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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언어 이야기
파스칼 피크 외 3인 지음, 조민영 옮김 / 알마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 입장에서 육아 과정 중에 가장 내 아이가 신기하고 대견하게 느껴질 때가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말을 배워가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아이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눈을 맞추던 순간을. “엄마”라는 처음 내뱉던 그 순간을, 시간이 흐르고 점점 말을 배워가고... 조금씩, 조금씩 어휘 수가 늘어가더니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던 그 과정들을 감동하며 기억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던 기억도 난다. 사람은 어떻게 말을 배우게 되는 걸까?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계승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의문을 품었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 걸지 모를 독자의 달콤한(?) 기대에 어긋나게도... 언어의 기원과 발달 과정, 인간의 언어 습득 능력에 대한 학술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고고인류학자와 언어학자, 그리고 소아과 의사가 저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각자의 영역에서 답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진지한 주제임에도 비교적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언어의 기원을 다룬다. 그간 언어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언어의 기원에 관한 많은 비밀들이 최근 고고인류학자,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유전학자 등 다채로운 분야의 학자들과의 연계된 연구 덕에 점점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통섭’이 모범적으로 이루어지는 예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을 좋아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했지만 이쪽 분야에 별로 친하지 않다면 지루하고 장황하게 느껴지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2부는 언어의 분화에 대한 전설과 가설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바벨탑 신화에 기원을 둔 인류 공통의 모어(母語)를 찾아 나서는 대담이었다. 그러나 모어를 찾는 가설보다 훨씬 내 관심을 끈 것은 이 대담에서 다룬 다른 문제인 언어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지구상에는 대략 6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놀라운 숫자다. 하지만 이 중 많은 언어들이 해마다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있다. 한 언어가 소멸된다는 것은 비극이고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한 손실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동안 진화해 온 산물이, 하나의 문화와 모든 구전문학, 전통, 노래, 이야기, 그리고 전설의 최종적인 상실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 편에서 언어가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쌓아올린 역사가 아무 흔적 없이 그냥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1부와 2부를 읽고 나서는 뿌듯함과 동시에 약간의 허탈감이라는 양면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으로 읽어서 ‘사실’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들’을 잔뜩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이 모든 새로운 것들이 단지 ‘신비로운 가설들’이라는 것에 대한 허탈함 말이다. ‘결국 아직 모두 확실하진 않다는 거지?’ 뭐 이렇게 살짝 따지고픈 느낌.^^;
하지만 이것은 언어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고유한 특성쯤으로 이해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 혼돈스러움을 껴안는 것이 현명할 듯싶다. 사람들이 언어에 지적 관심을 기울인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르지만, 언어학이 분과학문으로 자립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이다. 그리고 이 학문은 20세기 들어 만개하기 시작했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문 분야들 사이에서 언어학은 아장아장 걷는 어린애라고 해야 하나. 암튼 언어를 둘러싼 많은 의문들은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인간 고유의 능력인 언어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개척지, 연구 대상인 것이다.
3부 <아기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는 이 책에서 제일 술술 잘 읽히고, 흥미로우면서도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놀라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기가 말을 배울 준비를 한다는 사실, 그래서 신생아가 익숙한 엄마의 음성을 쉽게 구분해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아, 그래서 태어나지 얼마 안 된 딸아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반응한 거구나. 이미 아기들의 뇌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태어날 때부터 아기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의 모든 음소들을 구분할 수 있으나 생후 8~10개월 정도 되면 모국어에서 쓰지 않는 대조적인 요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요즘 중국어를 배우는 나에게 4가지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ㅜㅜ
또한 아기 때부터 2개 이상의 언어를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적극 찬성’쪽이다. 언어 습득이 지연되기는 하지만 2개 언어를 들으며 자란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기에 가능하면 빨리 두 언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모국어와 제 2의 외국어가 주관하는 뇌의 영역은 다르지만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들의 뇌의 영역은 한 곳이란 점은 놀랍지만(그리고 부럽지만), 워낙 한글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조기교육 수혜(?)아동들을 많이 봤기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언어학은 아직 한참 ‘어리다.’ 또한 온갖 학문들과 손을 잡고 있는 오지랖 넓은 학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온갖 가설 잡탕에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아직 잔뜩 쌓아 놓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가능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분야가 아닐까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