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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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던가. 삶과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처음 떠올리기 시작했던 때가. 뭐 시작이 언제였는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한창 그 질문들 속에서 신나게(?)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운 좋게도 그때 카뮈를 알게 되었다. 내게 처음 카뮈를 소개시켜주신 분이고 잿빛 고교시절에 빛(!)을 주셨던 선생님이 건네주셨던 <시지프 신화>의 반들반들했던 표지. 소중히 받아안고 와서 책을 열었을 때 그 유명한 첫 문장,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렬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아무튼 첫 마음이랄까, 나에겐 '시지프'가 정겹고 익숙한 느낌이다. 시시포스... 아직 입에 겉돈다^^;)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로이 번역되었다는 연암서가의 <시시포스 신화>,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부조리는 인지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의 열정, 온갖 열정들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열정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열정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일, 마음을 열광케 하면서도 동시에 불살라 버리고 마는 이 열정의 심오한 법칙을 과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알아내는 일, 이것이 바로 문제의 요체다. (46쪽)'

 

어렸을 때(?)와 지금 읽는 시시포스는 다소 느낌이 다르다(당연한 얘기겠지만^^;). 뭐랄까, 더 아프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부조리한 삶에 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바위를 오늘도 밀고 가는 시시포스를 예전에는 경이로워하고 감탄하며 바라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삶이 비참하게 여겨질지라도 끝내 끌어안는 그 운명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지금도 그 큰 틀은 변함없다. 하지만 지금은 시시포스가 치렀던 그 운명애의 대가에 대해서, 더 생각한다.

부조리는 인지되는 그 순간부터, '온갖 열정들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열정'이 된다는, 그 문장을 여러번 곱씹어 읽었다. 우리가 보통 '열정'이란 단어 앞에 붙이는 형용사는 뜨거운, 강한, 눈부신... 뭐 이런 것들인데, '비통한' 열정이라고 한다. 비통하게, 비통하지만, 비통을 삼키면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한다는 것.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를, 그를 위해 치른 대가가 얼마만한 것이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부조리한 영웅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자신의 고뇌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느낀 온갖 정념들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멸시, 죽음에 대한 그의 증오, 삶에 바쳐진 그의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는 일에 온 존재를 다 바쳐야만 하는 저 형용할 길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다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 대한 열정들 때문에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였던 셈이다. (203쪽)'

 

역시 쉽게 설렁설렁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이건 어렸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군). 읽다가 멈춰서 이게 무슨 뜻일까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끈적끈적 혼란스럽고, 때로는 한 구절이 무척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서, 이런 고민과 혼란스러움까지도 기쁘고 고맙다. 이렇게 모든 것이 휙휙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 시대에, '잘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만 하면 돼요'식의 간단한 처방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카뮈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시시포스처럼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 그 '비통한 열정'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짊어지고 밀어갈 것인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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