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화제이지만 나는 선뜻 읽어보기가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을 ‘1Q84’ 이후로는 읽기를 멈추었다. 점점 이해하기가 힘들어지고 지겨워졌기 때문이었는데 그의 신작이 자꾸 언급되다 보니 은근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차에 한 북튜버가 그의 에세이가 소설보다는 좋다는 얘기를 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에세이나 산문집을 읽은 기억이 없다.

 

이 책은 20대 초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것인데 그런 만큼 가볍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의 소설과는 달리 유머가 가득하고 읽기 편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볍기만 하지는 않고 작가의 경험에 우러나온 조언, 견해등이 적절히 들어있어 단순한 재미로는 어딘가 허전한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p. 11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건 차치하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을, 자유롭고 즐겁게 줄줄 써나가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하고. 아니,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런 배짱이 생겼습니다.

 

p. 18 ‘여성은 화내고 싶은 건이 있어서 화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을 때가 있어서 화낸다

 

p. 23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p. 75 여행을 수없이 하다보면 약간의 철학이 생겨나는데, ‘편리한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불편해진다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p. 85 생각해보면 옷이라는 것은 소설가의 문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비판하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것이 내 말이고 이것이 내 문체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해서 비로소 마음속 무언가를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도, 세련된 표현도, 자신의 감각과 삶의 방식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다지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p. 87 선물을 잘 고르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것인데, 선물을 고를 때 에고가 드러나지 않는다.

 

p. 115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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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릿 애트우드의 책은 예전에 눈먼 암살자라는 소설을 잠깐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아서 중간에 반납했었다. 그런데 북투버들의 추천에 자꾸 이 책이 언급되고 새빨간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왜 낯익지? 나 언제 이 책 읽어본 적이 있던가? 계속 책 내용이 머릿속에 이미지화되어 떠올랐다. 미국에 있을 때 훌루에서 나온 드라마를 잠깐 봤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드라마의 우울한 분위기가 별로여서 잠깐 보고 말았던 것 같다.

 

이 소설이 완성된 게 1985년이라고 한다. 뒤에 해설을 보니 작가는 이란 여성들의 삶을 모티브로 삼아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담담한 사건 및 심리의 묘사가 처음에는 너무 건조한 듯했으나 읽을수록 그 매력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마치 현미를 씹어 먹을 때 처음에는 그 까끌함과 무미건조한 맛이 씹을수록 고소한 맛으로 바뀌어 가는 것과 같았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길리어드라는 사회는 여자에게는 물론 남자에게도 끔찍한 곳이다. 극단적인 종교주의적 독재국가이다. 이란과 북한과 중국등 모든 전체주의국가가 혼재되어있는 듯하다. 아니, 조선 시대도 생각났다. 조선의 씨받이라는 것이 읽는 내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 책의 후속편이라고 하는 증언들이라는 책도 빌려놨다. 15년 후의 이야기라는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분량이 꽤 되는 책이라 선뜻 시작은 못 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전쟁, 그로 인한 출생률의 급속한 저하로 인해 생식능력이 있는 여성들을 모아 권력은 있으나 자식이 없는 남자들에게 할당하여 아이를 낳게 하고 다시 다른 남자한테로 배당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현재 출산율의 저하가 사회적 이슈로 회자되고 있는 한국을 떠올리게도 되었다.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출산이 기피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꽤 기발하고 시사적이며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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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으로 단순하게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상간녀의 독백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연하의 유부남 러시아 외교관과의 2년간의 불륜을 그리고 있다. 읽기 초반에는 자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영 찜찜했지만 읽다 보니 주인공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공감(?)도 되는 것 같고 그렇다(가스라이팅인가, 미화인가)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너무나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주인공과 나를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작가가 느끼는 남녀간의 사랑, 욕정이 이렇게까지 중요한 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열정만으로 삶이 풍부해지고 활기차진다니 내가 뭐라 평가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불륜의 끝이 그리 좋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이라 여겨졌던 열정이 결국은 허망함을 남길 것이지만 그 끝을 알기에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할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여자아이의 기억과 이 책 두 권을 읽었는데 정말 솔직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고 그 점이 그의 특별함이란 생각이 든다.

 

 

p. 17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 22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p. 32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

 

p. 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p. 70 문학사에 따르면 자전적 예술이 이토록 확대된 것은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다. 우선 소위 거대 담론의 붕괴로 인해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한 것이 그 첫 번째 현상이라면, 이와 더불어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 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그 두 번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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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라는 작가는 생소하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처음 읽어본다. 이 작가는 모래에 대해 어찌 이리 많은 생각과 지식을 갖고 있을까? 일본인 작가라 소설 속 배경이 일본일거라 생각했는데 일본에 이런 지형이 있던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작가의 이력을 보니 만주에서 중학 시절까지 살았다고 한다.

