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예약을 건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요즘 핫 한 책이다. 송길영이라는 저자는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유투브에 관련 영상이 많이 있는 걸 보니 이분도 핫 한 분인가 보다.

 

현재와 다가올 미래사회에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 적합한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일, 나이듦,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등의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다. 좀 산만한 듯해서 저자의 주장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단어들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꽤 많이 나오고 문장도 명쾌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는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각각의 세대가 느끼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짚어주고 나름대로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50대 초반의 전업주부인 나는 직업과 일, 사회생활 부분에서 겁이 덜컥 났다. 206년간의 직장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딴 세상 얘기 같고 책에서 묘사한 핵개인은 왠지 첨단의 IT 기술을 탑재한 만능 인간이 되어야 제대로 된 밥벌이가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듦과 효도 부분은 내가 생각해 오던 것과 거의 유사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세상이 변해 가던 늙어가는 인간인 나는 완고함이 스며들지 않도록 열심히 독서 하고 사색하고 성찰하는 삶의 태도를 굳건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p. 51 국경의 문화적 윤곽이 희미해질수록 더 디테일한 구별짓기체계가 생겨난 셈입니다. 유니버스는 다층화되고 세계관은 넓어지는데 물리적 공간의 구별 짓기는 더욱 세세하게 심화되고 있으니, 인간의 모순성이 새삼 피부로 느껴집니다.

 

p. 57 은연중에 계층화에 익숙해지고 특권 의식까지 갖게 된다면 세상 구석구석을 채운 다른 가치들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나는 노력했으니까 드러낼 수 있다라는 인식이 바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함정입니다. 능력주의, 다시 말해 나는 스스로 노력해서 획득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p. 61 칭찬은 개인에게 해야 하고 책임은 같이 져야 합니다. 칭찬은 집단으로 받고 책임은 개인이 지는 구조에서는 먼저 나서는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p. 85 관행적 표현과 차별적 인식을 형성할 수 있는 언어를 새로운 표현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익숙한 표현일지라도 변화한 사회에 맞추어 낯설게 바라보고 세심하게 언어를 재정의할수록 계속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p. 91 그런데 만약 파는 것의 본질이 시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대체되었다면, 시간이 아니라 지능을 판다면 개인은 언제 어디에 있어도 무방합니다. 더 이상 시간과 장소가 중요한 변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p. 95 나의 성장과 공동체의 공감, 다시 말해 사회적 기여가 동반되는 일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p. 104 로봇의 핵심은 물리적, 정서적 행위의 자동화입니다. AI의 핵심은 지능적, 창조적 활동의 자동화입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적 활동, 지능적 활동, 육체적 활동, 정서적 활동 그 모든 영역에서 로봇, AI와 함께하게 될 운명입니다.

 

p. 126 어떤 경우든 직관적인 착상을 논리적인 전개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역량, 즉 언어 능력이 인간이 아닌 지능 개체와 협업하는 데 소중한 자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p. 158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시작점을 자꾸 목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대학은 진지한 고민의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목표점이자 종료 지점으로 착각한다면, 대학 입학을 결승선으로 인식하고 진학을 준비한 사람들은 입학 후 그것이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허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p. 173 낭비 없는 촘촘한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이 일을 시작할 때와 진행할 때 필터링피드백을 매우 정교하게 합니다. 필터링은 모든 업무를 현상 그대로 수용하여 관성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체로 거르듯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과정입니다. 피드백은 변화가 발생하게 된 동인들을 함께 돌아본 후에 새로운 방안을 수립해 보는 것입니다. ‘필터링피드백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세상의 복잡성을 빠르게 이해하고 일의 전체 맥락을 모두 검토해야만 일의 혁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 175 자율성의 기반이 없는 개인은 매우 위험합니다. 의존적인 사람은 나와 상대의 관계가 항구적일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p.182 새로운 세대들이 보상에 대해서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회사와의 협상에 유리한 고지에 서고 싶다는 전략적 야심과 동시에 조직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 납득할 만한 명분을 만들어달라는 간절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p. 191 소속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명성이 조직보다 더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p. 202 직장인에게 소속감과 명분은 사실 돈보다 더 근본적인 동기부여입니다. 자신의 일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대의명분이 빈약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성장한다는 서사가 희미할 때, 숫자의 무한 비교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숫자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흡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p. 220 건전한 부모 자식 관계는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거절당한 후 상처받지 않는 상호 신뢰막역함또한 이러한 관계의 선행조건입니다.

 

p. 236 고마워하는 것은 인간된 도리이나, 미안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라는 마음의 신호입니다.

