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독서 전략 - 21세기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권영식 지음 / 글라이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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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물론, 각종 읽을거리들이 너무나 흔해서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오히려 그 가치에 둔해지거나 심지어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지만, 어렸을 적처럼 ‘책을 한권 읽고 세계가 바뀌었던 경험’이랄까, 그렇게 책 한 권이 나에게 어떤 의미와 변화를 주었는가를 곱씹는 일이 갈수록 적어지는 듯하다. 이때 다산이 둘째 아들 학유에게 썼다는 편지의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다만 이것에도 ...(중략)... 차이가 있다. 농서를 숙독하고 좋은 방법을 실험해보아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 살찌고 알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야야 하느니,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중략)...아무쪼록 앞으로 많은 책 중에서 닭 기르는 법에 관한 이론을 뽑아내어 계경 같은 책을 하나 만든다면...(59쪽)

 

세상에. 아들이 닭을 친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느 아비가 이런 글을 보낼 수 있었을까. 역시 백성을 위한 실학에 일찍 눈을 뜬 다산답게, 양반의 후손인 아들이 닭을 치는 것에 대한 일언반구 회한이나 서글픔 같은 것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에 무작정 생업에 몰두하는 양계가 아닌, 농서를 읽고 여러 방법들을 실험하는 양계를 하라고 한다. 닭을 주제로 시도 써 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계를 하는 백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읽은 책과 실제로 실험해 본 것들을 바탕으로 닭 기르는 법을 다루는 책을 한 권 만들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책 한 권을 말 그대로 골수까지 우려먹는다면(^^;), 책 한 권의 생명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책을 한 권 읽으면 반드시 그 책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다산. 9명의 자식 중 6남매를 천연두로 잃었으면서도 그 슬픔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고 백성들이 더 이상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천연두에 대한 숱한 책들을 읽고 정리해 책을 쓴 다산. 일생의 많은 기간을 외롭게, 억울한 유배생활로 보내면서도 그런 마음으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썼을 그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18년 동안 500여권의 책을 집필한 다산의 저력은 무엇보다 책읽기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저자의 생각에 끄덕이며 다산의 독서법을 좇아가는 여정은 무척 즐거웠고, 또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산이 책에서 만났던 스승들, 누구보다 다산을 아꼈던 학자 군주 정조, 진심으로 아꼈던 제자 황상과 다산의 인연을 읽으며 흐뭇하기도 했다. 또 책의 뒷부분에는 양응수,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박제가 등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독서법과 여러 명사들의 독서법도 소개되어 있어 좋았다. 세세한 독서의 실천사항들은 다 제각기 다양했지만, 모두 진지하고 치열하게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일구어간 이들...

 

누구든지 책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읽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책에서 감명깊게 읽은 구절은 노트에 베껴쓰던 습관이 있었는데, 하다가 중단하다가 또 생각나면 하다가 해서 아직 몇 권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앞으로는 꾸준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야 내 독서도 생명을 얻고 무언가 결실을 이뤄낼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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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과 윤리 - 출간 30주년 기념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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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으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내가 처음 접했던 것은 2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바이오필리아>라는 책이었는데, 그 후로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꼭 샀다. 인간의 생명 사랑, 즉 바이오필리아 경향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나아가 환경 보전의 윤리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거대한 지적 비전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사실 피터싱어의 이 책 <사회생물학과 윤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1975년 에드워드 윌슨이 낸 책 <사회생물학:새로운 종합>에 대한 일종의 반박서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과 피터싱어를 둘 다 존경하는 내가 과연 누구 편(?)에 좀 더 서게 될까도 궁금했다. 사실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이 책을 같이 읽고픈 욕심이 있었는데, 민음사에서 10년 전에 나왔던 사회생물학은 이미 절판된지 오래여서 구하는데 실패했다. 안타깝다. 페어플레이를 하기가 힘들어졌으니.^^;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피터싱어는 윌슨이 사회적 행동의 진화에 관한 이론을 인간에게 적용한 것에 대해 '이와 같은 분야(윤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과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윌슨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것, 윌슨의 접근 방식이 윤리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워낙 피터싱어의 논리전개가 치밀해서 그냥 끄덕끄덕하면서 읽었다.

