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 사랑 편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하지만 늘 외롭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2
신현림 엮음 / 걷는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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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 끌렸다. 곧 다섯 살이 되는 딸아이가 앞으로 크면 함께 하고 싶은 백만 가지(?)쯤 되는 일들 중, “함께 시를 읽는 시간을 자주 가지기”는 그 중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지금은 그 전 작업으로 동시를 많이 읽어주고 있다^^). 나는 스무 살 때 만난 선생님의 영향으로 시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분 댁에는 시집만 따로 꽂아두는 책장이 따로 있을 정도였고, 놀러갈 때마다 차를 대접해주시며 시를 읽어주시곤 했다.  


  시를 읽는 게 재미있고, 뭐랄까 시를 읽을 때 내 안의 뭔가가 끓어오르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시를 읽을 때마다 자주, 내가 문맹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구 감사하고 싶다. 그래서 딸아이가 어느 날 가슴 저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 자기 외로움 속에 꽁꽁 갇혀만 있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허우적대거나 하는 대신, 시 한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를 읽으며 스스로를 따스하게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오면서 최악이라 느꼈던 순간에도 시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달랬듯이...

  사랑이 떠나가 마음이 아플 때 신현림 시인을 울리고, 다시 사랑할 힘을 주었다는 시들과 그에 어우러진 편안한 그림들이 참 잘 어울린다. 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온 시집들은 거의 다 개별 시인들이 자기 이름으로 낸 시집들이라... 이렇게 한 주제별로 엮은 구성이 밀도가 좀 헐렁한 듯한 느낌은 있지만, 시와 아직 친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친근하고 좋을 것 같다. 뒤쪽에 따로 시인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점도 참 마음에 든다. 
 

  저마다 진지한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신현림 시인이 정성으로 모아 엮은 국내외 시인들의 90편의 시들.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사랑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고, 사랑의 먹먹한 아픔에 가슴앓이를 하는 목소리들... 시간과 공간을 벽을 뛰어넘어 우리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보편성. 이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인간이 동굴에서 살며 사냥을 하던 시대에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여행을 준비하는 시대에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일은 무한반복으로 언제나 “진행 중”이라는 그 진실.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햇살이 따사롭게 간질거리고 있을 어느 날, 딸과 머리 맞대고 이 시들을 읽으며 해 줄 말들을 상상해 본다. 너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거야,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밖에는 삶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마음껏, 후회 없이 많은 것들을 사랑하렴. 엄마는 언제나 네 사랑을 힘껏 응원하고 있을 거야.
  문득,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전쟁과 평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떠오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Everything that I know... I know only because I love)."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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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델랑드 - 아름다운 사람
안병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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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낮은 곳에서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스님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종교적 사랑’이라는 것, 그 위대함에 뭉클해진다. 아마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일상에서 작은 이익 하나하나에 목숨 걸듯이 살아가면서 ‘이런 삶이 있구나.’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런 소수의 헌신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을 깨닫는 것... <루이 델랑드>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루이 델랑드는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가 선교사가 되는 길을 택한다.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적인 지위를 얻고 존경을 받는 교수나 교구의 사제가 되는 길을 버린 것이다. 1923년,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한 그 시기에 조선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그는 한국의 역사, 그 고난과 치욕의 현장에 늘 함께 있는 길을 택했다. 
 

 일제 치하 고통받고 있던 한국인들과 아픔을 함께했던 그는 무료진료소, 보육원, 양육원 등을 설립,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다. 1972년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가장 밑바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루이 델랑드 신부의 삶... 그가 걷는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견뎌야 했고, 이육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을 돕다 일본 경찰에 의해 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 건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공산당을 도왔다는 신고를 받고 고초를 겪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면서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어 내면서도 그는 소명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길을 갔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났다. 그의 삶에서 받은 감동을 어떻게 글자들로 표현할 수 있을지...

