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 세계를 뒤흔든 교황, 그 뜨거운 가슴의 비밀
김은식 지음, 이윤엽 그림 / 이상한도서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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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우리가 선물받았던 치유와 희망의 여운이 가슴에 아직 훈훈하게 남아있는 것을 느끼며 이 책을 펴 들었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살았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역사상 최초로 그의 이름으로 자신의 교황명을 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윤엽 작가 특유의 소박하고 정감 있는 목판화 삽화도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 병든 이와 가나한 이들의 친구로서 인자하게 미소짓고 있는 교황의 모습을 보며, 800년 전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세상에 버림받은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던 한 성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두 프란치스코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준 사랑은 얼마만큼이었던가? 고통을 얼마나 줄일 수 있었던가?

 

보통 대교구장 같은 고위 성직자들의 경우에는 본당의 신부들과 달리 신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한다. 관할해야 하는 성당도 여러 곳이고 성직자들도 굉장히 많으므로 그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늘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주교, 추기경 시절부터 늘 신자들 뿐 아니라 도시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과 부대꼈다고 한다. 전용 고급 승용차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평범한 시민들과 늘 함께 했고, 명절이나 휴일 때마다 직접 요리한 음식을 가지고 빈민가나 병원을 찾아 함께 파티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푸근해졌다.

 

때로는 천 년 전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나환자 마을을 찾아가 나환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던 것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에이즈 병동을 찾아가 환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 때로는 밤에 옷을 갈아입고 몰래 거리로 나가 노숙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고 하니... 교황이 된 후에도 그와 노숙인들과의 은밀한 밤 만남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교황이 된 뒤 처음으로 맞이한 77번째 생일이었던 2013년 12월 17일, 교황의 아침 식사에 초대된 것은 교황청 근처 거리에서 잠을 자던 세 명의 노숙인과 그들 중 한 사람이 데리고 있던 개였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격의 없고 진실된 것인가.

 

대형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갔고 발 벗고 나서서 피해자들을 도왔던 교황. 관습과 타성에 젖은 일부 성직자들이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을 때 공개적으로 질타했던 교황.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내는 부끄럽고 끔찍한 문제들을 똑바로 보고 함께 행동해 주기를 요구하는 교황...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비극과 참상들로 가득한 세상, 점점 각박해지고 살기 힘든 사람살이이라고 하지만 이런 어른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돈은 봉사의 수단이지 지배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178쪽)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의 욕심 그릇을 줄이고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타인에 대해 진심어린 따뜻한 환대를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다른 곳이 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보고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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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류 -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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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물학자를 이보다 감동시키는 그림을  알지 못한다.'(326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장류학자로 일컬어지는 프란스 드 발. 그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자신이 네덜란드의 남부 도시 덴 보스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16세기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이 도시의 이름을 따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노천시장에 서 있는 보스의 동상을 보며 성장했던 드 발은, 보스의 대표적인 작품인 경이로운 제단화 <세속적 쾌락의 정원>으로 생물학, 윤리학을 종횡무진 연결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행히 집을 파헤쳐(?) 보니 보스의 <세속적 쾌락의 정원>의 전체 도판이 들어있는 큰 책이 있었다. 프란스 드 발처럼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제56전시실의 이 그림 앞에 멈추어 있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겨갔다(드 발은 이곳으로 들어갈 때 성소(聖所)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생물학자의 이같은 풍부한 감수성이라니!).

 

보통 이 그림을 해석할 때는 인간과 기괴한 생물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중앙 그림을 '지상낙원의 정원, 에덴동산'으로 보고, 오른쪽 그림인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신의 계율을 어긴 인간과 생물들이 끔찍한 벌을 받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드 발은 영장류학자다운 독창적인 눈으로 이 그림을 본다. 중앙 그림은 우리의 자연 상태에 대한 묘사이며, 거기에는 종교적 혹은 도덕적 해석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또 왼쪽 그림에서는, 천국이 한 번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조금씩 복잡해졌을 거라고 암시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해낸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네덜란드의 덴 보스에서 다른 시대에 태어난 두 사람. 보스는 진흙 웅덩이에서 기이한 온갖 생물들이 나오는 그림을 그렸고, 500년이 지난 후 프란스  드 발은 이 장면에서 인간 역시 하찮은 기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하찮은' 기원. 인간의 손은 어류의 앞지느러미에서 유래했고 폐는 부레에서 진화했다. 신체 뿐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영역도 마찬가지라고 드 발은 역설한다. 종교는 인간의 도덕성이 특별한 기원에서 유래했다는 믿음을 주입해왔지만, 이 세계적인 영장류학자는 풍부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우리의 이타적인 충동들이 영장류의 오랜 계통 속에서 진화된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성은 '위에서 아래로' 주어진 것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드 발은 인간이 도덕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하다는 명제에 회의적이다. '사회에서 서로 믿고 살려면 꼭 필요한 자기 조절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까?'(16쪽)라는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느낀다. 분명 인간은 2,000년 남짓 된 현대적 종교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공동체가 잘 기능하는지 걱정해 왔을 거라는 이야기에도 세차게 끄덕끄덕. 거기에 드 발은 유머러스하게도, 생물학자들은 그 정도의 시간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통 큰 생물학의 세계.^^;

