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씨가 받은 유산 미래의 고전 17
조장희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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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뻐서 꼭 키워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본 적은 없는 것같다. 물론 아이들 때문에 청거북, 사슴벌레를 키워보기도 했고, 지금은 열대어를 몇 마리 키우고 있긴 하지만... 전에 청거북을 키울 때 사람이 가까이가면 움직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도, 따라오기도 한다는 것을 아이가 먼저 발견하고 신기해하며 엄마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참 신기하기도 귀엽기도 해 그 뒤로 아이들은 일부러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반려동물로 인해 사람은 작든 크든 즐거움이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동물들은 주인과 같은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그전부터 자주 들던 생각이다. 요즘들어 특히 주인 품에 폭 안겨 아기인지 강아지 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귀한 자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에서야 그렇다 치고 공공장소에서 눈쌀을 지뿌리게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된다. 물론 그들은 자식처럼 생각하고 동물을 인격적으로 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괭이씨와 함께 묻고 싶다. 품에 안겨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 역시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볼품없는 행색으로 떠돌아 다니는 개나 고양이를 볼 때면 '저 녀석들도 주인이 있었을텐데..' 씁슬하기 그지없다.

 주인의 승용차를 타고 미장원에 다니며 발톱손질을 하는 호사를 누리지만 정작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두 발로 걸어다닐 일이 없는 동물들이 정말 행복하기만 하겠느냐는 말이다. 고양이답지 못한 주인공 미요를 보며 진돗개가 비웃으며 하는 말을 우리는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고양이답게 키우지 못하고 너를 장난감 삼아 기른 네 옛 주인아줌마가 잘못이지. 재롱이나 아양이도 마찬가지야. 그 애들도 생각해 보니 불쌍한 애들이야. 고양이를 고양이답게 키우지 못하거나 개를 개답지 않게 키우는 거나 다 마찬가지지." 

 자신을 끔직하게 아껴주던 주인집을 떠나 쥐를 잡아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신세가 된 미요는 한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결국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 만나게 된 생선가게 할머니를 통해 고양이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 미요에서 괭이로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승용차를 타고 미용실을 다니지도 않고 끼니 때마다 맛있는 치즈와 소세지를 먹을 수는 없지만, 자신을 소유물이 아닌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주인 할머니로 인해 비로소 정체성의 혼돈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괭이에게 남겨진 유산은 매일 먹을 수 있는 생선 한 마리!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괭이와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었다. 생선 한 마리가 부잣집 그 어느것들보다 모자라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언제인가부터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더 많이 들리고 그 의미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어 내 애완동물을 치장할 준비가 되어있기 보다,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준비된 이들에게만 좋은 반려동물도 존재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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