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누리야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1
양귀자 지음, 조광현 그림 / 살림어린이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소설가 양귀자씨에게 구구절절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어 왔다고 한다.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고의 작가 중 한사람인 양귀자씨가 지금껏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소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보낸 것 같아 마침내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할 때 즈음 두 번째 편지가 왔다고 한다.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는 그 내용을 나역시 궁금해 하며 읽어 내려갔다. 9살 누리가 19살 누리가 되기까지의 슬프고도 아픈 이야기,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 하는 이 글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이었다. 

 

 주인공 누리는 9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집을 나가고 만 어머니로 인해 고아가 되면서 기가막힌 인생 역정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시설로 보내지는 것이 싫어 10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19살이 되기까지 드라마같은 이야기들이 숨가쁘게 그려져있다. 10살 나이에 서울역이라는 곳에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무섭고 무서웠을지... 처음 찔레마을을 떠나올 때 그 당차고 용기있던 누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10살 소녀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었을지, 돌아가신 아빠는 또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을지 작고 여린 소녀의 슬픔가득 겁먹은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와 내 가슴을 방망이질 하기 시작했다. 그 아픔을 굳이 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져 와 뻐근하게 아파왔다. 이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 10살인데.. 그림움과 두려움에 사로 잡혀버린 누리의 모습과 내 어린시절이 아주 조금 오버랩 되면서 그렇게 한없이 가여운 마음으로 누리의 힘겨운 하루하루를 들여다 보았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명목하에 어린아이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냉면집 주인 할머니, 어린 아이들만 데려다가 지하에 감금하고 힘든 곡예연습을 시켜 밤업소에서 돈을 버는 인권유린의 현장, 그 모든 고생 끝에 공장에 취직되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던 누리가 그곳에서도 나쁜 사람들을 만나 상처만 받고 병원신세를 지는 것을 보면서, 몸은 고되지만 그나마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소박한 그 꿈마저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인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누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던 강자언니, 지옥같은 곡예단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아 주었던 밤 업소 종업원 영발오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비가 없어 퇴원을 못하고 있는 누리를 위해 도움을 주고, 혼자 지내시는 할아버지를 돌봐드리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의사 선생님.. 누리가 돌봐 드렸던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고 까다로운 성격에 누구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만들기 일쑤였지만, 누리 만큼은 그런 할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기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려 얼음장 같았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속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사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엄마는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남편잃은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엄마는 누리를 두고 나와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재혼해 두 아이까지 낳고 살았단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모습에 쉽게 엄마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고, 그 아이들을 역시 자신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누리... 고통의 터널을 지나 오면서 어른스러운 아이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볼 줄 아는 진정한 어른으로 자라있었다. 끝까지 자신의 아픔을 누르고 그 슬픔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힘으로 승화시키는 힘겨운 몸부림... 그게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루어야 할 꿈을 향하여 노력하고 착하게 살았던 누리에게 세상이 끝까지 절망만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란 누리의 모습은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었다. 문득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름의 누리들이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신음하고 아파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아이들이 내 주위에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리의 손을 잡아 주었던 강자언니, 영발오빠, 의사선생님, 할아버지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어른들은 그 책임을 갖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 품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내 새끼만 행복하면 되는 세상이 아니라 결국은 너와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임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이 내 자식만 아니면 된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살아가기를... 


 책을 읽고 이렇게 울어본게 얼마만인지, 눈이 아프도록 울었던 것 같다. 작가인 양귀자씨도 읽는 사람도 놀라게 만든 두 번째 편지 내용은 혹시나 이 책을 읽게 될 누군가를 위해 비밀에 부쳐야겠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갔지만,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라고 아빠가 지어 준 '나누리'라는 이름대로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을 누리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웃으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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