 

종교의 역할을 줄이고, 전능하신 신보다 인간의 잠재력에 강조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드 발이지만, 그는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읽다가 도킨스 아저씨의 입장이 되어서 다소 억울(?)한 기분이 들어 흥분하기도 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려 주느라 같은 진화론자를 너무 깎아내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_-;;

뭐 이런 억울함은 잠시 접어두고, 도덕적인 사회의 핵심 요소들을 반드시 종교에서 가져올 필요가 없긴 하지만(그 핵심 요소들이 바로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신처럼 해석이 열려 있는 무언가의 존재 여부를 놓고 흥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340쪽)는 그의 입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책 마지막에서 그는 보노보의 입을 빌려 무신론자들에게 멀리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인간의 이타적인 충동과 공감 능력이 영장류의 오랜 계통 속에서 진화한 결과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증거들은 매혹적이다. 인간의 도덕성이 외부의 고상한 원칙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관찰할 때 인지할 수 있는 '변변치 않은 동기'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인간이 진화하면서 스스로 도덕성을 갖추어왔다는 것을 무색케하는 비극적인 일들이 흘러넘치는 세상이지만, 그래서 때때로 정말 우리에게 그런 내재된 도덕성이 있는지에 대해 회의하고 절망하고 싶지만, '진화된 본성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도록 이끌어준 손이었다'(345쪽)는 사실은 희망이 될 것이다. 오히려 비극적인 세상일수록 더더욱 간절히 붙잡고 놓치 말아야 할 그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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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책 읽기
앨런 제이콥스 지음, 고기탁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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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수많은 것들에 '왜 그래야 하지?'라는 생각이 끝없이 꼬리를 물던 10대 시절, 내가 싫어하던 것(혹은 이해가 되지 않던 것) 중의 하나가 '권장도서목록'이라는 것이었다. 이 목록은 보통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나 방학을 앞두고 우리에게 전달되었는데, 이 목록에 있는 책들 중 'O권 이상 읽고 독서감상문 쓰기' 같은 것이 숙제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책에 빠져 살았지만 '권장도서목록'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온통 갑갑하기만 하던 시절, 책은 내가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계였다. 그런데 그것조차 어른들이 이것 읽어라 저런 것은 피해라, 수능과 논술에 도움되는 책을 읽어라 하면서 통제하려 들다니! 그래서 일부러 그 '권장'의 딱지가 붙은 책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읽는, 나름의 묘기를 부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뭐 선정된 책들의 잘못은 아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서슬 퍼렇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왜 권장도서가 아닌 책들만 읽느냐'는 꾸중 대신 '독서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처럼 이야기해주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거다. 책장을 넘기면서 따뜻하게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권장도서란 독서에 의무를 부과할 뿐이며,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나 자기 향상이라는 강박 관념 속에서 책을 읽다가, 순수한 열정으로 책을 선택한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었다.

캐슬린 샤인은 10대에 문학 작품을 읽는 데 흥미를 잃어버렸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내지도 못하고 책에 몰입하지도 못하며 자신에게 좌절을 느꼈던 그녀는, 예전 남자 친구가 놓고 간 물건들이 담긴 가방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을 찾아내 읽는다.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제 그녀는 '경이로운 책들로 이뤄진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 책들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책은 어느 날, 당신의 마음이 내켜할 그날까지 당신을 기다려 줄 것이다'(38쪽)라고, 저자는 책은 때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다. 도대체 청소년기에 꼭 읽어야 할 책, 20대에 꼭 읽어야 할 책 같은 것은 누가 정해놓을 수 있다는 것인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를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책 머리말에서 예감했던대로, 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공감할 수 있는 많은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영문학자이며 비평가, 교수다운 묵직한(?) 이야기 대신, 독서의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점이 좋았다.

 

저자가 <안나 카레리나>를 세 번째 통독하던 중에 느꼈던 새로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무척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처음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십 수년이 흐른 후였다. 레빈과 키티에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레빈의 감정을 묘사하는 구절을 읽으며, 저자는 이례적인 설득력에 놀랐다고 한다. 더구나 이전까지 그 구절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충격을 받았으며,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그 구절을 이전에도 읽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 책을 세 번째 통독하는 중에 그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불과 몇 달 전에 내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레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 이 같은 경험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변화였다. 나는 한때 눈이 멀었지만 그제야 눈을 떴다.'(178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 다른 폭으로 와 닿을 때의 그 느낌이 생생히 기억났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애초에 책이 단 한 번의 횡단으로 수확할 수 있도록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187쪽)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렇기에 기꺼이 우리는 한 권의 책이라는 세계를 여러 차례 거듭해서 횡단할 것이다. 시간은 무정하게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그렇지만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사랑하는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 그것은 얼마나 즐거운 경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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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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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의 크기와 복잡성을 통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마도 지나간 이들의 생각을 읽고 공부하는 것일 겁니다. 몸에 근육을 키우듯 마음과 생각에 면역력과 저항의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지요."(5쪽)

