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꾸는 10초
김종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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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명언이나 짧은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바꾸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힘들 때 위로와 격려가 되어줬던 글, 포기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도록 다독여주었던 글들. 그 수많은 글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짧은 글 한 구절이 가지고 있는 힘이란 얼마나 커다란 것인가.

 

이 책은 8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1,000개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제는 또 여러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의 챕터당 열두 개의 짧은 글이 들어있다. 매일 아침, 자투리 시간에 한두 챕터씩 읽기에 딱 적당한 양과 구성인 것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지혜를 일깨워주는 글귀를 읽고 나를 추스리며 시작하는 하루의 의미는 더욱 새로울 것이다.

아침에 운동가기 전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휘리릭 읽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의 챕터는 이것이었다. '친절에는 차별이 없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남는 글귀는 이것이었다. '나의 인격은 아무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91쪽) 추운 아침, 인도를 열심히 쓸고계시는 청소부 아저씨께 덕분에 더 밝은 마음으로 "수고하십니다~"하고 인사할 수 있었다.

 

프롤로그에는 '꿈을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강렬한 반복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꾸준히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기억나기도 하고. 이 세상은 각종 정보들과 읽을 거리들로 넘쳐난다. 아무리 감동과 힘을 주는 글들을 만난다해도 내가 꾸준히 반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나 자신이 거기에 젖어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런 짧은 글들을 자주 접하며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비즈니스나 경영 분야에 관련된 글들이 많다는 것이다(저자가 현재 경영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니 당연한건가?^^;). 책의 구성 자체가 단순하고 간략한 글귀들의 모음집이다보니 비즈니스 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하지만 어떻게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경영이 아닌가. 한번뿐인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고 깨달음을 주는 '10초'들, 그래서 한 순간도 소홀히 보낼 수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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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이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6
브록 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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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의 도입부부터 충격적이었다. 숲 속의 캠프, 한 무리의 소년들은 한 소년의 바지와 셔츠, 신발과 양말까지 모두 벗긴다. 발가벗겨진 채로 손과 무릎으로 기어 허둥지둥 갈대숲으로 가 쓰러지는 소년에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하위, 넌 고트야. 알겠냐?"(8쪽)

캠프의 오랜 전통쯤으로 알게모르게 묵인되다시피 해 온 '고트'. 이름부터가 너무 잔인하다. 염소를 제물로 바치듯이 누군가를 집단 괴롭힘의 희생자로 삼다니. 어두운 밤, 고트가 되어 섬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홀로 섬을 헤매던 소년은 낡은 텐트 플랫폼에서 꺽꺽거리고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또 다른 고트, 로라라는 이름의 소녀가 하위처럼 옷을 빼앗기고 낡고 더러운 담요로 몸을 싸맨 채 웅크리고 있었던 것.

 

두 아이는 카누가 섬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한다. 자기들을 고트로 만든 아이들에게 순순히 갇혀 있는 모습을 보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카누를 몰래 빼앗아 타고 달아나려던 처음의 계획은 실패하고, 소년은 수영을 못하는 소녀를 격려해 통나무를 붙들게 하고 겨우 통나무를 밀며 헤엄쳐 섬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카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하위와 로라를 확인하러 온 아이들이 아니라, 캠프의 상담사와 관리자같은 사람이었다. 만약 하위와 로라가 그대로 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하위와 로라에게 옷을 주고, 다시 캠프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위가 로라가 고트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퍼졌을 것이고,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캠프를 운영하는 어른들도 캠프의 전통과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런 잔인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했다. 왕따와 폭력으로 얼룩지고 미봉책들만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아서.

"마르고, 진정하세요.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게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도 특별히 해를 끼칠 생각은 아니었을 거예요."(24쪽) 이런 말들.