 

사막, 모래가 주요 배경이 되고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2명이나 마찬가지인 그리고 특별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소설이지만 생각 거리는 많이 제공하는 꽤 괜찮은 소설이다.

 

1964년에 완성된 작품이라 여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드러나지만 그건 이 작가만의 문제는 아니며 시대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몰입에 크게 방해는 되지 않았다.

 

주인공이 모래구덩이에 납치되어 생판 모르는 여인과 매일 모래를 퍼 나르는 일과 섹스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되는 과정이 주요 내용인데 처음에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생활이 변화게 되는 것에 대해 황당함과 억울함등의 감정을 주인공과 같이 느끼다가 점점 모래 구덩이에서의 생활과 구덩이 위에서의 생활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된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자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은 모래 구덩이안에서나 위에서나 같고, 생계를 위하여 매일 규칙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것도 그 일의 종류만 다를 뿐 똑같으며 욕구를 채우거나 혹은 외로워서 섹스를 하는 것도 같은 거 아닌가? 그래서 결국엔 주인공도 모래 구덩이안에서의 삶을 인정하고 탈출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인 모래의 여자에 대해서는 어찌 해석을 해야 할까? 단 한마디의 대화로 그녀의 험난했던 모래구덩이 위에서의 삶을 표현한 작가의 탁월함에 찬사를 보낸다. 주인공이 결국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 여인인 것 같다. 자신을 보살펴 주고 희생하는 그녀에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움과 연민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p. 19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도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해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p. 80 풍경이 없으면 그나마 풍경화라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p. 90 없다고 곤란해질 일은 전혀 없다. 환상의 벽돌을 듬성듬성 쌓아 올린 환상의 탑이다. 하기야 없어서는 안 될 것들뿐이라면, 현실은 슬쩍 손도 댈 수 없는 위험한 유리 세공품이 되어버린다. ... 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

 

p. 136 서랍장 뒤에서, 시큼하게 썩은 낡은 걸레 ... 후회란 먼지를 덮어쓰고 돌아가는 경륜장 앞 큰길...

 

 

p. 151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쉼 없이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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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너무 책이 두껍다. 중단편의 sf소설을 묶어 놓은 것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뎠다. 중간중간 다른 책을 읽기도 했지만. 첫 번째 소설인 스페인의 거지들은 쉽게 읽혔지만, 그 후의 단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파악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그래서 집중이 안 된 것 같다.

 

이 책은 90년대 말에 쓰였는데 이 시기에는 유전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인가보다. 내용이 주로 유전자 조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소설인데도 어색함이 없다. 아마 과학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설 스페인의 거지들과 마지막 소설 허공에서 춤추다가 분량도 많고 주제의식도 명확히 드러나서 가장 좋았다.

 

스페인의 거지들에서는 혐오, 증오에 대한 새로운 생각 거리를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 혐오나 증오는 흑인, 성소수자, 유대인, 이민자등 약자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유전자 개량을 통해 우월한 신체와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 증오, 질시등이 보여진다. 자신들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미워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서 춤추다는 작가의 말처럼 유전공학, 신인류 탐색, 엄마 노릇의 함정이 주요 메시지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유전자 공학의 발달로 축구, 발레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특별한 신체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허용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경쟁과 성취라는 것이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현재에도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골칫거리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개량이 합법화 된다면 결국은 돈과 권력이 노력과 성실과 꾸준함 같은 고귀한 특성을 무력화하는데 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진행중이기긴 하지만....


p. 79 너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야. 진화에 있어서 단지 생존뿐 아니라 번성에 더 적합한 인류지. 네가 말한 증오의 대상들은 사회적 약자였어. 열등한 지위에 있었지. 하지만 넌 달라.

p. 95 ” ? 어째서 법을 준수하는 생산적인 인간이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고 준법정신도 없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야 할까? 우리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고 할 만한 철학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종교적인 근거가 있어?“

 

p. 146 거래는 항상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걸 놓치셨죠. 만약 스튜어트가 제게 무언가를 주고, 제가 스텔라에게 무언가를 주고,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우리에게 받은 것 덕분에 다른 사람이 된 스텔라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은 순환이에요. , 거래의 순환이죠. 모두는 계약으로 묶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예요. 말에게도 물고기가 필요할까요? 그럼요.

 

p. 402 모든 작가들은 적나라함과 난해함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씨름한다. 전형적인 행동, 상투적인 인물, 노골적인 설명으로 주제를 대놓고 명확하게 제시하면 독자들은 지나친데, 말이 너무 많지 않아?“라고 말한다. 말하려는 바를 교묘하고 간접적으로, 오직 상징과 암시를 통해서만 살짝 담으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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