 

유토피아, 청춘, 비극, 웃음, 귀환, 우정, 자기 고백, 공부... 여덟 개의 단어에서 출발하는 철학적 질문들. 저자는 '철학을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원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접근 방법도 달라야 할 것'(7쪽)이라고 이야기를 던진다. 삶의 자원으로서의 철학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삶,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그것에 접근해가는 철학적 경로를 탐색해본다는 것. 특히 오늘날처럼 지향점 없이, 성찰 없이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삶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삶의 문제들과 여러 철학자들의 진지한 사유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차분하고 담담하면서 독자를 존중하는 어조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특히 동서양 철학자들의 생각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구성해 놓은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를 펼치는 1장에서는 토머스 모어, 플라톤, 프랜시스 베이컨, 토마소 캄파넬라 뿐 아니라 노자, 장자, 도연명, 안평대군, 강유위의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또 2장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에서는 루소와 주희로부터 '청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배울 수 있고, 3장에서는 석가모니와 스토아학파가 '고통'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복귀와 회복에 대한 동양과 서양 철학적 담론이 각각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제시했던 5장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보통 철학서는 서양 철학자들의 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그쪽 머릿수가 훨씬 많아서겠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을 제시해서 만들어진 이 '철학 지도'는 풍성하고 믿음직스러운 길잡이가 되어 준다. 여러 사유들이 포개지고 겹쳐지는 그 끈들을 따라가면서 마냥 행복하다. 마음과 생각에 단단한 근육을 키우려면 음, 갈 길이 아직 아득히 멀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이 '고립되어 명멸하는 한 개의 점이 아니라, 생각과 경험을 잇는 어떤 그물의 한 부분이기를'(9쪽) 바란다는 말을 했다. 문득 멋진 그림이 떠오른다.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철학적 전통과 이론이 아니라, 이런 '생각과 경험을 잇는 그물'들을 통해 현재 삶의 자리에서 호기심과 의문을 갖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런 촘촘한 그물들이 서로 엮이며 일구어가는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나는 갈 곳이 없는 건 아닐까?"

그러자 벽이 말했다.

 "지도만 보면 뭐 해? 남이 만들어놓은 지도에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같니?"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 나와 있는데?"

"넌 너만의 지도를 만들어야지."      -루이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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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아니? - 여행작가 조정연이 들려주는 제3세계 친구들 이야기, 개정판
조정연 지음, 이경석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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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났던, 2006년의 한여름이 생각난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려왔던 모든 것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던 아이들의 눈동자들...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처참한 삶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아주 조그만 행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하게 해주었던 책. 이 책을 읽은 후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열변을 토해서 유니세프 아동후원을 하도록 반강제(?)로 이끌기도 했고, 좋아하던 초콜렛을 즐기던 횟수를 줄이고 하나를 먹어도 공정무역 초콜렛을 먹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시간 참 빠르다. 그로부터 벌써 8년이 지나고, 이 책의 개정판이 세상에 나왔다. 좀더 많은 이들과 만났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던 책이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다니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 듯,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여러가지 추가 자료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점이 눈에 띈다.

8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겹다. 가봉으로 팔려와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던 소녀 아미나타는, 고된 노동과 매질에 못 이겨 집을 뛰쳐나왔다가 다행히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의 자원봉사자 눈에 띄었다. 센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꿈에 그리던 집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소년병들을 만들어 전쟁에 내몰았던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작년에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너무 약한 판결이다. 그가 한 짓을 생각하면 5000년도 짧은 것 같은데!) 아랍 에미리트의 인기 스포츠인 낙타 경주의 기수로 만들어지기 위해, 불법으로 납치되었던 알스하드도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5년 동안이나 영양실조 상태로 지낸 알스하드는 이미 뇌세포가 죽어버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한 순간에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서서히 상황은 변해가고 있다고, 작은 노력들이 힘을 합하면 그래도 조금씩 기적같은 변화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그리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전 세계적으로 2억 1800만 명의 어린이 노동자들이 있고, 매년 12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현대판 노예로 팔리고 있는 이 현실이. 왜 죄없는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이 얼마되지 않는 돈에 몸이 팔리고, 학대와 강제 노동을 당하고, 마약과 총부리의 위협 속에서 총알받이가 되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상공격을 확대하고 있다는 뉴스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숨이 콱 막혀왔다.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힌 것 같았다. 기괴한 폐허로 변한 도심이 꿈에도 나왔다. 가자지구의 병원에는 피로 얼룩진 아이들이 연신 들것에 실려오고 있었다. 이 책에 나왔던 아이들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고 있는 꿈을 꿨다. 눈에 그 웃음이 자꾸 어른거려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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