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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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끔찍한 아우슈비츠의 사진을 보지 못하거나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어보지 못한 어린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배우며 자란다. 그러나 난징의 강간에 대해 물어보면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 심지어 최고학부를 마친 지식인들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70년 전 난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282쪽)

 

부끄럽게도, 나도 그 '대부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난징대학살에 대해 몇 차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리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기억도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 첫 페이지에 있던 문장들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

"대학살을 잊는 것은 두 번 째 학살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노벨문학상 수상자, 엘리 위젤)"

몸서리쳐진다. 질서정연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마음편히 이 책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저자 아이리스 장에게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은, 이 잊혀진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를 결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저자는 소녀 시절부터 일본인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듣고 자랐다고 한다. 수년간의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저자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건너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중일전쟁의 악몽을 잊지 못했고, 그녀가 그 사건에 대해 잊지 않기를, 특히 난징의 강간에 대해 기억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읽는 것도 마음이 고통스러운 이 책을 쓰는 과정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을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리스 장은 자신의 이 책이 '난징에 남아 있는 수십만 개의 주인 모를 무덤에 바치는 묘비병인 셈'(313~314쪽)이라고 말한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난징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찾아내고 수많은 증언자들을 추적하여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발굴해낸 고통스러운 소재들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우울증에 걸려 한동안 입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큰 주목을 받자 일본 극우세력들의 끈질긴 협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안타까움에 마음이 저릴 뿐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여러 차례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해야 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만행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했다.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이런 짓들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학살에 대한 증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이리스 장이 '닫는 글'에서 '난징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교훈 중 하나는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종잇장처럼 얇다는 사실이다'(314쪽)라고 단정지은 것이 정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리스 장이 발굴해낸 진실은 난징대학살의 잔학성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세계에 걸쳐 학살의 기록을 찾아다니면서 당시 목숢을 걸고 일본에 대항헤 수십만 명의 중국인들을 살려낸 몇몇 영웅들의 삶을 찾아내었다. 대학살 기간 동안 국제위원회를 구성하여 난징안전지대를 만든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기적처럼 들렸다. 그런 지옥 속에서도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그들은 외국인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그 참혹한 난징을 떠나서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다. 난징의 중국인들에게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나치당원 존 라베,  난징대학살 기간 동안 난징에 남아있었던 유일한 외과의사로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사람들을 치료했던 로버트 윌슨, 일본군으로부터 수많은 여성들을 보호했던 용기로 '난징의 살아 있는 여신'이라 불렸던 미니 보트린... 하지만 폭력과 공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애를 보여준 이들이 치러야만 했던 대가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들은 중국에서는 불명예스럽게 추방되었고, 모국에서는 조사받고 배척당했으며, 치유하기 힘든 정신과 육체의 상처로 인해 자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아이리스 장은 이 책을 쓰면서, 역사뿐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난징대학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징의 강간은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십대들의 천성을 변질시켜 그들을 살인 병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이 사건은 잘 설명해준다. 두 번째로 난징의 강간은 민족 학살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중략)... 세 번째 교훈은 가장 비참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대량 학살을 받아들였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방관자기 되었다."(314쪽~315쪽)

 

지금도 일본의 역사 왜곡 망언은 계속되고 있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본의 침략 전쟁이 신성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런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비참한 세 번째 교훈,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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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세계사
사토 요우이치로 지음, 김치영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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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낭여행을 갔을 때, 흔히 '안남미'라 불리는 인디카로 만든 볶음밥을 처음 맛보았던 날을 기억한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찰친 밥 대신, 길쭉하고 퍼석퍼석한 쌀알을 씹을 때 느껴지던 그 생소한 느낌을. "밥알이 풀풀 도망가니까 꼭 잡고 먹어야겠다"라고 농담도 하면서, 내가 그제껏 당연히 쌀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였던 그 쌀이, 사실 수많은 쌀의 품종 중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었다.

 

이 책의 저자 사토 요우이치로는 유전학 연구자로, 벼 등 작물의 기원과 절차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아시아 각 지역을 직접 발로 뛰며 벼의 원종인 야셩벼와 오래된 품종을 조사한 현장연구의 기록이 이 책이다.