 

그 후 하위와 로라는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길을 나아간다. 말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없었기에, 누군가의 여름별장의 덧문을 부수고 들어가 누군가의 옷을 입고 통조림을 꺼내 먹었다. "그냥 우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36쪽), 이런 대화를 나누는 소년과 소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세상에 대해 비뚤어진 복수를 한다거나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한다거나 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더이상 캠프의 아이들과 섞이고 싶지도 않다. 터키에서 유물 발굴을 하고 계시는 고고학자 부모님을 둔 소년에게, 소녀는 자기 엄마에게 전화해서 둘을 함께 데리러 오라고 부탁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동전까지 훔쳐내어 겨우 전화를 했는데, 소녀의 엄마는 소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네가 혼자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이다는 걸 이번엔 좀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발가벗겨진 채 섬에 고립되었다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냥 울면서 '저 좀 데리러 와 주세요'하고 말한 로라도 로라지만, 울고있는 딸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설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엄마도 안타까웠다.

 

그 후 또 둘의 모험은 계속된다. 해수욕장 탈의실에서 옷을 훔쳐내입고, 티완다라는 흑인소녀의 도움으로 다른 캠프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고, 거짓말로 모텔에서 잠을 자다가 청소부에게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들이지만, 서로를 염려하고 돌봐주며 꿋꿋하게 버텨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자기들이 사람들의 동전이나 물건 등 여러가지를 빌려(?)쓴 것들을 꼼꼼하게 적어두며 꼭 갚자고 이야기나누는 장면은 귀엽기도 하고.

나중에 로라는 엄마에게 자동응답기로라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캠프 선생님을 통해 사건을 파악하게 된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로라와 엄마가 마음을 터놓게 되어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엄마와 통화하게 된 로라는, 이제 자신의 안위보다 하위가 자기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 함께 고트가 되어 버려졌고, 함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서로 위로하고 헤쳐나간 둘은, 이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리라.

 

소설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부르고 싶다. 열린 결말로 끝난다. 다행스럽게도, 하위와 로라는 숲속으로 숨어들어갔다가 다시 엄마를 향해 손을 꼭 잡고 걸어나온다. 더이상 숨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잇었지만, 엄마가 언제나 먼 곳에 있다고 믿고있었던 소녀 로라는, 이제는 엄마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 하위는 앞으로 자신이 맞닥뜨려야 할 여러 일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모든 것을 잘 해나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소년과 소녀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언제나 그랬으니까."(216쪽)

하위와 로라가 부디 앞으로도 씩씩하게 모든 것을 잘 이겨나가기를,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계속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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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거기 -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장우철 지음 / 난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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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공감이 가는 부제이다. 이 세상에 와서 만난 수많은 계절과 시간 중에, 수많은 장소와 사람들 중에 ‘하필’ 그날 가슴을 두드린 것들, 그 만남들을 저자는 자유로이 거리낌 없이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만큼 다양한 색깔을 품고 있다. 에세이면서도 사진집 같기도 하고, 돌연 인터뷰집이 되었다가 감각적인 잡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휘갈겨 쓴 일기를 몰래 읽고 있는 느낌도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마지막 봄. 이 다섯 계절을 지나며 일상의 틈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 사람들, 장소와 기억들은 무척 두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엮이며 펼쳐진다. ‘사랑을 잃고 나는 찌네’,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자’처럼 꼭지 제목에서부터 톡톡 느껴지는 잡지 에디터 특유의 감각이 살아있기도 하고, ‘아, 맞아, 나도 이런 적 있었지’하고 끄덕끄덕 공감이 되는 단상들이 이어지고. 특히 어머니와 함께 금강산을 찾았던 짧은 여행기와 계절마다 들어있는 인터뷰가 좋았다. 가수 이소라와 이상은, 그리고 사진작가 권부문과 농부 홍순영... 특히 하늘, 바다, 산 등 자연을 주된 소재로 작업해 온 권부문 작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구례에 사는 농부 홍순영과의 담담한 인터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라도 구례 지나는 길이면 들러서 감 달린 것도 보고 벼 자라는 것도 보고 들판에 부는 바람도 쏘이고 그라믄 좋지요. 참말로 좋지요’(205쪽)하는 농부의 웃음은 넉넉한 자연의 품을 닮아 있었다.


다정다감하게 일상을 어루만지다가도 언뜻언뜻 날선 기운이 비치기도 한다. ‘패션은 아름답다.(중략) 그런데 요즘 그것을 다루는 말은 심히 부끄럽다. 실은 추하다’(225쪽)으로 시작되는 ‘패션과 입술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글에 진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패션을 다룬다는 방송의 언어들은 외계어의 향연이 된지 오래된 것 같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에. 또 그렇게 모두들 눈먼 채 좇아가는 유행이란, 스타일이란 또 얼마나 얄팍하고 허무한 것이 되기 쉬울까. '충고는 개선을 향하지 않고 비판은 쇄신을 전제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가 남는다. 그건 부끄러움이다‘(228쪽). 맞다.

