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간절한 서른에게
김해련 지음 / 초록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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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던 중에 친구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전 직장으로 복귀한 그 친구의 소식이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직 복귀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깊은 한숨부터 푹 쉰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에 대한 염려, 집안일과 육아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고충도 적지 않지만, 가장 그녀에게 절실한 고민은 직장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일이 무척 분주한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하기에 ‘칼퇴근’하는 그녀를 보는 눈이 곱지 않다는 말을 하며 “꼭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거라고 눈을 반짝이던 친구의 예전 모습이 생각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멘토가 간절한 서른에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친구에게 이 책의 저자같은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 김해련은 22년간 기업을 운영하며 2천 명이 넘는 여성후배들을 진심 다해 멘토링해왔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가 온몸으로 부딪치며 치열하게 문제해결을 해온 경험들이 녹아 있어서 목소리에 진실성이 느껴졌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조언이 아니라,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딪치고 있는 직장여성들의 심리와 인간관계, 일과 자기계발, 육아문제, 삶과 꿈에 대한 깊이 있는 조언들.

특히 나에게 와 닿았던 대목은 서른이 ‘뿌리를 점검할 시간’이라는 조언과 ‘그릇 사이즈를 키우는 네트워크’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이제 겨우 3분의 1 지점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내 인생의 방향이나 결과가 확정된 것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에 정말로 공감했다. 입시 경쟁, 스펙 경쟁, 취업 경쟁... 우리는 너무나 빡빡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오면서 지금 당장의 성과가 마치 내 인생 전체를 평가한다고 단정 지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껏 키워져 왔고 또 앞으로 뻗어갈 나의 뿌리는 건강한지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울림이 깊다. 나의 가치관, 자존감, 사고방식,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이루고 있는 나의 뿌리. 일상에서 내 뿌리가 튼튼하고 굳건하게 자라도록 나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노력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여성 직장인들이 흔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람들을 사귀고 소통한다는 말은, 부끄럽지만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도 편하다는 이유로,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나와 비슷한 환경의 익숙한 사람들하고만 알고 지내려는 경향이 어느새 몸에 배인 것 같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마음 속에 새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나의 커리어를 향상시키고 싶다면 수다로 푸는 네트워킹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하소연이나 푸념 혹은 수다로는 세상의 흐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만의 우물에서 벗어나 분야가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 어울리는 네트워크를 가질 때, 진정한 창의력이 나오고 삶의 관점도 넓어지고 풍요로워진다.”(p.149) 
 

힘든 현실에서도 자신의 꿈을, 성장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 친구를 비롯한 직장여성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남들은 고민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모든 일이 고달픈지 속이 상할 때가 많지만, 사실은 다들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멘토를 책으로 만나는 시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라건대 다들 힘내기를, 지치지 않고 굳세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를.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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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팩 소녀 제니 1 사계절 1318 문고 73
캐롤라인 B.쿠니 지음, 고수미 옮김 / 사계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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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 소녀’라니. 미국에서도 실종아동 사진들을 우유팩에다 인쇄했나보다. 내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사라진 ‘개구리 소년들’ 때문에 전국이 한동안 들썩였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주는 우유 옆면에 조악하게 인쇄되어 있었던 그 소년들의 얼굴... 우유를 마실 때마다 나는 그 얼굴들을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난다. 왠지, 그 이미지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던 것이다. 낯선 이들의 우유팩에 인쇄되어 구겨지고 던져지던 그 소년들의 얼굴이.

점심시간, 유당 결핍증이 있는 제이니는,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크랜베리 주스와의 부조화를 불평하다가 친구 새라의 우유를 마셔버린다. 그러다가 우유팩에서 만난 자신의 네 살 때의 사진... 친구들은 그 우유팩의 아이가 자기라는 제이니의 말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때부터 제이니의 힘겨운 과거찾기의 여정이 시작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제이니는 그 어디에서도 해답을 찾지 못한다.