 

p. 240 나이듦을 판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완고함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동기와 의지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낯선 것을 수용하려는 적극성이 줄어듭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p. 243 ‘어르신은 정부 기관에서 공적 지원의 대상자를 높여 부르는 표현입니다. 공무원들이 노인에게 관련 정책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사회적 예우를 담은 표현임에도 약자성이 포함되어 있어서 일상에서 쓰면 노인들은 묘하게 기분 나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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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녀 이야기가 1985년에 나왔고 이책은 2019년에 나왔으니 거의 35년만이다. 

리디아 아주머니, 아그네스, 니콜 이 세여자의 증언의 형태로 소설은 전개된다. 시녀 이야기가 길리어드의 기이하고 전체주의적 상황하에서의 여자들의 고난을 그렸다면 이 책은 길리어드의 부패와 범죄, 모순을 여성의 힘으로 깨부수는 내용이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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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유년은 어쩌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 같다. 너무나 미약하여 세상의 전부이자 의지처인 유년시절의 가정은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너무나 커다란 흔적을 남기지만 그 중요성을 인지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혹 알더라도 실제로는 이상적인 유년시절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유년이 마냥 행복한 순간이었던 사람이 있을까? 인생 자체가 고난의 연속인데, 자신의 의지가 아닌 100% 타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유년시절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시기일 것이다.

유년의 행복감, 트라우마, 슬픔등을 잘 다독여 한 생을 살아 나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이의 유년은 엄마의 부재와 있으나 마나 한 어린 아빠, 엄마를 대신했던 할머니와 고모, 아빠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인 어린 새엄마, 친구이지만 친구임을 알릴 수 없었던 루비, 그리고 무한한 사랑의 대상 학자로 이루어진다.

 

시인이 풀어내는 소설은 문장이 모두 시이다. 시인 특유의 깊은 감수성으로 풀어내는 서사와 서정은 독자를 몇십년 전의 각자의 유년으로 돌려놓는다. 그 속에서 여름이와 같이 울고, 화내고, 삐치고, 웃는다. 저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표면으로 올라와 정화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내 유년시절의 상처가 치료되는 듯하다.

 

작가의 말대로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유년시절의 나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다가도 문득문득 그때가 생각나면 아득해진다. 죽을 때까지 잘 보듬고 다독이며 살아야 하는 내 안의 어린아이이다. 이런 좋은 소설들을 또다시 만나면 그 어린아이는 행복하리다.

 

 

p. 12 나는 누군가에 의해 자주 들어올려지고, 불려다녔다. 얼굴이 다 닳은 이파리처럼, 일찍이 시들어 있었다.

 

p. 29 나는 시든 화초처럼 의기소침해져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들고, 공책을 들고,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응달로 들어간다. 쪼그려 앉아 부업을 하는 사람처럼, 그 짓을 해야 한다.

 

p. 37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땐 눕는다. 누우면 눈물이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눈물은 기어코 흘러나와 귓속으로 들어간다. 눈과 귀는 이어져 있다. 눈이 내미는 것을 귀가 받고, 귀가 받아들이는 것을 눈이 밀어낸다.

 

p. 39 기도의 본질은 약한 척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일, 당신이 나를 돌본다면 나 역시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겠다는 서약도 포함된다.

 

p. 63 방 한가운데 불시착한 분홍 뗏목처럼 침대가 놓여 있었다.

 

p. 69 우리에겐 아빠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더하거나 빼기가 쉬웠다. 통분이 필요 없는 관계랄까. 더하기 빼기를 결정하는 건 언제나 아빠였는데, 내 생각에 아빠의 몸은 새엄마에게 더해지고 마음은 주로 내게 더해졌던 것 같다.

p. 80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건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p. 93 할머니는 변하지 않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p. 94 무언가를 들키는 순간 어른들은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거나 고개를 파묻고 싶어 하고, 어느 때는 울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들을 돌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르는 척하기뿐이었다.

 

p. 111 새엄마는 무감했고, 무감하다는 건 곧 무력하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p. 127 세면대에서 피 묻은 속옷을 빨고 있으니 실패한 살인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부러 생리와 살인을 연상해본 건 아니었다. 찬물로 피를 빼내는 동안 세면대 위로 피가 튀고, 피 특유의 쇠 냄새가 나고, 두 손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기어이 피를 없애는 데 성공하는, 이 일련의 과정으로 한 생각이었다. 소량의 죄의식, 수치심, 흥분, 두려움, 살기, 지겨움, 피 묻은 속옷을 빨 때마다 이 복잡한 감정들이 동일하게도착했다. 초경 이후로 내내, 빠짐없이 그랬다. 세면대 앞에서 실패를 지우는 실패의 기록.