 친한 친구 하나가 지금 한국 국제협력단에 들어가 아프리카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좋은 경험”이라고 격려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왜 하필 아프리카냐? 우리나라도 아직 살기 힘든데”하는 반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 3세계의 아이들이 아무리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명예 살인으로 개죽음을 당해도, 힘없는 사람들이 지뢰에 팔다리를 잃고 울부짖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생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루이 델랑드가 1923년 한국행을 결심했을 당시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무 문제없이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손발이 되었던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의 고국 오스트리아에도 소외된 사람들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머나먼 아프리카 수단에서 평생 희생과 봉사를 바친 이태석 신부의 눈에도 한국 복지의 사각지대는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더 절실하고 더 절박한 사람들을 위해 편안한 개인의 삶을 버린 사람들에게 그런 류의 말은 너무나 무신경하고 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사회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게 훨씬 더 어려웠고 힘들었던 시절 우리를 위해 희생한 루이 델랑드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된 이상, 어두웠던 시절 우리나라가 받았던 수많은 도움을 기억하고... 지금 도움이 절박한 곳에 그 사랑의 끈을 이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 사제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명을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 소명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고, 실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사람. 해방 이후에는 좌우 대립에서 피해를 당하는 국민의 편이 됐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수많은 고아와 노인의 보호자가 되는 등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루이 델랑드 신부만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그가 지금의 한국 종교계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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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언어 이야기
파스칼 피크 외 3인 지음, 조민영 옮김 / 알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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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입장에서 육아 과정 중에 가장 내 아이가 신기하고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말을 배워가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아이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눈을 맞추던 순간을. “엄마”라는 처음 내뱉던 그 순간을, 시간이 흐르고 점점 말을 배워가고... 조금씩, 조금씩 어휘 수가 늘어가더니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던 그 과정들을 감동하며 기억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던 기억도 난다. 사람은 어떻게 말을 배우게 되는 걸까?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계승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의문을 품었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 걸지 모를 독자의 달콤한(?) 기대에 어긋나게도... 언어의 기원과 발달 과정, 인간의 언어 습득 능력에 대한 학술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고인류학자와 언어학자, 그리고 소아과 의사가 저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각자의 영역에서 답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진지한 주제임에도 비교적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언어의 기원을 다룬다. 그간 언어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언어의 기원에 관한 많은 비밀들이 최근 고고인류학자,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유전학자 등 다채로운 분야의 학자들과의 연계된 연구 덕에 점점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통섭’이 모범적으로 이루어지는 예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을 좋아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했지만 이쪽 분야에 별로 친하지 않다면 지루하고 장황하게 느껴지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2부는 언어의 분화에 대한 전설과 가설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바벨탑 신화에 기원을 둔 인류 공통의 모어(母語)를 찾아 나서는 대담이었다. 그러나 모어를 찾는 가설보다 훨씬 내 관심을 끈 것은 이 대담에서 다룬 다른 문제인 언어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지구상에는 대략 6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놀라운 숫자다. 하지만 이 중 많은 언어들이 해마다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있다. 한 언어가 소멸된다는 것은 비극이고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한 손실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동안 진화해 온 산물이, 하나의 문화와 모든 구전문학, 전통, 노래, 이야기, 그리고 전설의 최종적인 상실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 편에서 언어가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쌓아올린 역사가 아무 흔적 없이 그냥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1부와 2부를 읽고 나서는 뿌듯함과 동시에 약간의 허탈감이라는 양면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으로 읽어서 ‘사실’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들’을 잔뜩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이 모든 새로운 것들이 단지 ‘신비로운 가설들’이라는 것에 대한 허탈함 말이다. ‘결국 아직 모두 확실하진 않다는 거지?’ 뭐 이렇게 살짝 따지고픈 느낌.^^;

 하지만 이것은 언어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고유한 특성쯤으로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 혼돈스러움을 껴안는 것이 현명할  듯싶다. 사람들이 언어에 지적 관심을 기울인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르지만, 언어학이 분과학문으로 자립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이다. 그리고 이 학문은 20세기 들어 만개하기 시작했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문 분야들 사이에서 언어학은 아장아장 걷는 어린애라고 해야 하나. 암튼 언어를 둘러싼 많은 의문들은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인간 고유의 능력인 언어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개척지, 연구 대상인 것이다.

 3부 <아기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는 이 책에서 제일 술술 잘 읽히고, 흥미로우면서도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놀라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기가 말을 배울 준비를 한다는 사실, 그래서 신생아가 익숙한 엄마의 음성을 쉽게 구분해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 그래서 태어나지 얼마 안 된 딸아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반응한 거구나. 이미 아기들의 뇌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태어날 때부터 아기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의 모든 음소들을 구분할 수 있으나 생후 8~10개월 정도 되면 모국어에서 쓰지 않는 대조적인 요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요즘 중국어를 배우는 나에게 4가지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ㅜㅜ  


 또한 아기 때부터 2개 이상의 언어를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적극 찬성’쪽이다. 언어 습득이 지연되기는 하지만 2개 언어를 들으며 자란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기에 가능하면 빨리 두 언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모국어와 제 2의 외국어가 주관하는 뇌의 영역은 다르지만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들의 뇌의 영역은 한 곳이란 점은 놀랍지만(그리고 부럽지만), 워낙 한글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조기교육 수혜(?)아동들을 많이 봤기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언어학은 아직 한참 ‘어리다.’ 또한 온갖 학문들과 손을 잡고 있는 오지랖 넓은 학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온갖 가설 잡탕에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아직 잔뜩 쌓아 놓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가능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분야가 아닐까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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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기록 -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
정연주 지음 / 유리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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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정연주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 책을 집어들게 했다. 대학생 때 한겨레신문에서 이라크 침략과 미국의 일방주의를 경고하는 그의 논설을 읽고 그 성찰의 깊이에 흥분해서 친구들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 그리고 2008년 임기가 15개월이나 남아있음에도 현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임되었을 때 이 정권의 후안무치함에 분통을 터뜨리던 기억, 그 후 몇몇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접했던 그의 글에서 느껴지던 그의 깊은 식견과 여전히 ‘젊은’ 자세...  