잃어버린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 사이에서 방황하는 십대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소설은 묵직하지 않고 경쾌한 느낌으로 읽힌다. 제이니와 부모님, 또 제이니와 학교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 또 이웃사촌이자 점차 제이니와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는 리브와의 대화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특히 리브와 서로 마음을 나누게 되는 과정, 첫키스를 나누던 순간, 함께 학교를 땡땡이치고 뉴저지로 향하던 날, 리브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리브를 떠나보내며 제이니가 느낀 감정의 섬세한 묘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런 과정에서 느낀 십대 소녀의 가슴 떨리는 감정, 그 예민하고 가슴 설레고 마음 찢어지는 감정의 세세한 결을 작가가 섬세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천신만고 끝에 제이니가 뉴저지의 원래 가족에게 전화해서 “저는 딸이예요”라고 고백(?)하는 중요한 부분에서 1권이 끝나버리다니.ㅜㅜ 2권에서는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 같다. 제니가 실종된 이후 원래의 가족들이 겪은 죄책감과 고통,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만나며 느끼게 되는 제니의 심리적인 갈등... 항상 떠나간 쪽보다는 빈자리를 지켜봐야 하는 쪽이 힘든 법 아닐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제이니가 이런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며 진짜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것인지도.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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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브랜드다
조연심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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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개인 브랜드 시대”라고 한다. 더 이상 기업이 개인을 책임지는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는 시대, 브랜드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이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규명하고 시간을 책임지며 평생 가슴을 울리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를 내린다. 평생 내 가슴을 울리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누구나 꿈꾸고 바라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삶일 것이다. 그럼 이런 삶을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알파벳 머리글자에 맞춘 공식을 제시하는데, 바로 개인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5T 법칙이다. 자신의 재능(Talent)을 찾아 완벽하게 훈련(Training)하여 아웃풋을 만들고 그 결과를 온,오프라인으로 소통(Talk)하여야 하며 사람들이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Time)을 견뎌내면서 자신만의 때(Timing)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 그 자체가 주는 깨달음(?)보다는 그 공식을 설명하는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들,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컨설팅과 강연을 많이 해 온 저자답게 풍부한 사례들, 책의 인용구들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들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저자 자신의 삶, 자신의 삶의 이력을 공식 설명 자료(?)로 많이 활용하는 점이 특이하고 흥미로웠다.

에필로그 “브랜드는 내가 만들고 상대방이 완성하는 것이다”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었다. 사실 개인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보다 ‘당신이 결코 브랜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더,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나의 브랜드에 대해 비관적인 적은 없었는지, 일상의 작은 순간을 기록하는데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쓸데없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나의 브랜드를 위한 일에는 주저하지 않았는지... 나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 땀 흘리고 있겠지. 또 브랜드를 구축했더라도, 어떻게 꾸준히 운영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탄탄한 브랜드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거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할 것이다. 나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또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을 어떻게 일구어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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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난 건 아니야 - 2004년 윗브레드 상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5
제럴딘 머코크런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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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를 미셸 투르니에가 뒤집어서 썼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감명 깊게 읽었던 이후로, 이런 식으로 원래의 텍스트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책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이 가게 되었다.
이 책 <세상이 끝난 건 아니야>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죄 많은 인간들에 분노해 세상을 쓸어버린 신의 입장이 아니라 대재앙을 견뎌내는 인간의 입장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행하는 노아의 입장이 아니라 남편과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며 겪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동물들을 선발해 방주에 태운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방주에 태워진 채 끔찍한 시간을 겪는 동물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낸 소설이다. 슬프고, 눈물겹기도 했고,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 성경에서는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의 이름만 나오지만 작가는 상상력으로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어낸다. 노아의 아내 아마, 그리고 셈의 아내 바스맛, 함의 아내 사래, 야벳의 아내가 된 질라와 막내딸 팀나.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팀나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지만, 다른 등장인물들과 방주에 실린 동물들의 시각도 보여준다. 한 가지 이야기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사람들과 사자, 누, 토끼, 까마귀 등 동물들의 다양한 시선들. 노아가 아닌 노아의 아내, 아들과 딸들, 그리고 동물들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상상력의 결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팀나는 참 매력적이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성장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이웃사람들이 기분나빠하고 손가락질하는 미친 가족의 막내딸 팀나. “아버지는 마음만 먹으면 거꾸로 서서 하늘을 가로질러 걸을 사람”(p.11)이라고 믿고 아버지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믿고 순종하면서도, 그녀는 무작정 아버지의 믿음을 따르는 오빠들과는 다르다. 아무런 의구심도 품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만을 따르는, 살려달라고 노아 가족에게 목숨을 애원하는 사람들을 야멸차게 내팽개치는 아버지와 오빠들을 바라보며 팀나는 의문을 품는다.