 

p.138 겁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 나쁜 건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은 대부분 겁이 많다. 그들의 나쁨을 파헤쳐보면, 그러니까 그 끝의 끝까지 추적해보면 결국 겁이 나타난다. 돈 때문에 나빠진 사람은 가난을 겁내고, 사랑 때문에 나빠진 사람은 가난을 겁내고, 권력을 손에 쥐고 나빠진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걸 겁낸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다 나빠진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도 미움을 당할까봐 겁낸다.

 

p. 149 책은 이 집에서 가면이었다. 들고 있으면 본질을 숨기고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다.

 

p. 160 허영의 뒷모습은 외로움이다.

 

p. 165 누가 행복을 말할 땐, 알아달라는 거니까요. 그 밖에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누가 행복을 말할 때 제일 바보 같은 짓은 나도 행복하다며, 제 행복을 들이미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을 논하는 걸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p. 208 죽음은 억울하게 들이닥친다. 그게 금붕어일지라도 쉬운 죽음은 없다. 쉬운 건 언제나 모르는 자, 모르고 싶은 자, 몰라도 상관없는 자들이다.

 

p. 261 어릴 때는 세상이 한 장의 돗자리같이 보였다. 작은 바람에도 내가 앉은 자리가 날아갈 것 같았다. 신발을 고쳐 신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세상이 묵직한 돌로 눌러놓은 마음 한 장 같다. 겨우 돌이지만, 돌에게 의지해 살아가야 할지 않을까.

 

p. 262 ‘유년이라는, 벗을 수 없는 옷을 입은 채 커버린 사람곁에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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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것을 여러번 보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분량이 적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에브리맨은 보통 사람이란 뜻이란다.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 시작하여 어린 시절부터 70대 초반에 죽을 때까지 여러번의 수술을 받고 노쇠해 가는 과정중에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의 건장하고 매력적인 외모와 능력을 갖고 있던, 그리고 시대도 다른 한 남자의 삶이라 한국의 평범한 여자인 내가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소재는 시대와 장소, 인종등을 초월하는 주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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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구로 책축제에 참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이주하는 인류트러스트중 이 책을 11월 삼목회 토론 도서로 정해 읽었다. ‘채권파트의 첫 부분이 주식을 포함한 금융과 한 가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여서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스타일이 익숙해지다보니 의외로 재미있고 빠르게 읽혔다. 아마 강릉 방문 3일간 다 읽은 것 같다

 

라쇼몽식으로 서술된 책이라는 소개를 봐서 참신한 구성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소설, 회고록 초안, 회고록 집필과정, 일기라는 네 가지 형식으로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다르게 그리고 있는지가 이 책의 재미 포인트라고 하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자본과 투기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본과 투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본가는 자본이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자본 스스로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확대, 재생산해 간다는 것이다. 자본의 확대, 재생산에 대한 것은 들어봤지만 자본가가 그가(혹은 그가 가진 자본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물과 인간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는 섬뜩했다.

 

또한 앤드루 베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의 송중기와 그 가족들이 대표하는 재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이 투자를 하고 돈을 버는 이유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무엇을 사고 싶다거나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동기에서가 아니라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미 부족한 것이 없으므로) 그냥 돈을 벌 수가 있으니까, 자신이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궁금하니까, 혹은 그냥 게임 같은 것의 다름 아닌 듯 했다. 재벌이 아닌 나는 그들이 참 신기했다.

 

p. 23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치란 천박한 부담이었다.

 

p. 24 투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벤저민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과 멀어졌다. 그는 단 한 장의 지폐도 만질 필요가 없었으며, 자신의 거래로 영향을 받는 사물이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자본이라는 살아 있는 생물이 움직이기 시작해 아름다운 패턴을 그리며 점점 더 추상적인 영역으로 들어갔다.

 

p. 23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p. 201 모든 인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삐걱거리다 멈추게 하는 소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다음번의 강력한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사건들의 결과로 혜택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그 사건들 사이의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처럼 결정적인 상황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늘 성공을 거둘 필요는 없다. 패배에도 위대한 영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어야 한다.

 

p. 267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p. 305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이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p. 386 너무도 호화롭게 느껴진 것은 공적인 장소에서 이토록 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기이한 역설이었다 이런 느낌은 갑자기 손댈 수 없고 약점도 없는 존재가 된 듯한 환상, 혹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이 도시 전체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공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p. 432 키치. 이 단어의 적절한 영어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원본과 가깝다는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머지 그런 유사성에 창의성 자체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본.

 

p. 483 대단히 유창한 언변과 시끄러운 확성기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나의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은 확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것이다. (중략).. 인간은 죽으면서 공동체의 소유물이 된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삶에 관한 텍스트는 그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를 만들고 향유한 사람들에 관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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