 1970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 자유의 전선 맨 앞에 서 있는 사람. 이 책은 그의 치열한 인생의 기록인 동시에 1970년 이후 다사다난했던 우리 언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는다는 것,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가. 그가 담담하게 술회하는 40여년은 고난과 희생의 시간들로 가득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끝없을 듯 이어지는 투쟁, 수감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을 가진 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숱하게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이 얼마나 컸을까. 도피생활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도 못한 슬픔이, 그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권세에 빌붙는 자는 영원히 처량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권세에 빌붙지 않고 저항한 자가 처량해지는 일들을 우리는 오히려 당연한 듯 목도하고 있다.   

 연대순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담담한 어조로 70년대 유신체제 아래의 폭압적 정치와 언론의 위기를, 유학과 한겨레신문 워싱턴특파원 생활을 한 80년대와 90년대를, 한겨레 논설주간과 KBS 사장이 된 2000년대의 조폭적 한국 언론의 현실과 '바보 노무현'과의 인연을, 그리고MB정부의 실정을 풀어낸다. 현재 노무현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 저자가 회상하는 노무현과의 인연은 애틋하게 읽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 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른 것은 ‘제가 앞으로 대통령 하면서 절대 전화하지 않을 사람이 두 분 있습니다.’라는 그 말이었다”(p.398)라는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가장 중요한 기관인 검찰총장과 KBS 사장에게는 전화하지 않겠다는 처음 약속을 임기 내내 지켰다고 저자는 전한다.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었다며 저자는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 느껴지는 이 시대에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머리에 “내가 언론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가까운 우리 시대의 이야기, 특히 언론과 관련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젊은이들이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에, 각종 스펙에,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에... 사는 것이 팍팍하고 막막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어두운(?) 책은 자칫 더 한숨과 분노를 가져올 수도 있...으려나? 아니다! 비록 한숨짓고 분노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나온 길에,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눈을 감거나 외면하려고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가 지난 40년 동안 겪어왔던 과거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상황(혹은 더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록’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한 우리가 그 ‘기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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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불통 먹통
구현정 지음 / 경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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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속 깊은 친구가 하나 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뭔가가 꼬여 답답하거나 하면, 자동적으로 그 친구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야 속이 풀리는 일종의 중독(?)에 걸려 있는 중이다. <소통 불통 먹통>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 친구가 떠올랐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친구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소통의 달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에게 대화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에 더 가깝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자기가 말할 순서를 기다리는 일’로 여기고 있는지.  

 우리는 묘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의 눈 뜬 시간동안 정말 바쁘게 소통에 열심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호소하고 진정한 소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만 가는, 인간소외의 시대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진정한 소통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걸까? 이 책은 소통이란 테크닉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소통이 ‘불통’이나 ‘먹통’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 나의 바탕에 미리 정비해 놓고 있어야 할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학교와 방송에서 대화법에 대한 강의를 오랫동안 해 온 저자의 글답게 술술 잘 읽혔다. 너무 지당하신 말씀만 늘어놓는 자기개발서류에 대한 자동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편인데, 이 책은 다행히 내 편견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해해야 할 인간의 심리와 대화의 원리를 1,2부에서 다루고 나서 3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센스있는 대화를 나누는 실질적인 방법들, 이런저런 상황에 맞게 말하는 요령들을 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당신도 말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스피치 전략 책은 시중에 정말 많다. 이 책은 인문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소통의 본질과 원리를 조명하고 난 후, 올바른 대화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각&말하기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에 다르게 느껴졌다.
 또 각 주제별로 일상적인 상황을 다양한 대화모형으로 보여주어, 우리가 대화중에 빠질 수 있는 오류와 바람직한 말하기 방식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점도 높이 사고 싶다. 내가 평소에 말하는 습관들이 어땠는가 돌아볼 수도 있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도 만든 유익한 책이었다.
 무언가를 알게 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이제 고개 끄덕거리며 읽은 이 책을 곁에 두고,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함께 흐르게 하는 소통의 철학을 내 생활에 써먹을 일이 고스란히 숙제로 남았다.  이왕이면 즐겁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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