"현장연구를 계속하는 동안에 벼를 유전학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각지의 쌀의 종류와 요리의 소재로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리가 취미여서 각지에서 먹은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귀국한 후에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쌀의 종류와 재배 및 조리방법, 먹는 법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다."(6쪽)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현장연구를 하는 동안 저자가 얼마나 행복해했을지를 알 수 있다. 아시아 각 지역의 쌀의 종류와 재배방식, 조리방식의 다양한 모습과 차이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연구하면서 그가 느꼈던 감동이 내게도 오롯이 전해져온다. 역시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무엇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경이를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 1만 년 전 평범한 풀 중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선택된 일부 씨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재배되어 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방법과 아이디어로 말이다."(7쪽)

 

이렇게,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진지한 애정을 품은 이의 여정을 좇으면서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열대몬순 지역의 삶은 쌀요리, 태국의 볶음밥 카오팟, 라오스의 카오람(대나무통 찹쌀밥), 베트남의 튀긴 떡, 조린 돼지고기가 든 대만의 찹쌀떡, 또 쌀로 만든 다양한 술들... 각국의 다양한 쌀 요리들을 둘러보면서 어떤 맛일까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고(요리사진이 흑백인 점이 아쉬웠다, 뭐 요리책이 아니긴 하지만~^^;), 여러 종류의 쌀과 쌀로 만든 요리가 그 지역의 풍토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즐겁게 읽었다.

 

새롭게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도 많다. 나는 이제껏 "온대의 쌀=아밀로스 함량이 적은 쌀"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온대에도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품종이 재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즉 재배 품종이 꼭 기후와 관련이 있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토우보시' 또는 '타이토우 고메'라 불리는 인디카의 퍼석퍼석한 쌀이 재배된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퍼석퍼석한 토우보시는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물을 많이 넣고 지으면 밥 양이 늘어나 일시적으로 만복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가난한 농민들이 주로 지었다고 한다. 즉 상대적으로 맛이 없었기 때문에 연공미가 되지 못했지만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양식이 되는 귀중한 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연공을 많이 거두려고 하는 막부와 번의 입장에서는 곤란했으므로(무자비한 것들!) 에도시대에는 재배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단다.

"즉 타이토우 고메라는 퍼석퍼석한 쌀을 받아들인 것도, 밀어낸 것도 무두 일본의 식문화가 초래한 것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퍼석퍼석한 쌀, 찰기가 있는 쌀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은 기후 등 자연조건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식문화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111쪽)

 

그 밖에도 몇몇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저자, 라오스 북부의 루앙남타 마을 부근을 조사하고 있을 때 길을 가던 아이들이 길가의 벼이삭을 뽑아내어 쌀알을 비틀어 따서 후루룩 마시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당장 차를 멈추고 인터뷰하니, 아이들은 수확까지 보름 정도 남은 시기의 찹쌀은 달고 우유향이 난다고 말한다. 역시 연구자답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쌀알의 주성분은 전분이고 전분은 잎에서 광합성에 의해 만들어지는데(나도 초등학교 때 배운 기억을 열심히 되살려본다^^;), 물에 녹지 않는 전분이 어떻게 잎에서 쌀알로 운반되는지를 궁금해하고 결국 이유를 찾아낸다. 암튼 유숙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쌀은 아이들뿐 아니라 참새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참새도 맛있는 것을 알아본다!).

 

앞으로는 늘 대하는 밥상의 쌀을 좀 더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인류가 재배하고 수확한 쌀을 먹게 된 후 지나온 1만 년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쌀은 수없이 그 모습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전 세계로 퍼지고, 끊임없이 다양한 품종과 문화를 성장시켜왔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우리의 주식이면서 우리나라 식량 중 유일하게 자급률이 100% 가까이되는 쌀, 하지만 식생활 습관의 변화로 인해서 쌀 소비량이 많이 줄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밥을 먹는 것보다 더 간편하고 더 특별한 음식을 찾게 되는 풍경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쌀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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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 옥스퍼드 써니 할머니의 유쾌한 인생조언
김성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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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혹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일을 벌여야만 설렘을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쉽사리 싫증을 느끼고, 숨막히는 수레바퀴의 삶이 아니냐며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똑같아 보이는, 반복되는 일상에도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성공도, 행복도, 야망도, 성장도 바로 그곳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236~237쪽)

 

처음에는 책날개에 써 있는 저자의 화려한 이력에 뭔가 주눅(?)이 들면서 책을 폈다. 오십이라는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에서 아들딸 같은 친구들과 공부하며 석,박사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를 떠난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전하고자 지식 공유 프로그램인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의 대표를 맡아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바쁘게 살고 있다니... 뭐랄까, 나와 처음부터 다른 종류의 세계에 속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처음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다. 그러면서 한편 따뜻하게, 힘차게 격려받는 기분이다. '써니 할머니'의 이글이글 태양같은 에너지에 전염된 것일까, 가슴이 뜨거워진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이 한 수(?) 전해주겠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손자손녀가 후회없이 삶을 즐기기를 바라는 다정한 할머니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Life is wonderful!"을 외치며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할머니, 노상 버킷리스트만 찾기보다(앗, 찔려라...^^;)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버킷리스트로 만든다면 더더욱 인생은 살 만해진다고 전해주는 '써니 할머니', 멋져요!

