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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기록 -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
정연주 지음 / 유리창 / 2011년 8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정연주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 책을 집어들게 했다. 대학생 때 한겨레신문에서 이라크 침략과 미국의 일방주의를 경고하는 그의 논설을 읽고 그 성찰의 깊이에 흥분해서 친구들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 그리고 2008년 임기가 15개월이나 남아있음에도 현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임되었을 때 이 정권의 후안무치함에 분통을 터뜨리던 기억, 그 후 몇몇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접했던 그의 글에서 느껴지던 그의 깊은 식견과 여전히 ‘젊은’ 자세...
1970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 자유의 전선 맨 앞에 서 있는 사람. 이 책은 그의 치열한 인생의 기록인 동시에 1970년 이후 다사다난했던 우리 언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는다는 것,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가. 그가 담담하게 술회하는 40여년은 고난과 희생의 시간들로 가득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끝없을 듯 이어지는 투쟁, 수감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을 가진 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숱하게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이 얼마나 컸을까. 도피생활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지도 못한 슬픔이, 그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권세에 빌붙는 자는 영원히 처량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권세에 빌붙지 않고 저항한 자가 처량해지는 일들을 우리는 오히려 당연한 듯 목도하고 있다.
연대순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담담한 어조로 70년대 유신체제 아래의 폭압적 정치와 언론의 위기를, 유학과 한겨레신문 워싱턴특파원 생활을 한 80년대와 90년대를, 한겨레 논설주간과 KBS 사장이 된 2000년대의 조폭적 한국 언론의 현실과 '바보 노무현'과의 인연을, 그리고MB정부의 실정을 풀어낸다. 현재 노무현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 저자가 회상하는 노무현과의 인연은 애틋하게 읽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 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른 것은 ‘제가 앞으로 대통령 하면서 절대 전화하지 않을 사람이 두 분 있습니다.’라는 그 말이었다”(p.398)라는 부분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가장 중요한 기관인 검찰총장과 KBS 사장에게는 전화하지 않겠다는 처음 약속을 임기 내내 지켰다고 저자는 전한다.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었다며 저자는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 느껴지는 이 시대에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머리에 “내가 언론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가까운 우리 시대의 이야기, 특히 언론과 관련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젊은이들이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에, 각종 스펙에,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에... 사는 것이 팍팍하고 막막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어두운(?) 책은 자칫 더 한숨과 분노를 가져올 수도 있...으려나? 아니다! 비록 한숨짓고 분노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나온 길에,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눈을 감거나 외면하려고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가 지난 40년 동안 겪어왔던 과거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상황(혹은 더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록’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한 우리가 그 ‘기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