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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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끔찍한 아우슈비츠의 사진을 보지 못하거나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어보지 못한 어린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배우며 자란다. 그러나 난징의 강간에 대해 물어보면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 심지어 최고학부를 마친 지식인들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70년 전 난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282쪽)

 

부끄럽게도, 나도 그 '대부분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난징대학살에 대해 몇 차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리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기억도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책 첫 페이지에 있던 문장들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

"대학살을 잊는 것은 두 번 째 학살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노벨문학상 수상자, 엘리 위젤)"

몸서리쳐진다. 질서정연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마음편히 이 책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저자 아이리스 장에게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은, 이 잊혀진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를 결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저자는 소녀 시절부터 일본인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듣고 자랐다고 한다. 수년간의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저자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건너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중일전쟁의 악몽을 잊지 못했고, 그녀가 그 사건에 대해 잊지 않기를, 특히 난징의 강간에 대해 기억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읽는 것도 마음이 고통스러운 이 책을 쓰는 과정이 얼마나 길고 험난했을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리스 장은 자신의 이 책이 '난징에 남아 있는 수십만 개의 주인 모를 무덤에 바치는 묘비병인 셈'(313~314쪽)이라고 말한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난징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찾아내고 수많은 증언자들을 추적하여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발굴해낸 고통스러운 소재들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우울증에 걸려 한동안 입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큰 주목을 받자 일본 극우세력들의 끈질긴 협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안타까움에 마음이 저릴 뿐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여러 차례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해야 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만행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했다.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이런 짓들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학살에 대한 증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이리스 장이 '닫는 글'에서 '난징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교훈 중 하나는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종잇장처럼 얇다는 사실이다'(314쪽)라고 단정지은 것이 정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리스 장이 발굴해낸 진실은 난징대학살의 잔학성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세계에 걸쳐 학살의 기록을 찾아다니면서 당시 목숢을 걸고 일본에 대항헤 수십만 명의 중국인들을 살려낸 몇몇 영웅들의 삶을 찾아내었다. 대학살 기간 동안 국제위원회를 구성하여 난징안전지대를 만든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기적처럼 들렸다. 그런 지옥 속에서도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그들은 외국인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그 참혹한 난징을 떠나서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다. 난징의 중국인들에게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나치당원 존 라베,  난징대학살 기간 동안 난징에 남아있었던 유일한 외과의사로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사람들을 치료했던 로버트 윌슨, 일본군으로부터 수많은 여성들을 보호했던 용기로 '난징의 살아 있는 여신'이라 불렸던 미니 보트린... 하지만 폭력과 공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애를 보여준 이들이 치러야만 했던 대가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들은 중국에서는 불명예스럽게 추방되었고, 모국에서는 조사받고 배척당했으며, 치유하기 힘든 정신과 육체의 상처로 인해 자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아이리스 장은 이 책을 쓰면서, 역사뿐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난징대학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징의 강간은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십대들의 천성을 변질시켜 그들을 살인 병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이 사건은 잘 설명해준다. 두 번째로 난징의 강간은 민족 학살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었다.

...(중략)... 세 번째 교훈은 가장 비참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대량 학살을 받아들였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방관자기 되었다."(314쪽~315쪽)

 

지금도 일본의 역사 왜곡 망언은 계속되고 있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본의 침략 전쟁이 신성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런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비참한 세 번째 교훈,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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