 

사회생물학과 윤리, 이 책의 원제는 Expanding Circle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동물해방>을 읽어서일까. 종차별주의를 넘어서서 연민과 책임을 가져야 할 대상을 우리의 종 이상으로 확장시키자는 그의 논리에 감화를 받아서였을까. 우리가 관심을 갖는 대상의 경계를 확장한다, 즉 도덕적 경계를 넓혀 나간다는 서문의 이 말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데 만약 1944년에 커다란 변동성과 의사소통의 확대가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 즉 전 세계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지금까지 외부로부터의 지식에 거의 접근하지 못했던 공동체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는 변화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실험은 진행 중이며, 이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얼마만큼 도덕적 발전을 이루고, 얼마만큼 우리가 관심을 갖는 대상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2011년판 서문에서)

 

진화와 윤리의 관계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실감. 아, 아직 내가 책읽기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하는 것. 몸을 단련하듯 책읽기의 근육도 단련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하게 되었다. 아, 또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한 공을 성실한 역자에게 돌리고 싶다. 각 장 앞마다 잘 정리되어 있던 요약문도, 본문에서의 각주도 모두 이 책을 이해하는데 정말로 큰 도움을 주었다. 책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역자후기까지 꼭꼭 잘 씹어먹을 수 있었다. 좋은 번역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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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을까? - 인간관계의 갈등과 오해를 없애주는 소통의 기술
앤드류 뉴버그 & 마크 로버트 월드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알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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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진정한 소통과 이해에 늘 목말라한다. 상대방에게 무심코 했던 말이 생각지도 않은 불씨가 되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상대방이 내게 별 뜻없이 던진 한마디를 곱씹어 상처입기도 한다.

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는걸까. 제목과 표지부터가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그리고 자기관리 도서로 분류되는 책이지만 인문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점이 좋았다.

 

이 책에서는 ‘연민소통’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뇌 스캔 실험 등을 비롯한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효과적인 소통은 신경의 공명에 달려 있으며, 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 신경은 서로 결합하지 못한다고 한다. 즉 소통이란 한 사람의 뇌가 상대의 뇌와 얼마나 조화롭게 공명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뇌의 뛰어난 상상력을 이용하여 누군가와 공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끄덕끄덕.

 

연민소통의 기본 요소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의 핵심가치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회의실 밖에서, 혹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추고 이렇게 자문해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만나려는 사람의 어떤 점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가?”

이 질문을 자주 던질수록 갈등에 휘말릴 위험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138쪽)

 

또 책에서는 연민소통을 위한 12단계의 전략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12단계 중의 처음의 6개 단계-긴장을 푼다, 현재에 머문다, 내면의 침묵을 강화한다, 긍정성을 높인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숙고한다, 즐거운 기억에 접속한다-는 누군가와 본격적으로 대화하기 전에 해야하는 일종의 준비운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할 거리를 내게 많이 던져주었다. 우리는 얼마나 입버릇처럼 ‘바쁘다’를 연발하며, 별다른 준비없이 그냥 입밖에 나오는 대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은가. 내 기억을 짚어봐도,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있을 때 상대방에게 했던 말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괜히 이런 말 했네’하고 후회가 남기도 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기 이전에 내 마음가짐을 먼저 충분히 돌아보는 것, 그렇게 정성을 들여 준비한 대화가 서로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준비운동 후의 6단계 전략들은 사실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들이다. 상대방이 표현하는 비언어적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적절히 감사를 표현하고, 따뜻하게 천천히 말하고, 간단히 말하고 깊이 있게 경청하는 것... 하지만 이 단순해 이는 지침들을 일상에서 제대로 실천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누구나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연습은 참 부족한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대화란 단지 ‘자신이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되어있는지.

 

나도 성격이 조급한 탓에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종종 끼어들어 말해버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좀 더 천천히 따뜻하게 말해야겠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다지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큰 소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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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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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낡은 등산화 한 짝이 무척 강렬하게 느껴진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가파른 산등성이 위에서 떨어뜨린 등산화 한 짝을 굽어보고 있다. 혼자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걷고 있는데 잠시의 실수로 신발을 잃는다? 생각하기도 힘든 막막한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금 전까지도 갓난아이처럼 품에 끌어안고 있던 남은 한 짝을 온 힘을 다해 멀리 내던져 버린다. 자기 자신을 던져버린 쓸모없는 등산화처럼 널브러져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자신의 삶도 그렇게 훌훌 털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모든 것이 절박했던 것이 아닐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는 26세 되는 해에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걸어가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라고 그녀는 그 열망을 이야기했다. 20대, 흔히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라고 하는 시절이지만 셰릴의 삶은 끝없이 가라앉아 가는 듯해 보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말기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의 죽음으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자신의 슬픔에 빠져 방황하다 그와의 관계도 끝이 나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삶을 비관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용기를 낸 것이다. “인생을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채, 내 의지와 힘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는 구절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를 힘껏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도무지 현실적으로 금방 와 닿지 않는 어마어마한 길이, 4,285Km라니 얼마나 먼 길일까. 벽에 걸린 세계지도의 아메리카 대륙 쪽을 대충 눈으로 훑어봐도 장난이 아닌 길이다. 9개의 산맥과 사막과 강과 협곡, 황무지, 인디언 부족들의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대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생초보가 걸으며 겪는 이야기들은 그동안 내가 도보여행에 대해 품고 있던 일종의 낭만적(?) 이미지들을 산산이 무너뜨려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막의 무시무시한 열기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혹독한 강추위, 시시때때로 출몰하는 온갖 야생동물들의 위협,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으며 발톱이 빠져나가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으로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꾸리라는 조언을 초보자답게 가뿐히 무시하고 이것저것 몬스터(자기 배낭을 그녀는 이렇게 부른다) 속에 집어넣은 덕분에, 몬스터가 닿는 몸 곳곳은 쓸려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가 흐르고...

