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 빈처 올 에이지 클래식
현진건 지음 / 보물창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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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희생화,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 레터, 까막잡기, 사립정신병원장, 불, 고향, 할머니의 죽음] 까지 총 10편의 작품을 읽었다. 현진건은 1920년 대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했던 작가였던 만큼 암울하고 고단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천천히 곱씹으며 일고 또 읽을 때 그 묘미를 더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학창시절 미처 다 깨닫지 못했던 삶의 무게가 책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다가와 온 몸이 저릿저릿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빗속에 인력거를 끄는 이의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게 하는 저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는 내리지만 하루 동안 몇 건씩 손님들을 태울 수 있어서 지독히도 운수 좋다 생각한 날, 그래서 설렁탕이 먹고 싶다던 아픈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날 하필 아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든 아내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욕지거리가 왜 그리 정겹게 들리던지... 왜 그리 아프게 들리던지... 마침내 병든 아내를 두고 눈물바람을 하는 남편과 함께 울 수 밖에 없었다. 지독히도 운수 좋던 날 그렇게 아내는 떠나고 말았다.

 

 살짝 얼굴빛이 변해지며 어이없이 나를 보더니 고개가 점점 수그러지며 한 방울 두 방울, 방울방울 눈물이 장판 위에 떨어진다. 나는 이런 일을 가슴에 그리며 그래도 내일 아침 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바람과 같이 설렁설렁 심골을 분지르는 것 같다. 쓸쓸한 빗소리는 굻었다 가늘었다 의연히 적적한 밤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림 앉은 등피 속에서 비추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는 듯 구차히 얻어 산 몇 권 양책의 표제 금자가 번쩍거린다. (-빈처 중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아내로 살면서 호강은 커녕 집안 살림을 내다 팔아 근근히 끼니를 떼워야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방울방울 눈물이 장판 위로 떨어지는 것이 마치 바로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인지,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아픈 모습인지.. 그리하여 심골이 분지르는 것 같다고도 표현하지 않았는가... 구차히 얻어 산 몇 권의 책들은 구름에 가려 우는 듯 조는 듯한 달빛에 빗대어 표현하며 예술가의 고단함과 구차하기까지 한 삶을 표현한다.

 

 이슬에 젖은 꽃향기는 사랑의 노래와 같이 살근살근 가슴을 여의고 따뜻한 미풍은 연애에 타는 피처럼 부드럽게 뺨을 스쳐 지나간다. 이런 밤에 부드러운 창자에 느낌이 없으랴! 꽃다운 마음에 수심이 없으랴! (-희생화 중에서-)

 연애를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지만 누구나 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진 못한다^^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급변하는 과도기에 사회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라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지만, 작품들마다 하나같이 치밀한 묘사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것이 있다. 구차함속에서도, 가슴 뻐근한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표현되는 글의 아름다움에 시를 읽고 있는 듯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그것이 나에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대의 아픔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랬기에 더 애잔하고 더 아름답게도 다가오는, 예전에는 그리 노력해도 느껴볼 수 없었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마흔 네 살...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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