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14일 일기장의 이름인 키티와의 만남으로 시작된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씌여지지 않았다. 그 끝을 알면서도 마지막 장이 가까워 올수록 '아... 안네의 일기를 계속 볼 수 있다면...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고 행복에 겨워하는 안네의 종알거림을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마지막 일기를 기록한 날로 부터 불과 두 달 전 "오늘은 디데이입니다." 라는 영국 방송의 발표에 드디어 자유를 얻는가 하는 기대 속에 흥분하던 안네의 모습이 그려져 안타까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몇 해 전 아들녀석과 보았던 '디파이언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세계 2차대전을 배경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리더쉽으로 피난민들을 이끌어 냈던 영웅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의 도입부 부터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라는 듯 생생한 장면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기억된다. 절망 뿐이고 희망의 한 자락도 발견할 수 없는 지옥같은 곳에서도 뱃속의 아이가, 새로운 생명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대사가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었는데 안네의 일기 속에서도 그러한 희망은 살아있었다. 어쩌면 흑암속에서 고개를 드는 희망이라는 불빛이었기에 더 밝고, 또 안타깝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잃지 않았던 발랄함과 유쾌함, 흔히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똑소리 나는 야무짐 어느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는 안네의 재치넘치는 글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이제 뒤로 하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어린 아이들까지 총을 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정당화 될 수 없고,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무참히 죽어가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안네와 같이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천사같은 아이들의 날개를 꺾는 일은 더더구나 없어져야 한다. 아직 전쟁을 겪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위태위태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안네의 일기를 보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아슬아슬한 평화마저 얼마나 감사한지 절감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