 화재의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린다. 핍박과 박해, 모진 고문이 이후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끝까지 따랐다. 이야기의 주인공 푸블리우스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해결하기 원했다.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로의 거짓 기소로 그리스도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은 대화재 이후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우리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데 약간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을 탓할 만한 온갖 해괴망측한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중 발췌, P.47

굳이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서 오해를 풀어야 했을까? 대화재 이후 핍박이 있었는데, 몸을 사려야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일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네로와 그의 진영이 국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품고 있는 그릇된 인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둘째…그러므로 바울은 권세 있는 자들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분별 있는 태도읕 가지라는 것이다.“
같은 책, P.74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을, 베드로와 바울도 위험하다고 하는 일을 기어코 하고 만다. 아내 유니아로부터 격려와 힘을 얻을 뿐더러 하나님이 정부의 일에 참여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계신다고 느끼며 어려운 일을 해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건 우리 자신의 선교(a mission)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죠! 당신은 실제로 예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죠.“
같은 책, P.79

이 사건 이후에 네로는 다시 대화재를 일으켜 원로원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미리 알아챔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광범위한 박해는 없었다고 한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삶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시는 일임을 볼 수 있다. 용기를 내기 힘든 연약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선교를 이루어 가신다.

#북스타그램 #1세기그리스도인의선교이야기 #하나님의선교 #로버트뱅크스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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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 어느 회심자의 평범한 일상 ㅣ 1세기 기독교 시리즈 2
로버트 뱅크스 지음, 신현기 옮김 / IVP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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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의 부제는 ‘어느 회심자의 평범한 일상’이다. 로마인인 푸블리우스는 평범한 로마인이었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나서 평범한 로마인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로마인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지 않게 되는 행동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오늘 하루를 드리는 로마인으로 변화되었던 평범한 한 가장으로 등장한다.

“나의 새로운 신앙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최선의 방법은 가족과 일과 사회생활이 뒤섞인 아주 전형적인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다.“
로버트 뱅크스,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중 발췌, P.14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도시 내의 빨간 기와집 한 채), 아내의 이름은 누구인지(유니아), 언제 일어나는지(동트기 전에), 어떤 사업을 하는지(돈을 맡고 송금하고 빌려주는 은행업) 등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되 옛사람의 모습이 바뀌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나는 언제나 그런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르자면 아직도 배울 게 많다…다른 많은 사람과는 달리 그에게 벌로 매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에 대해 아주 혹독한 말을 했다.”
“노예 다루는 법이 포함된 그 편지에서 바울은 노예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다루는 법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대해 주기 바라는 방식이다. 나는 과연 암비오를 그렇게 대했던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실수를 실제보다 잔뜩 부풀렸고, 그에게 아주 무례했으며 사려 깊지 못했다.”
같은 책, P.24, 26

회심한 후 그리스도인이 되어 변화된 삶을 살고 있지만, 사람 쉽게 안변한다(필자생각). 회심의 사건이 있더라도 옛사람이 불쑥불쑥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로마인보다는 인격적인 주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전인격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하루를 보내고,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할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하루를 보며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하루를 보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북스타그램 #1세기그리스도인의하루이야기 #그리스도인 #로버트뱅크스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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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단하고 가장 빛나는 시간 - 목사 아빠의 30일 육아 묵상
신동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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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하고 돌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 정말 새로운 차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의 모든 부분이 달라졌고, 아이에게 맞춰지게 되었다. 예상했던 것만큼 체력을 요하고, 나 자신의 내면의 바닥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마음이 아이에게 가지 않도록 발버둥치고 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4년 전에 히든이가 우리 가정에 입양되면서 아주 조금은 예행연습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아기라는 새로운 생명은 완전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느끼고 있다. 몸이 고된 것은 버틸 수 있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못되는 것 같은 나약한 마음과, 이런저런 걱정들이 다가옴으로 내 내면의 바닥을 보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눈여겨 봤던 책인데, 드디어 이 책을 구매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자녀는 부모의 얼굴에서 부모의 감정, 세월이라는 기록을 차차 읽어나간다. 감정의 영향을 받아 불안과 안도를 넘나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모진 인생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마주하는 태도,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까지 배운다.”
신동재, [가장 고단하고 가장 빛나는 시간] 중 발췌, P.30

어느 주일 아침에 한 권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배운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웃으면 아이들도 웃음을 배우고 부모님이 인상을 쓰면 아이들도 인상을 쓴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표정에 아이들은 배우고 모방하며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4개월차의 영아이지만, 우리 딸에게 나의 근심보다는 기쁨을 더 알려주고, 어려운 감정들은 아이가 없을 때 해소하고 하나님과 먼저 다뤄놓아야 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교회의 어느 설교에서도 아이들은 부부싸움이 있을 때,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어서 부모님이 싸운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셨었다. 아직 부족하고 연약한 초보아빠이지만, 기억하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초가 줄기로 물을 끌어 올리며 잎사귀를 힘차게 내밀 듯이 아이에게 부모의 감탄에 스며들 때 아이의 정서와 지능, 신체 능력이 거침없이 뻗어나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창 클 때 밥을 찾고 잔뜩 먹듯이, 부모의 관심과 호응을 끌 만한 기회를 찾고 또 찾는 듯하다…이토록 아이는 칭찬에 굶주려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삼시 세끼 챙기듯 감탄을 먹여야 한다.
같은 책, P.141

아직 딸이 4개월차이다보니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감탄을 아끼지 않는 부모,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고 싶다.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도 있기에 더욱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책을 다 읽었으니 매일 한 챕터씩 읽어봐야겠다).

#북스타그램 #가장고단하고가장빛나는시간 #신동재 #초보아빠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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