 

"나이가 들어 인생을 굽이굽이 돌아보며 무슨 일이든 안 될 건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다만 내가 안 했을 뿐이다. 내가 놓쳐버린 선택지들은, 내가 가지 못한 길들은 단지 내가 택하지 않았을 뿐이고, 가보려고 용기 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놓쳐버린 것과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을 갖진 말자. 어차피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모든 길을 갈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니까. 대신 가진 것과 가본 길에 더 큰 애정을 쏟자. 내가 가본 길이, 지금 내가 걷는 길이 더 아름답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247쪽)

 

'나도 나이 들어서 이런 모습이 되고 싶어', 이런 바람을 진심으로 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써니 할머니는 많은 이들이 가지 못한 길만을 동경하고, 가려 하는 길 앞에서는 망설이는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내일은 허상이며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인 것을, 자신의 삶의 여정과 옥스퍼드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말해준다.

'단언컨대, 가본 길이 아름답다'는 것,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이고 인생의 특별한 기회는 평범한 하루에서 시작된다는 것, 평범한 하루를 소중히 받아들이고 특별하게 만들려는 노력 앞에서 인생은 특별하게 흘러간다는 것... 사실 모르고 있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평범한 내 하루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왔던 거다. 가지 못한 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곁눈질하던 버릇, 기억 속에 꽉꽉 새겨놓았던 '놓쳐버린 기회의 장면'을 계속해서 리플레이하던 일들도 이젠 훌훌 놓아줘야겠다. 써니 할머니의 이야기대로, 시간이란 놈은 내가 어루만지고 가까이 두어야 내 것이 되는 거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두기만 해선 안 된다고, 시작할 게 있으면 지금 시작하라는 할머니의 진심어린 조언을 꼭꼭 기억해야겠다. 즐겨야 할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써니 할머니, 고마워요.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전세계에 지식을 전하고, 멋지게 춤추시며 '어제보다 나은, 어제보다 예쁜 오늘'을 사시기를. 그래서 그 따뜻한 에너지를 마음껏 나눠주세요. 저도 오늘처럼, 기꺼이 그 에너지에 신나게 전염되어 제 오늘을 소중하게, 행복하게 채워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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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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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던가. 삶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처음 떠올리기 시작했던 때가. 뭐 시작이 언제였는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한창 그 질문들 속에서 신나게(?)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운 좋게도 그때 카뮈를 알게 되었다. 내게 처음 카뮈를 소개시켜주신 분이고 잿빛 고교시절에 빛(!)을 주셨던 선생님이 건네주셨던 <시지프 신화>의 반들반들했던 표지. 소중히 받아안고 와서 책을 열었을 때 그 유명한 첫 문장,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렬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아무튼 첫 마음이랄까, 나에겐 '시지프'가 정겹고 익숙한 느낌이다. 시시포스... 아직 입에 겉돈다^^;)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이 번역되었다는 연암서가의 <시시포스 신화>,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부조리는 인지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의 열정, 온갖 열정들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열정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열정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일, 마음을 열광케 하면서도 동시에 불살라 버리고 마는 이 열정의 심오한 법칙을 과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일, 이것이 바로 문제의 요체다. (46쪽)'

 

어렸을 때(?)와 지금 읽는 시시포스는 다소 느낌이 다르다(당연한 얘기겠지만^^;). 뭐랄까, 더 아프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부조리한 삶에 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바위를 오늘도 밀고 가는 시시포스를 예전에는 경이로워하고 감탄하며 바라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삶이 비참하게 여겨질지라도 끝내 끌어안는 그 운명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지금도 그 큰 틀은 변함없다. 하지만 지금은 시시포스가 치렀던 그 운명애의 대가에 대해서, 더 생각한다.