또한 오랫동안 잡지 에디터를 해 온 사람이라 그 속사정을 알고 있었을, 인터뷰의 실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부분도 읽으며 속이 시원했다. 솔직히 나는 인터뷰하는 잡지사와 일부 연예인들 간의 거래 관행이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기에 좀 놀랐다. 그래서 ‘문제는 인터뷰과 수단과 조건이 되면서 생겨나는 왜곡된 풍토, 별의별 꼴사나움이다’(235쪽)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또한 인터뷰가 인터뷰로 확고하지 못한 이유는, 스타가 자신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매체마다의 고유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그의 생각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터뷰 읽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슬픈 일이다.


‘마지막 봄’에 이르기 전에, 글 없이 사진들만 연이어 들어있는 장이 있다. 독특하고 느낌이 좋은 사진들이 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순간 셔터를 눌렀을까, ‘하필’ 그 때 마주친 생각과 느낌들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상상해보았다. 그래, 어떤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보석 같은 삶을 만들어내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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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행복철학
팀 필립스 지음, 정미현 옮김 / 빅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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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외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버틀런드 러셀의 저서 <행복의 정복>을 현대적으로 해석, 정리한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러셀이 '우리의 행복에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게되었다고, 그리고 러셀 본인이 대단히 행복했음도 감지할 수 있다고. 맞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자서전의 첫 장에서 읽었던 자작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러셀의 나이 70이 넘어 마지막 연인으로 만났던 이디스에게 썼던 시는 진솔했고 마음껏 연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는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자랐지만, 허위나 가식을 경계하고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러셀이 말하는 행복은 '킬킬거리게 만들거나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9쪽)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행복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존재 그 자체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정한 행복이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역량껏 살아가는 것'(16쪽).

 

기억에 남는 러셀의 책 몇 권이 떠오르지만 나는 '행복의 정복'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러셀의 책이라는데, 흐흠(내 취향이 그리 대중적이진 않나...^^;). 이 책을 읽고보니 '행복의 정복'이 어떤 책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지금으로부터 80년도 더 전에 '행복의 정복'에서 불행을 극복 대상이자 도전 과제로 여겼던 러셀, 저자의 표현대로 '당시 우울증 치료제라는 건 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사람만큼이나 낯선이야기'(10쪽)였던 시대에 앞으로의 시대를 미리 내다본 사람. 시대가 흐르고 과학기술은 더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더욱 공허해지고 더욱 행복에 목말라할 거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다.

 

사족이지만, 나는 러셀의 책 제목인 '행복의 정복'에서 '정복'이라는 단어가 사실 맘에 들지 않았다. 단어 그 자체가 주는, 제국주의의 오만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고, 또 어쩐지 고군분투해서 뭔가를 힘겹게 얻어내는 대상이 된 듯한 '행복'에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러셀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가 왜 '정복'이란 말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러셀은 부유하고 지체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부터 비상한 영민함을 보였지만, 겨우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침울하고 기운없는 아이였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행복하지 않았다고, 사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하는 10대 소년 러셀은 시도 때도 없이 자살을 꿈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 어두운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고. 그렇게 수학에 대한 열망으로 연구에 몰두한 덕에 그는 20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이 되었고, 우울증도 차츰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이기에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 것이리라.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러셀의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자기몰두', 즉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도전과 분투에 몰두한다면 더 행복해진다'(31쪽)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고개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내가 사랑하는 일, 뭔가 나를 가슴뛰게 하는 일에 몰두하면 우리는 시간이 가는 것도 잊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삶의 고단함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가.  

 

수학자, 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문학가로서, 반전평화운동가로서의 삶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던 버틀런드 러셀. 그런 그이기에 우리가 일상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찰하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내 삶을 채워가고 있는 방식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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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고 - 현대인들의 부영양화된 삶을 꼬집어주는 책
엘리자베스 파렐리 지음, 박여진 옮김 / 베이직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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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었다. 원래 책을 휘리릭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며칠 동안 끼고 다니면서 틈틈이 곱씹으면서 읽었다. 다채롭고, 맛있었다.

