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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불통 먹통
구현정 지음 / 경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겐 속 깊은 친구가 하나 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뭔가가 꼬여 답답하거나 하면, 자동적으로 그 친구를 찾아 이야기를 나눠야 속이 풀리는 일종의 중독(?)에 걸려 있는 중이다. <소통 불통 먹통>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 친구가 떠올랐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친구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소통의 달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에게 대화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에 더 가깝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자기가 말할 순서를 기다리는 일’로 여기고 있는지.
우리는 묘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의 눈 뜬 시간동안 정말 바쁘게 소통에 열심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호소하고 진정한 소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만 가는, 인간소외의 시대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진정한 소통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걸까? 이 책은 소통이란 테크닉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소통이 ‘불통’이나 ‘먹통’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 나의 바탕에 미리 정비해 놓고 있어야 할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학교와 방송에서 대화법에 대한 강의를 오랫동안 해 온 저자의 글답게 술술 잘 읽혔다. 너무 지당하신 말씀만 늘어놓는 자기개발서류에 대한 자동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편인데, 이 책은 다행히 내 편견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해해야 할 인간의 심리와 대화의 원리를 1,2부에서 다루고 나서 3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센스있는 대화를 나누는 실질적인 방법들, 이런저런 상황에 맞게 말하는 요령들을 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당신도 말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스피치 전략 책은 시중에 정말 많다. 이 책은 인문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소통의 본질과 원리를 조명하고 난 후, 올바른 대화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각&말하기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에 다르게 느껴졌다.
또 각 주제별로 일상적인 상황을 다양한 대화모형으로 보여주어, 우리가 대화중에 빠질 수 있는 오류와 바람직한 말하기 방식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점도 높이 사고 싶다. 내가 평소에 말하는 습관들이 어땠는가 돌아볼 수도 있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도 만든 유익한 책이었다.
무언가를 알게 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이제 고개 끄덕거리며 읽은 이 책을 곁에 두고,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함께 흐르게 하는 소통의 철학을 내 생활에 써먹을 일이 고스란히 숙제로 남았다. 이왕이면 즐겁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