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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해리엇 ㅣ 거인문학 1
루이스 피츠허그 지음, 이선오 옮김 / 엘빅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바라보기, 또는 관찰한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어느 때 부터인지 주위 사람에게 무관심해지는가 싶더니 이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뭐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할 만큼 자신있진 않지만... 뭐 어쩌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 처럼 살고는 있지만 정말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본 결과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아닌 것 같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11살 소년인 줄 알았던 '해리엇 M. 웰치'는 작가를 꿈꾸는 여자아이였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겠다는 깜찍한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노트에 쓰기 시작하면서 탐정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등교길 집에서부터 동네 구석 구석 타켓을 삼은 대상이 있는 곳, 일명 탐정 경로를 거쳐야 학교에 가는 것이 해리엇에게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이다. 그렇게 탐정의 임무를 수행해 만들어 놓은 노트가 무려 수십권에 달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해리엇의 보물 1호가 바로 이 탐정 노트이다.
동네 사람들을 비롯해 학교 친구들에 대한 해리엇의 엉뚱발랄한 생각을 훔쳐보는 재미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노트 속의 다양한 인물들은 해리엇이라는 독특한 탐정의 손길에 의해 훔쳐보는 이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들도 눈에 띈다. '와, 골리 선생님이 언젠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골리 선생님이 이 사람들을 봤으면 좋겠다. 이 부부에게 아기가 있다면, 그 아기는 엄마 아빠를 늘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니 차라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게 나을 것 같다. 아이가 완벽하지 않다면 이 부부는 아이를 죽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완벽했더라면 따분해 죽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왜 하루 종일 허공만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걸까?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미치는 줄도 모르고 미쳐 버릴지 모른다.'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갖은 것을 자랑하기 좋아하지만 아기가 없는 이 부부에 대해 해리엇이 탐정 노트에 써 놓은 글이다. 11살 아이가 쓴 글 치고는 참 철학적이기까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생각이 어른들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어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는 걸 많이 경험했던 것도 같다. 이처럼 해리엇의 눈은 사람을 바라보고, 그 해리엇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절대 들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탐정 노트를 잃어버리고 불행히도 탐정놀이의 대상이었던 친구들 손에 넘어가고, 거기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것만 같았던 골리 선생님과의 이별을 겪으면서 해리엇은 깊은 절망과 시련을 겪게 된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까지도 자신을 따돌리고 오히려 입장이 뒤바뀌어 해리엇이 친구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친구들과의 갈등, 골리 선생님을 떠나게 만든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으로 인해 점점 변해만 가던 해리엇이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게 될 식탁위의 양파 역할을 연습하면서, 처음으로 이제껏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것이다.
예민한 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보니 해리엇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졌다. 문제아 같은 행동만 일삼는 바람에 심심찮게 학교에 불려가고, 집에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를 상대한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그냥 짐작만으로도 십분 공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해리엇의 부모님은 강압적이거나 아이 위에 군림하는 부모이기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처를 만져주며 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에 불려가는 것을 창피해 하기보다 선생님들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방법을 모색함으로, 아이가 다시금 자신감을 찾고 좋은 방향으로 재능을 표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낸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정말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가정교사 골리 선생님에 대한 마음은 끝까지 가슴에 무언가를 진하게 남겨 놓는다. 단호하고 무서워만 보이는 가정교사로 인해 해리엇이 스트레스좀 받겠구나 생각 했지만 오히려 해리엇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진정한 선생님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는 사람에게 단단한 마음의 빗장을 여는 아이들의 심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가 고민에 빠져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엄마인 나는 과연 골리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골리 선생님이 있건 없건, 내 인생은 멋있다."라고 외친 해리엇처럼 "이제 엄마가 있건 없건, 내 인생은 멋있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