 

건축학을 공부하고 건축 실무에 종사했던 경험을 가진, 현직 교수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엘리자베스 파렐리는 전공인 건축 외에도 종횡무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생각을 펼친다. 문학, 역사, 철학, 심리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다방면에 굉장히 풍부한 관심과 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철학자와 작가들이 남겼던 말이나 작품들에서 따온 인용에서부터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일화, 세계보건기구의 자료집, 각종 웹사이트의 설문조사 자료들까지... 종횡무진 펼쳐지는 인용의 향연이다.

연상 작용이랄까, 대학생 때 처음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고 그의 환상적인 인용들에 감탄을 거듭하며 가슴 두근거렸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벤야민을 만나고 싶어 온 책장을 뒤져서 <도시의 산책자>를 찾아낸 것도 수확이기도 하고.

 

우리는 끝없이 원하고, 소비하고, 버리고, 그 악순환을 당연하다는 듯이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 있는가. 저자는 현대를 ‘풍족해도 의미는 빈약한 시대’라고 규정하며 현대인들이 좇고 있는 여러 ‘행복의 허상’들을 파헤친다. ‘현대 사회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우리는 그토록 간절하게 열망하던 바로 그 의미를 강탈당하고 있다’(10쪽)는 통찰은 빛난다.

 

훌륭한 교사가 그러하듯이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 질문들에는 우리가 평소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근본적인 생각들도 물론 포함된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준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민주주의 산물들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인가?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체제가 파괴적이고, 값비싸고, 그토록 추할까?’(296쪽)

 

건축을 공부한 사람답게, 쉽게 설계되고 쉽게 버려지는 건축물들과 교외로 끝없이 확장되기만 하는 현대의 도시에 대해서는 특히 예리한 비판을 가한다.

‘물질세계와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말의 가책도 없이 닥치는 대로 버리고 부수게 되었다. 펜과 면도기처럼 건축물도 쉽게 버리게 되었다. 교회, 우체국, 은행 등 한 때 도시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기관들이 이제는 투기 목적으로 세운 건물들과 쇼핑센터, 빌딩숲 속에서 한낱 임대공간이 되어버렸다. 1세기 전 마리네티가 예언한대로 되어가고 있다. “각 세대마다 자신들만의 도시를 지어야 할 것이다.”’(233쪽)

 

안전과 행복에 대한 병적인 집착, 거의 병적인 수준의 강박관념에 대한 성찰은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24시간 아이들 가까운 곳에서 맴돌며 늘 감시하는 ‘헬리콥터 육아’와 범국가적인 ‘안전에 대한 염려증’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대 아이들의 삶에 결핍된 것을 지적하는 작가의 눈은 예리하다.

“하지만 누에처럼 만족의 고치 안에서 사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삶인가? 위험은 어쩌면 놀이의 범위를 규정짓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중략) 완벽한 예측이 가능한 안전은 모든 것을 지루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현대 어린이들은 예전보다 재미가 없어졌다. 더 많은 장난감들, 더 많은 음식들, 더 많은 놀이들이 있다한들 재미는 훨씬 줄었다. (중략) 우리의 아이들은 노력 없이 얻은 자존감을 가득 안고 자라지만 미래에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할지도 모르는 한 가지 근육은 쇠퇴할 것이다. 바로 역경을 견디는 근육 말이다.‘(282,283쪽)

 

지적인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책을 읽다가 생소한 작가들이며 건축가, 건축물 이름이 나오면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메모하기도 했다. 지금 들춰보니 꽤 많다(갈 갈이 멀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폰 에를라흐가 1716년에 비엔나에 세운 카를 성당, 여러 도시들의 다양한 틈새들을 평생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는 건축조각가 리차드 굿윈,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스위스의 수호신을 기리며 지은 클라우스 형제의 예배당, 이탈리아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이 책 덕분에 여성 건축가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기쁘다. 세상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나는 기쁘게 한발 한발 걸어 나가는 것이다. 더디더라도 충실하게, 내딛는 발걸음을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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