 

그렇게 대자연의 혹독한 길을 홀로 걸으며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성찰해간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 길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난다거나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의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또 걷는 내내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어 목이 메기도 했다. 끝없는 그리움, 그리고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엄마의 부재로 인해 흩어져버린 가족들에 대한 애증까지... 끊임없이 걸으면서, 그 모든 얽혀졌던 감정을 이제 그녀는 풀어놓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혼자였지만, 또 혼자가 아니기도 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은 모두 각양각색이고 먼 길을 걷는 각자 나름의 이유들도 모두 다채로웠지만, 자신의 삶을 다시 마주하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길을 걷는 그녀를 사람들은 진심으로 격려하고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 안락함 대신 기꺼이 고생을 택한, 같은 길 위에서 만났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동지애를 느끼고 기꺼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하는 법이다. 책장을 넘기며 그동안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러 그리운 얼굴들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까뮈는 “여행이란 자신의 내면의 무대장치를 부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익숙해진 모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일,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다른 무대 속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 셰릴 스트레이드는 4,000km가 넘는 긴 여정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방황과 슬픔으로 가두어두었던 무대장치를 성공적으로 부수었다.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무대를 창조하기 시작했으리라.

 

이 책 덕분에 안 그래도 포화상태(?)인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어 버렸다. 배낭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걷고 싶어 하는 꿈의 코스라는 PCT를 나도 걸어봐야겠다는 소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열망이 나에게도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그 길을 통해서 또 얼마나 자라게 될까. 어떤 무대장치를 부수고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갈 것인가. 책을 덮었지만 두근거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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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보이
호머 히컴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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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뜨거워졌다.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두려워도 그 꿈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함께 키워가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 꿈을 응원하며 용기를 주는 훌륭한 선생님과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것... 책을 덮고 한참동안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마을 콜우드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꿈을 만들어나간 한 소년이 나를 힘차게 격려해주는 기분이었다.

 

실화가 주는 감동이 한층 더 묵직한, 이 자전적 이야기의 배경인 콜우드는 이제 탄광산업의 쇠퇴와 더불어 점점 기울어가고 있는 탄광마을이다. 누구든 학교를 졸업하면 광업에 종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 선택지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듯한 인생...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콜우드는 단순히 서니가 벗어나야만 하는 막막한 현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는 콜우드의 현실을 딛고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콜우드에 대해 좌절하기도 한다. 콜우드의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인, 자신의 꿈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숨막혀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는 끝내 그 몰이해의 벽을 넘어선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콜우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서 끌어안는다. 그는, 성장한 것이다.

 

나는 일어서면서 차가운 산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듀보네 씨는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태어나고 자란 이곳에 내가 속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콜우드와 이곳 사람들, 그리고 주위의 산들이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의 일부였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446쪽).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장면들이 참 많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 로켓에 대한 아들의 열정을 격려하기보다는 외면하고 반대하며 탄광 일을 이어가주기만을 바랐던 아버지는,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몸으로 처음으로 로켓 발사장을 찾는다. 그리고 결국 로켓 보이즈의 마지막 로켓인 오크 31호의 스위치를 아들과 함께 누른다. 손에 든 모자를 하늘을 향해 휘휘 저으며 큰 소리로 아름답다고 거푸 외치는 아버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온갖 어려움과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이룬 아들이 얼마나 눈물겹고 대견했을까. 그리고 오크 31호가 창공을 날아오르는 동안 로켓 대신 줄곧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던 아들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토록 완고하던 아버지가 결국 자신의 길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들이 깨닫는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아버지처럼 로켓을 근사하게 발사한 사람은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아들.

 

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러시아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가 발사되던 순간, ‘하나님이 황금마차를 타고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고 해도 그 순간만큼 황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눈을 빛내며 가슴 두근거리던 한 소년이 꾼 꿈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의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스러져가는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꾸어놓았다. 나까지도 그 꿈에, 그 열정에 전염되는 듯한 행복한 두근거림을 주는 책이었다. 이렇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자주 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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