하느님이 눈물을 흘리셨고, 그 눈물로 세상을 덮으셨다. 하지만 그전에 나와 내 가족에게 손을 뻗어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주셨다. 그런데 나는 왜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걸까? 난 은혜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아이인가?(p.23)


물론 가족서열 최말단인 팀나에게 그런 의문을 제기할 권한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던 팀나는 우연히 세찬 물살 속에서 죽어가는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아이들인 한 소년, 그리고 소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발견한다. “사탄들. 아버지의 말이 항아리 안의 돌멩이처럼 내 머릿속을 덜컹덜컹 굴렀다”(p.69)라고 느끼고 갈등하면서도 결국 팀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동생 야벳과 함께 소년과 아기를 구해 동물우리에 숨겨준다.


자신이 구해준 소년 키팀의 정체를 사탄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식구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소년을 지키기 위해 승강구 뚜껑 위에서 자는 팀나. 밍크가 물어죽인 갓난아기 아달랴 대신 소년이 품고 있던 아기를 안겨주어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팀나. 나중에 자기 안에 사탄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팀나가 떠올린 생각, 그 소박한 깨달음은 나를 감동시켰다.


제발 잘 숨어 있어라, 꼬마 키팀. 무슨 일이 있어도 나타나지 마라.(...) 난 네가 사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만약 네가 사탄이라면, 그건 사탄이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다만 좀 귀찮을 뿐이야.(p.217)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가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걱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품을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그래서 슬프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지만, 희망 한 줄기를 품게 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키팀과 함께 뗏목을 타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팀나가 닿게 된 새로운 해안 풍경, 그 여운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낯선 이는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며 따라서 소중히 돌봐줘야 한다고 믿는”, "심지어 굶주린 핀치새도 쫓아버리지 않는“(p.252) 사람들이 일구어가는 세계. 그래서 우리는,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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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 패션인들의 숨은 스토리
이동섭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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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해 보이는 직종들 중에 패션 산업을 따라갈 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TV에서말고 실제로 패션쇼를 볼 기회가 운 좋게 있었는데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늘씬한 모델들의 화려한 의상과 당당한 워킹, 다른 세계 같았다. ‘눈부시다’는 표현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또, 화려해 보이는 직업일수록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화려하지 못하다는 것도 정설이다. 그 빛나는 무대를 위해선 보이지 않는 수많은 땀과 눈물,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좌절의 순간들이 존재했겠지. 마치 연못 위를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가 물속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갈퀴를 젓고 있듯이. 그런 백조의 갈퀴질을 연상하게 하는,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7명의 한국 패션인들을 인터뷰한 기록인 책을 만났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즐겁다. 즐겁되 고통스럽다 (...) 놀듯이 만나러 나갔지만, 열정에 물들어 돌아온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P.7) 

아, 얼마나 정직한 인터뷰어의 고백인지. ‘즐겁되 고통스럽다’던 느낌, 이해될 것 같다. 책을 읽는 나도 내내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자신의 꿈을 믿고, 그 꿈을 현실로 끌어당기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그들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지금 나도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 거다.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내 꿈을 일구어왔나, 하는 생각에.

이 책은 ‘패셔너블’하다. 다양한 유명 디자이너들, 여러 패션쇼와 행사/파티 장면들, 패션쇼 무대 뒤 풍경들, 책에 실린 7명 디자이너들의 작품들, 유럽 패션 잡지 화보들 등이 실려 있어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떤 화려한 사진들보다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 7명이 땀 흘려 그려왔던 수많은 흑백의 스케치들이었다. 유한나가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중인 컬러 맵과 디자인 아이디어 드로잉, 김시민의 보물 1호라는 시장 조사한 결과를 꼼꼼히 모아놓은 드로잉 파일... 그 섬세한 선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오는 것이 느껴졌다.

7명의 인터뷰이 모두 색깔이 다양하다. 디자이너와 모델리스트, 패션 컨설턴트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거쳐온 경력도 다양하고, 패션에 대한 철학이나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도 모두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확신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고통스러운 갈퀴질 끝에 그들은 성공을 이루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아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물속을 차고 거다. 그들의 빛나는 성공담에 어지러워하기보다는, 그들이 그곳까지 D이르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을 닮고 싶은가가 중요하겠지. “도전해 보지도 않고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얽매여 있지는 않은지 물어라.”(P.226), 책을 덮는데 또랑또랑한 인상의 김다은이 내게 툭, 하고 한마디 던지는 것 같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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