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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현진건」 - 운수 좋은 날, 빈처, 고향, 술 권하는 사회 ㅣ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5
현진건 지음, 김준우 엮음, 이경하 그림 / 사피엔스21 / 2012년 2월
평점 :
사피엔스 한국문학 5권- 운수 좋은 날 빈처, 고향, 술 권하는 사회가 함께 실려있다.
현진건은 1920년 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했던 작가였던 만큼 암울하고 고단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천천히 곱씹으며 일고 또 읽을 때 그 묘미를 더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특히나 현진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무게가 책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다가와 온 몸이 저릿저릿해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운수 좋은 날-
빗속에 인력거를 끄는 이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비는 내리지만 하루 동안 몇 건씩 손님들을 태울 수 있어서 지독히도 운수 좋다 생각한 날, 그래서 설렁탕이 먹고 싶다던 아픈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날, 하필 아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든 아내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욕지거리가 왜 그리 정겹게 들리던지... 왜 그리 아프게 들리던지... 그런데 그 아내가 죽고 말았다. 지독히도 운수가 좋던 날 그렇게 아내는 떠나고 말았다. 죽은 엄마의 젖을 물고 한참을 울었을, 그래서 목마저 잠긴 아기를 생각하며 내 앞에 앙증스럽게 잠든 우리 늦둥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다.
-빈처-
가난한 예술가의 아내로 살면서 호강은 커녕, 집안 살림을 내다 팔아 근근히 끼니를 떼워야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방울방울 눈물이 장판 위로 떨어지는 것이 마치 바로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인지,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아픈 모습인지.. 그리하여 심골이 분지르는 것 같다고도 표현하지 않았는가... 구차히 얻어 산 몇 권의 책들은, 구름에 가려 우는 듯 조는 듯한 달빛에 빗대어 표현하며 예술가의 고단함과 구차하기까지 한 삶을 표현한다.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급변하던 과도기에 사회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라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지만, 작품들마다 하나같이 세밀한 묘사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것이 있다. 구차함속에서도, 가슴 뻐근한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표현되는 글의 아름다움에서 마치 시를 읽고 있는 듯,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그것이 나에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대의 아픔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랬기에 더 애잔하고 더 아름답게도 다가오는, 예전에는 그리 노력해도 느껴볼 수 없었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마흔 네 살... 현진건...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피엔스 한국문학은 이처럼 각기 다른 개성과 감성을 가진 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지난 날을 통해 내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이자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문학작품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리... [운수 좋은 날]을 읽은 그 여운이 쉬 가시질 않는 것처럼, 우리 청소년들도 메마른 감성을 적셔줄 그런 감동이 분명 함께 할거라 생각하고, 이 책이라면 분명 어려운 한국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줄거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