부조리는 인지되는 그 순간부터, '온갖 열정들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열정'이 된다는, 그 문장을 여러번 곱씹어 읽었다. 우리가 보통 '열정'이란 단어 앞에 붙이는 형용사는 뜨거운, 강한, 눈부신... 뭐 이런 것들인데, '비통한' 열정이라고 한다. 비통하게, 비통하지만, 비통을 삼키면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한다는 것.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를, 그를 위해 치른 대가가 얼마만한 것이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부조리한 영웅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자신의 고뇌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느낀 온갖 정념들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멸시, 죽음에 대한 그의 증오, 삶에 바쳐진 그의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는 일에 온 존재를 다 바쳐야만 하는 저 형용할 길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다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 대한 열정들 때문에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였던 셈이다. (203쪽)'

 

역시 쉽게 설렁설렁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이건 어렸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군). 읽다가 멈춰서 이게 무슨 뜻일까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끈적끈적 혼란스럽고, 때로는 한 구절이 무척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서, 이런 고민과 혼란스러움까지도 기쁘고 고맙다. 이렇게 모든 것이 휙휙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 시대에, '잘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만 하면 돼요'식의 간단한 처방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카뮈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시시포스처럼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 그 '비통한 열정'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밀어갈 것인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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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마이클 해링턴 지음, 김경락 옮김, 김민웅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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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날부터 곧장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나에게 책을 쓸 동안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11쪽, 서문에서)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느날 갑자기 통보받는다면? 어렸을 때부터(그때는 제법 심각했다-_-;) 가끔 상상했던 일이다. 보통은 그럴때, 자기에게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를 비관하거나 그렇게 되지 않나? 하지만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저술가 마이클 해링턴은 단 하루도 허비하지 않고 '곧장'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는 그의 유작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암 투병의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한 자 한 자 써내려갔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엇이, 어떤 힘이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그에게 끝까지 이 책을 쓰게 했을까? 자신이 눈을 감은 이후의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변화가 일어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하게 만들었으리라.

 

그가 사회주의 활동가로서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더 숨길 수 없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이 시대에, 사회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희망에 대한 것이다.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망' 말이다. 냉전체제가 몰락하고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는 그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실패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지를, 그 실패의 경험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의 내용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술술 잘 흡수된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자 마이클 해링턴이 실무와 이론 모두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사상가로서 논리적이고 정교한 분석과,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함께 녹아있는 글이라고 느꼈다.

사회주의 운동가이면서, 저자는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먼저 사회주의 자체에 들이댄다. 사회주의가 왜 20세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근본적으로 해부한다. 마르크스로부터 시작했던 사회주의의 역사를 통찰하며 초기 사회주의가 가졌던 모호함과 오류를, 가짜 사회주의가 난립했던 어두웠던 역사를,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예견하지 못했던 부분들과 그 결과들을 샅샅이 드러낸다.

그는 왜 이런 자아비판(?), 아니 사회주의 비판을 했을까. 이것은 역설적으로, 사회주의가 그런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우리가 딛고 선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우리가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단순한 얘기지만 세상은 절대로, 한번에 급진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급진적으로 확 모든 걸 바꾸려고 하면 꼭 그르치게 된다는 것도^^;). 마치 어린시절에 꿈꿨듯, 어느날 자유와 정의를 이룰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체제로 확 바뀌는 일은 없다는 것. 사회주의는 분명히 실패했지만,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그 실패를 거름으로 써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이클 해링턴이 암 투병을 견디면서 이 유고를 남겨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지난 백여 년간, 사회주의의 패배와 배신은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회주의는 지금까지의  패배와 배신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사회주의란 인류의 가장 고귀하고 유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허상에 불과한 이념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주의의 강령은 아마도 조직적인 부자유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교훈을 얻는다면, 사회주의는 자유와 연대, 정의를 이룰수 있는 체제가 될 것이다.'(408~409쪽)

 

이 책을 품고 다녔던 일주일 동안 무척 행복했다. 내내 가슴이 벅찼다. 머릿속에 생각 뭉치들이 흩어지고 뭉치고를 반복하면서,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자유롭게 상상해보기도 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천천히 그러나 결국은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자는'(9쪽) 그의 사회주의적 공화주의를 생각하며 내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즐겁게 고민해보기도 했다(내공이 얕아서 서평을 이렇게 헐렁하게 쓴 것이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힘을 짜낸 마이클 해링턴과 성실하게 번역한 역자의 노고, 모두 감사하다. 감수자의 말대로, 마이클 해링턴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주제를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차차 변화를 일으켜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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