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으로 단순하게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상간녀의 독백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연하의 유부남 러시아 외교관과의 2년간의 불륜을 그리고 있다. 읽기 초반에는 자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영 찜찜했지만 읽다 보니 주인공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공감(?)도 되는 것 같고 그렇다(가스라이팅인가, 미화인가)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너무나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주인공과 나를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작가가 느끼는 남녀간의 사랑, 욕정이 이렇게까지 중요한 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열정만으로 삶이 풍부해지고 활기차진다니 내가 뭐라 평가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불륜의 끝이 그리 좋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이라 여겨졌던 열정이 결국은 허망함을 남길 것이지만 그 끝을 알기에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할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여자아이의 기억과 이 책 두 권을 읽었는데 정말 솔직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고 그 점이 그의 특별함이란 생각이 든다.

 

 

p. 17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 22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p. 32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

 

p. 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p. 70 문학사에 따르면 자전적 예술이 이토록 확대된 것은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다. 우선 소위 거대 담론의 붕괴로 인해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한 것이 그 첫 번째 현상이라면, 이와 더불어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 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그 두 번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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