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보라는 작가는 생소하다. 당연히 그의 작품도 처음 읽어본다. 이 작가는 모래에 대해 어찌 이리 많은 생각과 지식을 갖고 있을까? 일본인 작가라 소설 속 배경이 일본일거라 생각했는데 일본에 이런 지형이 있던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작가의 이력을 보니 만주에서 중학 시절까지 살았다고 한다.

 

사막, 모래가 주요 배경이 되고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2명이나 마찬가지인 그리고 특별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소설이지만 생각 거리는 많이 제공하는 꽤 괜찮은 소설이다.

 

1964년에 완성된 작품이라 여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드러나지만 그건 이 작가만의 문제는 아니며 시대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몰입에 크게 방해는 되지 않았다.

 

주인공이 모래구덩이에 납치되어 생판 모르는 여인과 매일 모래를 퍼 나르는 일과 섹스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고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되는 과정이 주요 내용인데 처음에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생활이 변화게 되는 것에 대해 황당함과 억울함등의 감정을 주인공과 같이 느끼다가 점점 모래 구덩이에서의 생활과 구덩이 위에서의 생활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된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자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은 모래 구덩이안에서나 위에서나 같고, 생계를 위하여 매일 규칙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것도 그 일의 종류만 다를 뿐 똑같으며 욕구를 채우거나 혹은 외로워서 섹스를 하는 것도 같은 거 아닌가? 그래서 결국엔 주인공도 모래 구덩이안에서의 삶을 인정하고 탈출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인 모래의 여자에 대해서는 어찌 해석을 해야 할까? 단 한마디의 대화로 그녀의 험난했던 모래구덩이 위에서의 삶을 표현한 작가의 탁월함에 찬사를 보낸다. 주인공이 결국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 여인인 것 같다. 자신을 보살펴 주고 희생하는 그녀에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움과 연민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p. 19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도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해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p. 80 풍경이 없으면 그나마 풍경화라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p. 90 없다고 곤란해질 일은 전혀 없다. 환상의 벽돌을 듬성듬성 쌓아 올린 환상의 탑이다. 하기야 없어서는 안 될 것들뿐이라면, 현실은 슬쩍 손도 댈 수 없는 위험한 유리 세공품이 되어버린다. ... 요컨대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에 컴퍼스의 중심을 두는 것이다.

 

p. 136 서랍장 뒤에서, 시큼하게 썩은 낡은 걸레 ... 후회란 먼지를 덮어쓰고 돌아가는 경륜장 앞 큰길...

 

 

p. 151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쉼 없이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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