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너무 책이 두껍다. 중단편의 sf소설을 묶어 놓은 것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뎠다. 중간중간 다른 책을 읽기도 했지만. 첫 번째 소설인 ‘스페인의 거지들’은 쉽게 읽혔지만, 그 후의 단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파악하기 힘든 것도 많았다. 그래서 집중이 안 된 것 같다.
이 책은 90년대 말에 쓰였는데 이 시기에는 유전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인가보다. 내용이 주로 유전자 조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소설인데도 어색함이 없다. 아마 과학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설 ‘스페인의 거지들’ 과 마지막 소설 ‘허공에서 춤추다’가 분량도 많고 주제의식도 명확히 드러나서 가장 좋았다.
‘스페인의 거지들’에서는 혐오, 증오에 대한 새로운 생각 거리를 갖게 되었다. 이제까지 혐오나 증오는 흑인, 성소수자, 유대인, 이민자등 약자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유전자 개량을 통해 우월한 신체와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 증오, 질시등이 보여진다. 자신들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미워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공에서 춤추다’는 작가의 말처럼 유전공학, 신인류 탐색, 엄마 노릇의 함정이 주요 메시지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유전자 공학의 발달로 축구, 발레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특별한 신체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허용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경쟁과 성취라는 것이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현재에도 금지 약물 복용이라는 골칫거리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개량이 합법화 된다면 결국은 돈과 권력이 노력과 성실과 꾸준함 같은 고귀한 특성을 무력화하는데 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진행중이기긴 하지만....
p. 79 너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야. 진화에 있어서 단지 생존뿐 아니라 번성에 더 적합한 인류지. 네가 말한 증오의 대상들은 사회적 약자였어. 열등한 지위에 있었지. 하지만 넌 달라.
p. 95 ” 왜? 어째서 법을 준수하는 생산적인 인간이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고 준법정신도 없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야 할까? 우리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고 할 만한 철학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종교적인 근거가 있어?“
p. 146 거래는 항상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걸 놓치셨죠. 만약 스튜어트가 제게 무언가를 주고, 제가 스텔라에게 무언가를 주고,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우리에게 받은 것 덕분에 다른 사람이 된 스텔라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은 순환이에요. 네, 거래의 순환이죠. 모두는 계약으로 묶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예요. 말에게도 물고기가 필요할까요? 그럼요.
p. 402 모든 작가들은 적나라함과 난해함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씨름한다. 전형적인 행동, 상투적인 인물, 노골적인 설명으로 주제를 대놓고 명확하게 제시하면 독자들은 ”지나친데, 말이 너무 많지 않아?“라고 말한다. 말하려는 바를 교묘하고 간접적으로, 오직 상징과 암시를 통해서만 살짝 담으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